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듀와 함께 모든 의지가 날아가버린 것 같다. 가야 할 목적지를 잃은 것이다. 생각 외로 빨리 문을 닫는 루체른의 패턴(심지어 대형마트도 문을 닫았다)으로 갈 수 있는 곳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똑같은 길만 몇 번을 생각없이 돌아다닌다. 무슨 방황하는 청소년도 아니고, 집에 들어가기 싫어 이렇게나 헤매다니... 비록 문닫힌 상점이지만 그래도 스위스 전통을 담은 장식품들이 간간히 눈길을 끌기도 하지만 들어가 볼 수도 없어 성냥팔이 소녀처럼 유리창을 사이로 두고 침만 꿀꺽꿀꺽 삼킨다.
스위스의 상징? 시계하면 스위스, 옛날엔 스위스에 오면 장인의 땀이 스며있는 시계하나 사가야겠단 생각을 했는데 것도 쉽지 않네. 괜찮다 싶은건 너무 비싸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동네에서도 살 수 있는 것들이고... 역시 우리는 시장의 개방, 세계화와 함께 살고 있구나. 그래서 스위스에서의 시계는 버렸다. ㅎㅎ
집에 갈까? 하고도 생각했는데 어두워지지 않으니 들어가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한 바퀴 더 돌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발견하게 된 곳. 루체른 구시가지 작은 골목 사이에서 멋진 벽화마을을 찾았다. 물론 우리 동피랑이나 다른 벽화마을과는 성격이 좀 다르긴 하지만 분명 벽화는 벽화다.
▶ 동피랑 마을: http://moreworld.tistory.com/445
그림인지 벽지를 발라놓은 건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선명하면서도 섬세한 거대 캔버스를 만났다. 무거운 다리를 억지로 옮기면서 땅바닥만 쳐다보며 걷다가 별생각없이 고개를 들었는데 우와~ 장식품으로 유리 진열대에 장식되어 있어야 할 집들이 리얼하게 내 눈앞에 서있다.
단순한 기하학적 무늬를 담고 있는 집도 있고, 역사적 의의나 그곳의 역사적 배경을 담고 있는 곳도 있고, 가문의 영광을 드러내려 하는 곳도 있는 것 같고, 그 의미를 다는 알 수 없지만 자부심과 정성이 결합된 그림임은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 흐릿해지기도 하겠지만 그들의 마음은 시간이 지날 수록 더 선명해지는가 보다.
<광장의 분수대>
이탈리아처럼 넓은 광장을 가지지진 않았지만 골목과 골목을 이어주는 중심에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루체른의 광장들이 있다. 광장 중앙에는 대부분 분수대가 있는데 그 분수를 장식하고 있는 조형물들을 올려다보는 것도 조금씩 재미가 붙는다. 과거 주민들의 공동 우물터였고, 연대감을 강조할 수 있는 장소로 사용된 이곳이 지금은 여행자들이 쉬어가는, 내지는 약속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며 그 용도는 달라졌지만 사람들 곁에서 유익하게 남아있는 요런 것들이 난 너무 좋다.
잘츠부르크에서 봤던 철제 간판들이 이곳에도 간간히 보인다. 게트라이데가세 만큼 많진 않지만 그 때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어 좋다. 조금은 나아진 기분을 끌고 이젠 집으로 가야겠다. 루체른역에 있는 슈퍼에 들러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들고 가야겠다.
▶ 오스트리아 찰츠부르크 게트라이데가세 거리: http://moreworld.tistory.com/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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