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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이야기(Korea)/부산(Pusan)

물길 따라 떠나는 여행, 부산어촌민속관(부산북구어촌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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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가득히 내려쬐는 이맘때가 되면 기억나는 영화가 있다. 흐르는 강물처럼... 영화의 내용은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지만 빛을 반사하며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살아 움직이듯 하늘을 가로지르는 낚싯줄, 그리고 그 가운데 서 있는 한 남자를 그린 포스터는 영화보다 더 짙은 흔적을 남기며 사람들의 마음을 적신다. 문득 떠올린 영화를 모티브로 생활의 터전이자 동반자로 우리네 삶을 함께해 온 강의 모습을 찾아 부산어촌민속관으로 향한다.

 

 

 

 

 

 

 

▲ 부산어촌민속관에 들어서면 낙동강을 오가던 황포돛배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강당에는 한 미술학원생들이 지점토로 만든 바다생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 한반도 제2의 강, 낙동강

 

강원도 태백 황지에서 시작하여 남해에 이르기까지 1,300리(약 521km) 물길은 억겁의 시간을 견디며 흘러왔다. 물이 흐르는 가장자리를 따라 자생식물과 수중식물이 자리를 잡았고, 강을 이룬 풍부한 수량(水量)은 숭어, 쏘가리, 밀어, 쉬리, 수수미꾸리, 붕어 등 다양한 물고기들의 서식지를 만들었다. 이 좋은 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철새들(청둥오리, 왜가리, 큰고니, 백로, 흑로, 갈매기 등)은 여행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살기 좋은 곳을 바라는 마음은 동‧식물이나 사람이나 매한가지다. 1,300리를 굽이쳐 흐르는 강은 안동, 대구, 김해, 부산 등 크고 작은 도시를 만들었고, 한반도 제2의 강으로 지금도 태연히 흐르고 있다.

 

 

 

 

▶ 낙동강 하구, 어촌마을을 이루다.

 

강은 농사를 돕고, 각종 어패류를 제공해주지만 예고없이 휘몰아치는 태풍과 풍랑은 사람들의 삶을 고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강물이 말없이 흘러내리듯 낙동강을 따라 사는 사람들도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호기롭게 삶을 이어왔다.

 

 

 

 

얕은 강가에서는 가리그물과 작살, 보쌈, 어살 등의 어구를 이용하여 물고기를 잡았고 깊은 물에서는 낚시대를 이용하여 물고기를 끌어올렸다. 배를 타고 나가 그물로 강바닥을 훑으면 다 자란 재첩을 잡을 수 있었고 대나무 발을 바닥에 고정시켜 김을 양식했다. 그 중에서도 무동력선 6척을 이어 그물을 던지는 가덕도 숭어들이는 그 풍경이 장관을 이룬다.

 

 

 

 

 

농촌에서 풍년을 기대하듯 어촌에서는 풍어와 만선을 기원한다. 만선(풍어)의 첫째 조건은 바다를 잠재우는 것. 그러다보니 잡신을 물리치고 용왕에게 정성을 표하는 민속놀이와 제사가 다양하게 생겨났다. 당산나무에 제사를 지내는 당산제, 고깃배를 줄지어 매달아 제물을 올리고 고사를 지내는 뱃고사, 구포대리 지신밟기, 별신굿, 좌수영 어방놀이 등은 어촌마을에 터전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두려움을 떨쳐 물가로 향할 수 있도록 돕는 힘의 원천이자 축제의 장이 되었다.

 

 

 

 

 

낙동강 하구에 형성된 삼각주는 기름진 평야를 만들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이곳에 터를 잡은 사람들은 요동치는 강과 바다로부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갈쇠로 집을 엮고 병풍 역할을 할 수 있는 축담을 세웠다.

 

 

 

 

남정네들은 통발을 만들고 그물을 손질해 바다로 나갔고 아낙네들은 남정네들이 잡아오는 물고기를 손질하고 장터 어물전에서 판매하였다. 특히 구포나루는 낙동강 하구 최대 장터가 되면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장터의 명성이 이쯤 되니 전국의 보부상들은 모두 구포나루로 모였고, 보부상과 물량을 실어 나르는 상선과 나룻배의 건조와 수선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그러고 보니 지금의 부산항은 과거의 구포나루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부산어촌민속관은 당시 부산포구와 낙동강 인근유역의 삶을 이해하기 쉽도록 모형으로 표현해 놓았다.

 

 

 

 

 

▲ 잠수부들이 입고 착용했던 잠수기 어구들(잠수복, 잠수도구)

 

 

 

 

 

 

 

▶ 세계로 향하는 해양도시 부산

 

해수와 담수가 만나며 천혜의 자연공간을 이룬 부산은 지금도 여전히 진화중이다. 강화도조약 당시 인구 3,300여명이던 작은 어촌마을에서 대한민국 제2의 도시를 넘어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해양도시가 되었고, 문화와 첨단산업을 아우르는 미래형 도시로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땅의 기틀은 물길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발전과 편의를 핑계삼아 만든 하구 둑과 각종 시설들은 낙동강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더 이상 이러한 논란으로 우리 삶의 터전이 상처받지 않도록 지금부터 관심과 노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부산어촌민속관은 과거부터 이어져 온 낙동강 유역의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낙동강을 터전으로 삼은 물고기와 새들, 그리고 그들과 공존하며 살아온 선조들의 모습을 재현하여 친근하게 당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모습을 통해 어른들은 옛 모습을 회상하고, 아이들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가덕도 숭어들이

여러 대의 배들을 붙여 그들을 던진 뒤 그물에 숭어떼가 들어왔다 생각되면 한 사람이 "그물 조지라."라고 외치고 숭어들의 운명은 그물에 맡겨진다.

 

 

 

 

 

▲ 좌수영 어방놀이

중요무형문화재 제62호인 좌수영 어방놀이는 어업의 작업과정과 노동요를 놀이화한 것으로 만선을 기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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