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의 메인거리는 알파벳 U자의 중앙을 세로로 가로지르는 슈피탈 거리, 마르크트 거리, 크람거리이다. 이들은 하나의 길을 따라 가지만 그 이름은 구간에 따라 다르게 불린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은 마르크트 거리로 상설 시장이 열리던 감옥탑에서 시계탑까지 이어지는 300m 길이의 거리이다. 베른의 상징인 곰돌이로 장식한 트램이 장난감 기차처럼 지나다니고 거리 중앙은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진 분수대가 스위스를 상징하는 테마파크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한다.
베른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사랑받고 있는 시계탑이다. 문득 프라하 구시청사에 있는 오를로이 천문시계가 떠오르기도 한다. 유명세야 오를로이 천문시계가 더 크겠지만 역사로는 베른의 시계탑이 아버지 뻘이다. 방어탑인 동시에 성곽의 출입구 역할을 했던 탑은 1191년에 세워졌고, 이후에는 감옥탑으로 사용되었다가 지금은 든든하게 시계를 받쳐주고 있다.
3년의 제작기간을 거쳐 1530년 완성된 천문시계는 지금까지도 베른시의 시간을 책임지는 막중한 의무를 가지고 있다. 자그마치 500년 가까이 시계로 살아가면서 녹슬지 않고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시계기계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베른시의 모든 공공기관 시계는 이 천문시계의 시간에 맞추어 작동하게 된다. 매시간 4분전 곰과 수탉이 나와 움직이며 여행자들의 시각을 빼았는다. 아름다운 외형과 뛰어난 내공도 가진 실속 100단의 시계다.
▶ 프라하 오를로이 시계탑: http://moreworld.tistory.com/201
벽화라고 봐야하나? 아님 간판이라고 봐야하나? 그림이 맘에 들어 사진을 찍어봤는데 돌아와 지금보니 아래에 무엇이 있었는지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적혀있는 걸로 봐서는 약국이 있을 듯 하고, 각종 물건을 파는 가게가 있을 듯도 한데... 여튼 뭔가를 파는 곳이었을게다.
마르크트 거리를 오가며 그냥 지나쳐서는 안될 것이 길게 뻗어있는 석조 아케이드와 베른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상점구조이다. 석조 아케이드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아케이드로 유명한데 날씨가 좋을 때는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있어 좋고,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엔 눈비를 피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석조 아케이드의 최고 볼거리는 지하창고처럼 생긴 각종 상점들이다.
지하창고로 연결되는 문처럼 보이는 이곳을 통해 들어가면 와인저장고가 나올 것만 같은 느낌인데 이런 창고문이 줄지어 서 있다. 다행히 모두다 닫혀있는 상황이 아니라 이곳이 일반상점임을 알게 되었다. 특이하지만 간판도 걸려있고, 나름대로의 진열장도 있는 상점이다. 어떤 곳은 공연장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발아래에 있는 상점을 내려다보는 느낌, 너무 새롭다. 다락방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다.
<극장>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고안해냈는지 놀랍다. 그래서 이 거리에서는 발 아래도 신경쓰며 걸어야 한다. 여행에선 작은 상점도 큰 볼거리를 제공하니까.
그렇다고 지하매장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람들이 오가는 통로로, 분위기 있는 테라스 레스토랑으로, 길거리 음악가의 작은 공연장으로도 사용되는 아케이드는 다양한 공간으로 이용된다. 오가며 시선둘 곳이 너무 많아 시간가는 줄 모른다.
엄마에게 안겨가는 꼬마가 뒤 따라가고 있는 나를 보며 각양각색의 재밌는 표정을 보여준다. "나는 너가 귀여워서 계속 바라보는데, 넌 무슨 이유로 나를 그렇게 쳐다보는 거니? 처음 본 동양인이 너무 신기해 바라보는 거니? 아님 뚫어지게 바라보는 나와 표정 싸움을 한번 해보자는 거니?" ㅎㅎㅎ
스위스를 떠올리면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세계 유수의 인재들을 배출한 곳이란거다. 수학, 자연과학과는 담쌓은지 오랜지라 아인슈타인까지 떠올릴 순 없었지만 세계적인 의학자, 심리학자 중 스위스 출신들이 너무나 많다. 성격을 유형화하여 내면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인간 성격과 사회의 관계를 모색한 융도 스위스 출신이고, 아동의 인지발달단계를 설명한 피아제도 스위스 출신이다. 호스피스계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도 스위스 출신이고 페스탈로치도 스위스 출신이고, 아~ 내가 좋아하는 알랭 드 보통도 스위스 출신이란다. 이런 사람들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일인데 이곳에서 아인슈타인을 만나게 되다니... ㅎㅎㅎ
아인슈타인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천체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인슈타인의 집은 그가 단 3년간 기거했던 곳이지만 그를 기억하는 많은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기념관으로 유지되고 있다. 짧은 시간 베른에서 생활(1902년~1909년)했지만 베른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그에게 보내는 감사와 사랑의 답변이 아닌가 싶다.
"역사가 깊은 도시 이지만 취리히처럼 매우 편안한 도시다. 양 옆의 길가는 완전히 오래된 아케이드로 줄지어 서있어서 비에 젖을 리 없이 다닐 수 있다. 집 안은 모든 곳이 깨끗하다. 나는 매우 편안한 소파가 있는 넓고 아름다운 방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오직 23 Fr 밖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6개의 의자와 3개의 캐비닛이 있다. 여기서 회의를 할 수 있다."
(1902년 4월 2일,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 中에서)
1902년에서 1905년까지 3년간 생활한 이곳은 아인슈타인이 신혼시기를 보낸 러브하우스다. 베른 특허청 심사관으로 근무하면서 특수 상대성 이론을 만들어 낸 곳도 바로 이곳이다. 그러니 어찌 이곳을 기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여러개의 사진 중 가운데 큰 사진이 아인슈타인과 그의 첫번째 아내 밀레바 마리치의 사진이다. 밀레바 역시 물리학자가 되기를 꿈꾸는 뛰어난 인재로 둘은 대학에서 처음 만났다. 스위스 국립공과대학에서 그 나이 또래 유일의 여학생이었다고 하니 아인슈타인은 모두의 부러움을 받는 행운아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그리 길지 못했던 것 같다. 1902년 첫 딸이 태어나면서 밀레바는 석사논문을 중단해야 했고(그들은 결혼식도 이후에 올렸다), 엄마로서의 역할에 전념해야 했다. 공동의 관심사를 가지고 진행했던 연구들이 결혼전엔 두 사람의 이름으로 출간되었지만 결혼 후에는 아인슈타인의 1인 저자로 발표가 되기도 했다. 이것에 대해 밀레바는 별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에휴~ 듣는 나도 용납이 안되는 일인 것을... 예나 지금이나 여성의 삶은 남성으로 인해 포기되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물리학자가 아닌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야했던 밀레바는 승승장구하는 아인슈타인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었고, 결국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사촌에게 마음을 주고 두번째 결혼을 하고야 말았다. 이혼도 하지 않은채 말이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끝나버렸다. 결혼 전에 얻은 그들의 첫번째 딸은 이미 다른 가정에 입양된 후였고, 두 아들만 남은 밀레바는 어렵게 생계를 꾸려갔다고 한다.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가득 담은 첫째 아들과 병약한 둘째 아들을 키우며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어려움으 가졌던 그녀는 결국 홀로 병상에서 눈을 감았다고 한다. 얼마전 아인슈타인의 첫째 아들 한스의 딸도 유산 소송만 하다가 쓸쓸히 죽어갔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가정을 지키지 않은 아버지가 세계적인 학자로 존경받고 있다는 사실에서 요지경 세상을 본다.
아인슈타인은 창을 통해 마르크트 거리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고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단다. 이곳에서 학문적 동지였던 밀레바는 그 가운데에서 있었던 자신의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비워주어야 했고 이런 점들에 많이 힘들어했다고 한다. 밀레바가 현대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무 쓸모없는 생각을 해본다.
아인슈타인의 집 3층은 그와 관련한 각종 전시물들(실험기구들과 성적표, 그의 이론을 담은 판넬 등)과 시청각실이 있다. 간단한 일대기와 상대성 이론에 대한 설명을 독일어와 불어 등으로 들을 수 있다. 왠지 그냥 지나치면 안될 것 같아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앉아있는다.
밀레바와 함께 생활한 곳이니 밀레바의 물건들이 남아있는건 당연한데 보는 내내 맘이 편치 않다. 아인슈타인이 세계에 미친 영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세상에 없을 위대한 학자이지만 결코 아름다운 남편, 아버지상은 될 수 없다. 조강지처를 버리고 자식도 모른척 한채 자신의 삶을 살아간 그에게 조금 화가 나기도 한다. 역시... 모든 면에서 뛰어날 순 없는 법이다.
베른 구시가지의 메인 거리를 걸어다니며 즐거움을 주었던 것이 각기 다른 모양의 조각상을 이고 있는 분수대이다. 베른 시내에는 100개가 넘는 분수가 있다는데 그 중에서도 이 거리의 분수가 가장 아름다운 분수로 꼽힌단다. 그 말에 호응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만큼 리얼한 모양과 색이 시선을 빼았는다. 그저 모양으로만 보기 좋은 분수가 아니라 조각상에 의미까지 담아두어 그 의미를 알아가는 것도 분수를 보는 묘미가 될 수 있다.
분수 앞에서 자기도 기념촬영 한번 해보겠다고 오르기 힘든 곳을 기어이 올라선다. 하긴 나도 어릴적 눈 앞에 턱이 있으면 꼭 올라가보려 온갖 악을 다 쓰며 결국에는 올라가곤 했다. 엄마는 그 딸의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며 이 아름다운 시절을 담아주려 한다. 나도 베른에서 만난 너를 기억할께.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이쁜 모습으로 살아가길 멀리서 응원하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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