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체른 구시가지에서 빼놓은 몇 군데를 둘러보고 난 뒤 일행과 헤어져 혼자만의 여행을 떠난다. 1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기차를 타고 가며 스위스의 풍경에 서서히 취해간다. 아무리 찍는대로 엽서고, 달력이라 하지만 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시쳇말로 레알 스위스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만 한다. 당장 내려 손을 대면 손 끝에 전해질 스위스인데 꿈이고, 허상인 것만 같다.
스위스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베른은 명실공히 스위스의 수도이다. 외유내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베른은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흔히들 생각하는 북적북적하고 혼잡한 수도의 모습이 아니라 더 매력적인 것 같다. 1911년 군사요새로 만든 곳이지만 지금은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으로 사랑스러움을 담은 스위스의 수도이다.
아레강을 중심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나누어지고 있고, 구시가지를 가로지르는 슈피탈 거리, 크람거리와 U자형으로 생긴 아레강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베른역 내 Mc Clean>
일단 역에서 화장실과 기타 잡무들을 보고 길을 나서야겠다 싶어서 다시 역사로 들어왔다. 화장실을 찾다보니 으리으리하고 광채나는 곳이 보여 그곳으로 갔는데 그냥 화장실은 아닌 것 같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화장실로도 사용할 수 있고, 간단한 샤워도 가능한 복합공간인 듯 하다. 물론 무료는 아니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돌아나왔던 기억이 난다. 샤워와 화장실 사용은 각 각 다른 가격으로 책정되어 있다. 스위스에서 캠핑형의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유용할 듯하다.
<역내 Information Center>
역내에 있는 관광국으로 일종의 infomation center이다. 내가 이곳에 드른 이유는 당연히 지도를 얻기 위함(각 지역에서 얻는 지도는 한국의 가이드북에서 제공하는 지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한글이 아니라 아쉽긴 하지만 자세하고 정확한 내용이 담겨있어 반드시 얻어야하는 여행 아이템이다. 도시에 따라 판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들렀던 스위스 지역에서는 무료로 배부했다. 아~ 스위스는 관광청에서 미리 인쇄해서 사용할 수도 있다.)이겠지만 우선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떠나기 전, 스위스관광청에서 인쇄한 오디오가이드 무료대여를 이용하기 위해서이다.
<오디오가이드 안내 브로셔>
아이팟에 베른의 주요 볼거리 36곳이 저장되어 있다. 저장된 곳의 지도도 함께 주니 번호만 보고 찾으면 된다. 사실 지도를 따라 쭈욱~ 걸어가면 번호 찾을 필요없이 순서대로 따라갈 수 있다. 한국어 가이드는 아니지만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영어, 스페인어가 제공돼 가장 친근한 언어로 대여하면 100% 이해는 되지 않아도 어느 정도 분위기 파악은 할 수 있다. 몇 일전 스위스관광청에 들어가보니 2011년 쿠폰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아마도 베른 한국어 가이드 mp3가 관광청 홈페이지에 제공되어 있어 뺀 것 같다. 작년엔 한국어 가이드가 없었기 때문에 제공했나 보다.
아이팟을 사용해 본적이 없어 조금 혼돈되긴 했지만 몇 번 실수하다보니 익숙해져 자유롭게 찾아 듣기도 하고, 반복으로 듣기도 하고 재밌는 시간이었다.
▶ 스위스 관광청 오디오가이드(베른): http://www.myswitzerland.co.kr/mp3/mp3_bern.asp
길따라 A코스로 출발할 것인가, B코스로 출발할 것인가만 정하면 될 듯 하다. 나는 갈 때는 A코스, 돌아올 때는 B코스로 해서 돌아오니 웬만한 것들은 다 보고 돌아온 것 같다.
- 대여비: 6시간 대여(18 CHF), 24시간 대여(25 CHF)
- 대여할 수 있는 곳: 베른역 Tourist Center, BearPark Tourist Center
- 지참해야 할 것: 여권 반드시 지참!
※ 오디오 가이드에 있는 곳을 다 둘러보면 넉넉잡아 4시간 정도 소요된다. 대여할 때 작성한 동의서에 반납해야 하는 시간이 나와 있어 잘 확인하고 시간 내에 반납해야 한다.
루체른에서는 보지 못한 트램이 시내를 오간다. 하지만 베른의 구시가지는 워낙에 작은 곳이라 트램이나 다른 교통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 슬슬 걸어다니며 산책하듯 둘러볼 수 있는 곳이 베른이다.
<감옥탑(Käfigturm, Prison Tower)>
베렌광장에 들어서니 커다란 감옥탑이 보인다. 감옥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고운 건물이다. 실제로 200년이 넘게 감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란다. 지금은 전람회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감옥이 아닐까 싶다. 감옥탑 앞 베렌광장(Bären-platz)에서 분데스 광장(Bundes-platz)까지는 야외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한 도시의 살아있음을 보려면 시장을 찾으라는 말에 새로운 곳에 가면 늘상 시장을 먼저 찾아갔다. 대부분의 시장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 열리는 터라 굳이 어렵게 찾아가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곳이 시장이기도 하다. 베른에서도 싸가지고 간 도시락을 어디에서 먹을까하고 길을 걷다 만난 곳이 이 시장이다. 시장에선 맛있는 먹거리도 먹을 수 있고, 재미난 볼거리들도 구경할 수 있다. 잠시 배고픔은 잊고 사람들과 물건들을 구경하러 시장 속으로 들어간다.
역시 시장의 매력은 길거리 음식이다. 어렸을 때에도 동네시장에선 맛볼 수 없는 유명한 냄비우동 한 그릇 때문에 엄마를 따라 대형시장을 나서곤 했다. 이미 사가지고 온 도시락이 있어 길거리 음식은 그림의 떡이지만 보기만 해도 신나는 모습이다. 나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 그 즐거움이 더 크다. 무언가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이렇게 사람을 즐겁게 만든다.
유럽의 꽃과 과일들은 유난히도 그 색이 강하다. 기후 때문인지, 기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진한 빛깔과 진한 향기로 나도 모르고 그곳으로 이끌리고 만다. 그런데 이곳 시장에서는 치즈까지 나를 유혹한다. 쿰쿰한 냄새때문에 예전엔 정말 싫은 것 중의 하나가 치즈였는데 유럽에선 치즈를 빼놓지 않고 먹게 된다. 처음엔 치즈가 몸에 좋다고 해서 약간의 의무감으로 하나씩 먹었는데 거기에 길들어졌는지 이젠 집에서도 치즈를 떨어뜨리고는 살 수 없게 되었다.
시장의 시끌벅적함을 더하는 것이 길거리 음악가들이다. 쿵작쿵작거리는 소리에 발맞춰 걸어가면 몸치인 나도 한바탕 춤을 춘듯 하다. 그저 생각만 그렇다. ㅎㅎ
이젠 나도 자리잡고 앉아 점심식사를 해야겠다. 우리동네에선 꿈도 꿀 수 없는 길거리 식사가 가능한 이곳, 어디서 먹어도 눈치 안봐도 되고, 뭐라하는 사람 없는 이 유럽은 혼자여행하기엔 세상에 더 없이 좋을 곳이다. 때문에 베른 중앙거리에 줄지어 서 있는 분수주변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나도 그 곁에 앉아 도시락을 꺼내 들었다. 옆 사람들은 뭘 먹는지 한번 힐끗거려보기도 하고,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서로 멋쩍은 웃음도 짓고, 주변에 오가는 사람들을 화면삼아 심심하지 않는 식사 시간을 즐긴다. 아~ 근데 이 벌떼들은 나를 좀 피해주면 안되나? 많지도 않은 내 도시락에 자꾸 욕심을 부려 혼났다. ㅎ
이것도 관광 아이템인가? 세발 자전거도 아니고 세발 니어커도 아닌 특이한 모양의 작은 차를 탄 사람들이 오간다. 저거 재밌겠는데? ^^
그늘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 한무리의 할아버지들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체스를 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데 그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게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은 단 두사람인데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마저 심각하다. 역시... 바둑, 장기, 체스는 훈수가 빠지면 재미없다. 예전에 체스에 한번 도전해봤지만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보여 단번에 포기해버렸다. 체스는 모르지만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가는 줄 모를만큼 재밌는 시간이다.
우리네 시골에 가면 커다란 느티나무나 버드나무 아래 평상을 펴놓고 약속하지 않아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같은 시간에 모이는 것처럼 이곳도 베른에서 그런 곳인가 보다. 시내 한가운데에서 할아버지들이 이렇게 당당하게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모습도 이곳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젊은 시선도 아름다운 눈길이었음 좋겠다. 그런 사회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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