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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이야기(Korea)/전라도(Jeollado)

떨어지는 꽃잎마저도 찬란히 빛나는 광양 매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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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주기를 몇 년... 드디어 광양을 찾았다.

사실 광양이 아닌 섬진강을 만나고 싶었다. 섬진강은 내게 한번도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처럼 여겨졌다. 스치듯 지나간 소설 한 페이지가 이리도 짙게 남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생각보다 깊이 박혀있었다.

 

오래된 기억이라 분명하진 않았지만 <칼의 노래>를 읽으며 백의종군했던 이순신 장군의 마음을 섬진강 모래알만은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특별한 이유가 없이 지금도 <칼의 노래>를 떠올리면 섬진강이 내 마음에 사무친다. 내가 찾은 그날의 섬진강은 가득한 사람들로 인해 아련한 역사를 거슬러 갈 수는 없었지만 또 하나의 역사가 될 오늘을 즐길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조금 이르게 찾아온 꽃의 축제도 거의 막바지였다. 꽃놀이철에 가장 반갑지 않은 비가 몇 일전에도 왔다갔으니 이미 볼 것 다본 구경이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광양 매화마을을 찾은 사람들이 적잖았다. 마을 아래에서는 신나는 축제의 장이 벌어지고,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가는 마을자락에는 끝물의 꽃구경을 하는 사람들로 그득했다.

 

 

 

 

웬 사람이 이리도 많이 모였나 했더니 각설이 품바 놀이꾼이 한창 재미나게 놀고 있었다. 역시 장터 최고의 재미는 품바꾼들의 몫이다. 먹지도 않을 엿가락을 집어들게하는 그들의 현란한 춤사위는 축제에 빠질 수 없는 놀이인 것 같다.

 

 

 

 

 

 

 

 

지금이 딱 제철이라는 벚굴과 제첩도 흥을 돋우는 것 중 하나다.

굴은 바다에서만 나는 줄 알았더니 강에서도 채취를 한단다.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평소 먹던 생굴을 10여개 뭉친 것보다 큰 것(일반적으로 30배 정도의 크기로 본다) 같다. 민물과 해수가 만나는 곳에서 자란다는 벚굴은 섬진강 하구에서만 만날 수 있는 영양만점의 먹거리이다. 벚꽃이 필 무렵 가장 큼지막하고(30cm정도 크기) 맛이 있어 벚굴이라 부른단다.

 

입에 넣는 순간 예상치 못했던 맛에 눈이 번쩍였다. 시장기는 물론 그간 쌓인 피로까지 확~ 몰고갈 만큼 신선하고도 찰진 맛이다. 제첩비빔밥도 일품이었지만 오늘은 벚굴에 자리를 양보해야 할 듯 하다.

 

 

 

 

 

봄꽃이 눈에 밟히고 아쉬운 이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야 폈구나'하고 인사를 할라치면 그새 떨어져버리고 만다. 원래 오래도록 가지지 못하는 것이 더 짠해지는게 사람 맘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참 다행인건 봄꽃은 저들 나름대로 순서지어 핀다는 거다. 목련과 매화가 질 량이면 개나리, 벚꽃이 따라 피고, 진달래, 철쭉 등이 줄지어 흩날리니 그 순서를 기다려보는 것도 봄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한 겨울 끊어졌던 인파가 마을을 찾으니 이 때를 놓쳐선 안되겠다 싶은지 마을 어르신들이 인근에서 가져온 농산물과 식물들을 판매하느라 정신이 없다. 향긋한 향기에 이끌려 가보니 향이 천리를 간다는 천리향이 가득하다. 오늘 아침에 산에서 패오셨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귓전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미 생명을 다해 떨어진 꽃잎의 자리 마저도 눈에 들어오는 걸 보면 내게도 그만큼의 세월이 내려앉았나 보다.

 

 

 

 

매화마을의 하이라이트는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청매실농원이다. 여름엔 매화꽃으로 가득하고, 여름은 매실 열매가 주렁주렁한 청매실농원은 눈보다 입을 즐겁게 해주는 곳이다. 달콤한 매실 아이스크림도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산품이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매실 장독대의 행렬은 내 것이 아님에도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산과 강의 정기를 받아 실하게 익고 있을 매실이 기대된다.

 

 

 

 

 

 

 

이젠 저물어버린 매화의 뒤를 이어 벚나무가 꽃의 틔우기 시작했다. 벚꽃축제로 이어지려나...

개인적으로는 화려함을 자랑하는 벚나무보다 단아한 멋을 자랑하는 매화나무에 더 눈길이 간다. 그래서 더 아쉽기만 하다. 왠지 우리네 정서와 매화나무가 더 잘 어울릴 것만 같다.

 

 

 

 

 

 

 

 

 

 

마을에서 내려오는 길에 만난 꽃들의 향연~

장미만 이쁜게 아니다. 벚꽃만 환영받는 것이 아니다. 꽃은 어떤 종류이든 나름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처철하게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는 할미꽃 마저도 눈부시게 아름답다.

 

한 지인이 내게 그랬다.

누구든 인생에 있어 꼭 한번은 꽃처럼 만개할 때가 있다고. 누구는 봄꽃일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겐 여름꽃, 가을꽃, 겨울꽃일 수 있으니 하루하루 부지런히 잘 살아가면 훗날 만개한 그날을 웃으며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미 떨어진 꽃이라 해도 슬퍼할 필요는 없다. 꽃이 진 자리에 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으니 말이다.

 

 

 

 

 

다음에 꼭 한번 더 찾아오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매화마을을 떠난다.

그때엔 섬진강 모래톱을 거닐며 아련한 내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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