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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마을 이야기(Europe)/스위스(Switzerland)

[루체른] 꽃다리 밟으며 백조의 호수를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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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기산에서 내려와 루체른에 도착하니 오후 6시이다. 아무래도 그대로 집으로 들어가긴 아쉬워 루체른 시가지를 제대로 한번 둘러보자면서 구시가지를 향해 거닐기 시작했다. 걸어다니다가 적당한 곳이 있으면 저녁식사까지, 어제의 컵라면을 생각하면서 오늘은 근사하게 먹어보자면서 본토 퐁듀를 저녁식사로 잠정적으로 결정했다. 쿵짝이 잘 맞는지 한 친구가 이곳에서 유명한 퐁듀집을 하나 알아왔다면서 수첩을 펼친다. '오호~ 드디어 퐁듀를 먹어보는구나.' 기대가 가득하니 발걸음도 가벼워지는 듯 하다.


구시가지의 시작은 카펠교에서 부터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열심히 카펠교로 가고 있는데 중학교 고학년? 아님 고등학교 저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남학생 둘이 강 아래로 내려갔다 올라갔다 정신없다. 무슨 일인가 싶어 궁금하기도 했지만 쫓아가보기엔 겁도 나 처음에는 관찰만 했는데 그리 겁먹진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래서 다가가보니 고기 한 마리를 두고 어떻게 올릴까 실랑이 중이었다. 일단 한 녀석이 나무에 연결된 줄을 잡아 서서히 끌어당기기로 했고, 한 녀석은 주변에서 작은 천 조각을 구해 가까이 다가오면 손으로 잡기로 한 모양이다. 손발이 척척 맞아 잽싸게 고기를 낚아 올렸다. 우와~ 고기 크기가 장난이 아닌데서 한번 놀라고, 이만한 고기가 한 두 마리가 아닌 것에 또 한번 놀랐다. 어디서 잡은 건지 네댓마리는 되어 보이는 물고기를 커다란 비밀 봉투에 넣고 주먹으로 한 두번 쳐서 고기를 기절시킨다. 하는 행동들이 숙달된 조교(?)의 폼인걸 보니 이곳에서 자주 물고기를 잡는가 보다. ㅎㅎ

<카펠교>

슬쩍슬쩍 카펠교 앞을 지나간건 이제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아졌다. 하지만 어둠 때문에, 바쁜 마음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에겐 제대로 된 인사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 계획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다시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 어쩌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화려한 꽃다리와 함께하게 되었다.
카펠교는 루체른의 상징이라고 할 만큼 루체른의 한 가운데에 있다(위치상이 아니라.. ^^;).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다리'라는 역사적 의의를 배제하더라도 하나의 전시관을 방불케하는 100여 장(110장)의 그림들(작가 하인리히 베그만), 꽃으로 주변을 화려하게 장식해 놓은 모습 등 이 다리가 가진 의미는 무궁무진하다. 한 가운데에는 14세기에 지어진 커다란 팔각형의 수탑(물의 탑)이 있는데 당시에는 감시탑의 역할을 하기도 했고, 이후에는 금고, 보물창고, 연회장, 고문실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황새들이 날아와 자기들의 보금자리로 사용하고 있고, 포병 연합의 집회장으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연회장으로도 사용되었다는 말이 믿기지 않아 안을 들여다 보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여행자인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겉 모습 뿐이다.


하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이 정도의 안타까움은 거뜬히 감내할 수 있다. 백조들도 이 아름다움에 반했는지 계속해서 카펠교 주변을 맴돌고 있다. 혹시 이 다리와 관련있는 어떤 전설이 있는 건 아닐까? 어쩜 독일에서 날아온 백조 왕자들이 여기에서 시간을 보내며 꽃 같이 아름다운 동생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ㅎㅎ


이 다리 5번만 왔다갔다하면 1Km를 걷는 셈이다. 장장 200m가 넘는 다리를 몇 번이나 왔다갔다 했는데도 지루하지 않다. 17세기 그림 구경도 하고, 강 주변 경치도 보고, 다리 중간 중간에 있는 악사들 음악도 듣고... 지루할 틈이 없다. 1993년 갑작스러운 불로 목조다리의 3분의 2가 모두 소실되었지만 루체른 주민들의 기부금, 우표수집 금액, 보험료로 다시 재건되었다. 아~ 다시 숭례문의 아픔이 떠오르는구나. 이 카펠교의 화재도 숭례문과 흡사하다. 카펠교에 정박해 있던 배에서 화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는데 추정하기로는 담배불로 인한 화재라고 한다. 그 이후 카펠교 근처에는 배를 댈 수 없게 되었단다. 정말이지 순간의 실수가, 아니 순간의 방심이 엄청난 손실을 가지고 온다. 그림도 그 때 많이 소실됐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축제를 할 때마다 그림을 교체한단다. 또 다시 생길지도 모를 불의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기념품점>


다리에 있는 조그만 기념품점. 기념품들이야 주변에도 많이 볼 수 있지만 이곳은 세계 각 국의 지폐로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어떻게 이런 것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깔깔한 지폐들이 창문을 중심으로 해서 주변으로 흩어져 있다. 우리 동네 지폐도 보인다. 야~ 이거 잘 보관해 놓으면 진짜 괜찮은 볼거리가 되겠다. 1000원짜리 구권도 보인다.


대가족이 카펠교를 찾았다. 그들이 한데 모여 기념촬영을 하는데 아주 어린 꼬마부터 연세가 지긋한 할아버지까지 모여 한 가족임을 뽐낸다. 이렇게 한 가족이 모여 여행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 다니는게 이제는 슬슬 지겨워지나 보다. 아니, 훨씬 전부터 그랬던 것 같다. 물론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있어 좋긴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한국에 있는 가족 생각에 마음이 절절해 진다.

 

<슈프로이어교>

슈프로이어교는 로이스강에 있는 또 하나의 목조다리다. 15세기에 지어진 다리로 카펠교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진 않지만 나름의 고풍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다리이다. 다리 가운데에는 교회가 있다. 카펠교와 마찬가지로 천정에는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다리도 중간에 한번 소실되었는데 이번엔 화재가 아니라 폭풍우로 인한 파손이라 한다. 1408년에 처음 세워져 1568년 재건되었고, 1889년에 다시 지어져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있다.

 

<패널화 '죽음의 춤'>

다리 위 천정에 그려진 그림은 '죽음의 춤'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다. 유럽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흑사병'의 흔적이 이곳에도 남아있는 셈이다. 그림의 주제는 흑사병으로 인해 죽음을 당하거나 고통을 당한 사람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담고 있다. 해골같기도 하고, 귀신같기도 해 어두운 밤에 보면 섬뜩할 것 같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올 수 있으며, 그 죽음은 고통을 수반한다는 뭐 그런 내용이란다. 음~~ 밤에는 이곳에 오지 말아야 겠다. 죽음의 사신이 나의 발을 묶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성당>

슈프로이어교 중앙엔 작은 성당이 있다. 교회라고 하는데 안에 장식된 것이 성모상인 것으로 보아 개신교회는 아닌 것 같다. 들어갈 수도 없는 아주 작은 공간에 제대를 두고, 그 위엔 성물들로 장식되어 있다. 사실 별관심없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이곳이 성당이라니 좀 의아하다. 하지만 이 성당도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1568년 폭풍우로 소실된 다리를 재건할 때 만든 성당이라 한다.



슈프로이어교에서는 무제크 성벽을 볼 수 있다. 원래는 이곳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이 성벽에 올라가면 루체른을 한 눈에 내려볼 수 있다고 하는데 시간이 없다. 그래서 이번엔 그냥 올려다 보기만 한다.

다리와 함께 로이스강을 한바퀴 돌고 퐁듀를 먹으러 갔는데... 허참 나... 문이 닫혀 있는게 아닌가. 평일은 저녁 6시 30분, 주말은 저녁 5시까지 운영한단다. 오래되고 유명한 스위스 전통 요리점이라는데 이렇게 빨리 문을 닫으면 저녁은 언제 먹나. 퐁듀는 저녁으로 먹지 않는 건가? 퐁듀를 먹는다고 설레였던 마음은 묵직한 실망감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래서 흑흑... 돌아와 또 다시 컵라면을 먹을 수 밖에 없었다. ㅠ.ㅠ 아~ 그래도 스파게티도 있었으니 어제보단 나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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