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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마을 이야기(Europe)/스위스(Switzerland)

[루체른] 호프교회 보고, 스위스 용병의 넋을 기리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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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체른 호수 주변의 백조떼>

스위스에서의 3번째 날, 오늘은 기차타고 놀러가는 날이다. 아침 일찍 도시락 싸가지고(oh~ no!), 사가지고(OK!!) 베른으로 가는 날이다. 어제 하루 셋이서 함께한 시간에 푹~ 빠진 나머지 아침에 살짝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서로가 원하는 바가 달라 오늘 하루는 각자가 원하는 곳으로 향하기로 했다. 어제 못다본 호프교회를 들렀다가 서로 원하는 곳으로 떠나기로 했다.
내겐 이른 아침인데 백조떼는 말짱한 정신으로 루체른호 주변을 산책하고 있다. 우리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 아니기에 눈이 많이 가기도 했지만 그 하는 짓이 웃겨 눈길을 빼앗기도 한다. 사람을 위해 만들어 놓은 인도인지, 백조들이 오가는 조도(鳥道)에 사람이 끼어든건지 헷갈리게 만든다. 지들이 이곳의 주인인양 고개를 빳빳이 들고 가는 모양이 오히려 사람들을 가장자리로 내몬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모두는 그 모습에 더 환호한다.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이렇게 즐겁고 편안함을 주는지 몰랐다.


오늘도 화창한 날씨로 멀리에 있는 산자락이 훤히 보인다. 어제의 리기산 정상도 보이고, 이름은 모르지만 병풍처럼 둘러싼 다른 산들의 모습도 보인다. 어디를 봐도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이곳이 좋다.

<호프교회>


루체른 호수를 장식하는 아름다운 풍경에서 호프교회를 제외한다면 밍숭맹숭 싱거운 풍경이 될거다. 16세기에 만들어진 쌍둥이 첨탑을 가지고 있는 호프교회는 역사를 거슬러가자면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735년에 지어진 베네딕도 수도원 소속의 성당으로 지금은 루체른 주교좌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성당을 들어서면서 부터 주교의 문장들이 건물 곳곳에서 발견된다.


아침 산책을 나온듯한 아저씨가 강아지 한 마리와 성당 정원을 오간다.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님의 온화한 성품처럼 정원도 푸근하게 사람들을 맞이한다.


무거운 무게로 삐걱대는 성당문을 밀고 들어가니 투명한 유리문에 비친 성당내부의 잔영이 흔들린다. 예상하지 못했던 차단막에 쉽게 들어갈 엄두가 안난다. 어쩜 그 유리문보다 더 두꺼운 무언가가 내 마음을 내리 누르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루체른에 도착한 첫날, 주일이라 미사가 걸렸지만 하루종일 기차에서 시달린 걸 핑계로 주님의 기도로 은근슬쩍 밀어붙였다. 아마도 그 때의 죄스러움 때문이 아닐까. 그래도 돌아와서 성사로 반성했으니...

<화려한 제대장식들>


이탈리아의 성당들처럼 벽화들로 화려하진 않았지만 제대를 뒷편의 장식들은 이탈리아와 겨루어도 밀리진 않을 것 같다. 초기 르네상스 양식으로 만들어진 장식들로 17세기 초에 있었던 화재들로 소실되긴 했지만 다시 이렇게 만들었다. 그림이 아닌 조각으로 되어 있으니 그 생동감은 훨씬 더 강하게 느껴진다.

<성모 마리아의 죽음 제대>


그 가운데서도 가장 화려하고, 가장 의미있는 장식으로 남는 것이 '성모 마리아의 죽음'이다. 성모님에 관한 그림, 조각들 가운데서도 그 분의 '죽음'과 관련된 작품들은 그리 많이 보진 못한 것 같다. 성모님의 죽음이 정말 저러했을까? 아들인 예수님이 내려다 보면서 천사들과 함께,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함께였을까? 그랬다면 다행이지만 왠지 그렇지 않았을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 이 제대는 1500년대 만들어진 작품으로 화재때에도 소실되지 않은 유일한 제대 작품이라 한다.


성당에서 또 하나의 볼거리는 오르간이다. 17세기에 만들어진 파이프 오르간으로 2,826개의 파이프가 달린 스위스에서 2번째로 큰 오르간이다. 그 소리는 스위스에서 최고로 꼽힐 정도로 멋진 소리를 가졌다고 한다. 여행에서 나를 따라주었던 좋은 운으로 손꼽히는 오르간을 가졌던 성당에선 대부분 그 소리를 듣는 행운이 따랐는데 아쉽게도 이곳에선 그러지 못했다. 살짝 가서 건반을 눌러볼 걸 그랬나? ^^ 아~ 주일미사를 했었다면 들을 수 있었을텐데...


이쁜 아가들의 사진이 담긴 작은 고기 장식품들이 제대 옆으로 약간 비켜 걸려있다. 누구 독일어를 해석할 수 있으신 분은 해석을 좀... ㅎㅎ
아마 기도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로마에서 일찍 하늘로 간 아기들을 위해 기도해달라며 그들의 사진과 메시지를 적어놓은 것을 봤는데 같은게 아닐까.



성당을 나오면 오른쪽으로 작은 정원묘지가 있다. 면적은 그리 크지 않지만 묘지에 세워진 비석들은 화려함이 비범하다. 중세 무역의 중심지였다더니 그 때 부를 축적한 귀족들의 무덤인가? 부의 축적은 모르겠지만 일단 루체른 귀족들의 무덤이라는 건 틀리지 않다. 요즘도 이곳에 묘를 세운다고 한다. 하지만 규모가 작아 얼마나 더 입장(?)이 가능할진 모르겠다.
성당 주변의 작은 집들은 요즘도 수도원과 관련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수도원이나 성당과 관련된 일을 돕는다고...

성당에서 내려와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빈사의 사자상이 있는 곳이다. 큰 기대를 가지고 갔다가 후회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빈사의 사자상>


프랑스혁명 당시 루이 16세와 마리앙투아네트를 지켰던 스위스 용병들을 기리는 조각상이다. 군인들의 늠름한 기상을 의미하는 사자인데 그 기상은 온데간데 없다. 마크 트웨인은 이 사자상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암벽 조각상이라고 했다던데 내가 본 사자의 모습은 힘들고 슬프지만 끝까지 굴하지 않고 주인을 지켜나갈 힘이 보인다. 얼굴에서 '나 힘드오, 하지만 쓰러지지 않겠소'라는 메시지가 흘러나와 내 귓전을 때린다.


저 강만 없어도 달려가 등에 꽂힌 못이라도 빼주면 좋으련만... 아마 저들도 그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


한번 눈길을 준 사자상에게선 눈을 뗄 수가 없다. 모기의 힘만큼도 안되보이는 세상에서의 마지막 줄을 붙잡고 서서히 꺼져가고 있는 생명의 불을 왠지 끝까지 지켜봐주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그와 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어 그저 멀찍이서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다. 그러니 가만히 옆에 앉아 그의 마지막 숨이 멎어질 때까지 함께해야만 할 것 같다. 그래야 내 맘도 좀 나아질 듯 하다. 그리 생각하니 아~ 눈물난다!

지금이야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모든 여행자들의 동경이 되고 있는 스위스이지만 과거엔 척박한 땅으로 농사도 힘들고 먹고 살기를 바라는 일도 쉽지 않아 오래전부터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 용병을 보냈다. 그들의 용맹함은 이미 세상에서 크게 인정받는다. 그래서 나폴레옹에게서, 히틀러에게서 교황을 지켜낸 그들을 교황청에서는 50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그들을 고집하고 있다. 루이 16세가 죽기 전, 스위스 용병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끝까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비록 26명의 장교와 760명의 병사가 전사했지만 그로 인해 지금까지 용감무쌍의 대표 이미지로 스위스 용병이 남는 것일게다.

영원이 끊이지 않을 빈사의 사자상의 숨결을 뒤로 하고 베른을 향해 간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빈사의 사자상 옆에 있는 빙하공원을 들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루체른에선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로 꼽히니 말이다. 나는 비록 지나쳐 왔지만 다음에 꼭 찾아오리라. 역으로 향하는 길목 한 기념품 가게의 한글 안내문이 정겹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스위스칼을 찾나보다. 하긴 스위스를 다녀왔으면 스위스칼 하나 정도는 있어야 스위스에서 왔다고 말할 수 있겠지. ㅎㅎ 나도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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