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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이야기(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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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론성지2 우리나라 두번째 사제이신 최양업 신부님의 묘가 배론에 있다. 가족 전체가 순교자로 그 신앙을 이어받은 신부님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안가본 곳이 없이 서양 선교사들의 발이 닿지 못하던 곳을 다니며 사목활동을 하셨다. 문경에서 돌아가셨지만 베르뇌 주교에 의해 이곳으로 옮겨졌다. 문경의 그 곳은 3년 전쯤 가봤었는데... 이제야 이렇게 연결이 되네. 최양업 신부님 조각공원에서 이제는 후배 사제와 함께 계시니 좋으시겠지? [성지제대] 뒤쪽은 납골당으로 되어있다. 이 곳에 잠든 사람들의 영혼이 평안하길 기도한다. 이 토굴에서 교회의 재건을 위해 백서를 쓰다. 황사영 백서는 교황청 민속박물관에 원본이 있다고 한다. 왠지 모를 뿌듯함... 이런 믿음의 조상을 두고 있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 [황사영 알렉시오 동..
배론성지1 우리나라 최초 신학교 '성요셉 신학교' (1855년~1866년) 성당 달력에서 자주 보던 배론성지를 처음으로 방문했다. 생각보다 넓고 큰 규모에 살짝 놀라움. ^^ 성지 성당을 향해가는 길에 칠성사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하늘을 바라보며 한치의 움직임도 없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사순절... 그 분의 생각과 그 분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담아보기 위해 몇 번을 다시, 다시 셔터를 눌렀다. 하지만 나의 좁은 마음에는 그 분의 깊은 생각과 그 분의 크신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 기념 성당의 모습 "우리가 분노의 그릇이 되지 말고 하느님 자비의 아들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침내 언젠가는 천국에서 만나뵙게 될 하느님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도 뵙게 되기를 바랍니다." 최양업(토마스) 신부님 말씀 中 둘째날 일정..
[남해] 다랭이 마을 남해의 다랭이 마을은 한쪽 절벽 비탈에 이루어놓은 마을이다. 블럭을 쌓아 그냥 슬쩍 올려다 놓은 것만 같다. 농사도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 논과 밭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이것을 다랭이 논이라 한단다. 요즘은 관광지로 각광을 받아 마을 주변에 허브나무도 꽤 많이 심어두었다. 어딜가든 허브하면 사족을 못쓰는 터라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친환경 농업을 추구하는 곳으로 아이들의 체험학습 장소로는 더할나위없이 좋은 곳이다. 남해바다는 우리가 초등학교 때 배운 것처럼 해안선이 아주 복잡했다. 그리고 눈에 보일 만큼 극명한 차를 보이는 조수간만의 차... 멋진 리아스식 해안, 다도해... 동해안을 끼고 살았던 나에게는 모두가 새로운 환경이다. 남해를 갈 때에는 반드시 남해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다리를 빼먹어..
[영덕] 해맞이 공원에서 바람과 맞서기 영덕 해맞이 공원의 풍경 해맞이 공원은 새해 아침 첫 해를 볼 때 가야할 것 같지만 지금도 충분히 좋다. 흐릿한 하늘의 해맞이 공원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잘 어울린다. 나는 바다가 너무 좋다. 무엇이든 다 받아들일 것 같은 바다가 좋다! 매년 첫날 세상살이 계획을 짤 때 내가 꼭 빼먹지 않고 넣는 것이 있다. 4계절의 바다보기! 지킬 수 있을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런 꿈을 꿀 수 있다는 것도 나에게는 너무나 큰 행복이다. 영덕대개의 상징물인가? 누가봐도 딱 알아챌 수 있게끔... 풍력발전소 6년쯤 전이었나? 7년쯤 전이었나? 대구에서 포항을 거쳐 설악산까지 환상의 7번국도를 타고 간 적이 있다. 그 전엔 우리 나라에 이런 도로가 있다는 걸 몰랐다. 바다를 인접한 도로... 까딱..
[영덕] 대게를 만나러 강구항으로... 대개의 참맛을 느끼러 영덕을 향하여... 올겨울엔 대개를 먹을 기회가 많은 것 같다. 바닷가에서 먹는 대개의 맛은.. ㅋ~ 이루 말할 수 없다. 7번국도와 인접한 해변 바닷가에 있는 시장에 가면 볼거리가 많다. 고기들이 뛰면 나도 함께 뛸 것만 같다. 파닥파닥~ 역시 대개는 영덕대게, 그 중에서도 강구항 ^^ 날카로운 집게로 자기들끼리 싸워 다리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어 집게에 고무줄로 묶어뒀다. 웃기면서도 얼마나 답답할까... 날씨가 완전히 흐린 것도 아니었는데 왜 이리 우중충한지 몰겠다. 다시 바닷가로 나가는 배 한척이 너무 외로워보인다.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나도 저 새처럼 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어디든 가고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을텐데... 갑자기 태안 앞바다가 생각났다. 몇 번을..
[남양성모성지] 묵주알마다 새겨진 정신 절두산에서 열심히 달려 경기도 화성에 있는 남양성모성지로 갔다. 용산과 절두산에서 너무 시간을 오래 보내서 생각보다 너무 늦게 이 곳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도착하니 해는 뉘엇뉘엇 넘어가버렸고, 주위는 어둠으로 완전히 덮여버렸다. 다만, 대보름이라 둥근 보름달이 우리를 밝혀주었다. 너무 늦게 도착한 탓에 처음에 계획했었던 묵주기도도 못하고 돌아왔지만 덕분에 담번에 한번 더 가보리라 다짐할 수 있었다. [초 봉헌실] 원래 이날은 여기에서 미사를 드리기로 계획되어있었는데, 우리가 너무 늦게 도착한 탓에 미사는 숙소로 가서 할 수 밖에 없었다. 미사는 포기하고 잠깐 동안 화살기도를 쏘아올리다. 삼각대가 없어 어둠 속에서 제대로 찍어낼 수가 없었다. 성탄기간이 끝나고 사순에 들어섰는데 아직까지 구유가 있다. 원래..
[절두산 순교성지] 103위 순교성인들이 머리 둔 곳 한양까지 성지순례 기회가 생겨 만사제쳐놓고 달려갔다. 흔치 않는 기회인 것을 절감한게지... 사실 이번 성지순례는 전국구에 가까웠지만... 성지라고는 대구근교 밖에 가본적이 없던터라 기대가 컸는데 조금 안타까웠던 건 내가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휘리릭~ 둘러보는 정도가 된 것 같다. 그래도... 사순을 시작하는 내게는 큰 의미가 있었다. 부활을 맞은 지금 아마도 이 날이 없었으면 그나마 지금의 마음도 가지지 못했을 것 같다. 시간이 오래지났지만 되새겨본다. 부활의 의미가 희미해지기 전에... [입구에 있는 머릿돌] '절두산'이라는 명칭의 의미는 박해때 많은 신자들이 '목잘려 죽은 곳'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특히 병인박해때 많은 신자들이 처형됐단다. [주차장 앞에 있는 기념석] 박해당하..
[경복궁] 조선의 왕들이 걷던 그 길 일주일 전 숭례문(남대문)에 불이 난 것은 나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 모두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밤잠 못자고 뜬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그 상황이 믿을 수 없었고, 어찌 손을 쓸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그것은 내가 애국자여서가 아니라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느꼈을 법한 일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한 동안 충격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듯 하다. 한번도 가까이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멀리서 보이는 그 모습이 어찌나 위풍당당해보이던지 감히 함부로 근접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을 느낌이었는데 방화라니...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방화를 저지른 사람도 나쁘지만 우리의 문화, 우리의 뿌리를 모른척하고 도외시한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남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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