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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닫힌 줄리엣의 집 앞을 서성이는 관광객들>
베로나에 도착하여 숙소에 짐을 풀고나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이 '줄리엣의 집'이다. 해외여행이라는 걸 꿈도 꿀 수 없었던 어느날 TV에서 많은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장소로 찾는다는 이곳을 본 적이 있다. 책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로 알았던 로미오와 줄리엣이 세상 밖으로 튀어나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도 신기했고, 그 집의 분위기와 그곳에서 사랑을 서약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정말 여기까지 올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하진 못했지만 가고 싶다는 동경의 마음은 늘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베로나에서 이곳을 먼저 찾으려고 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베로나에 줄리엣의 집이 있는지는 이탈리아로 여행지를 확정하고 난 뒤 책자를 통해서 알게 되었고, '옳거니...'하고 반드시 베로나를 이번 여행에서 빼놓지 않아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다. 내 이탈리아 여정에 핵심 포인트 중 하나였던 셈이다.
그러나...
그러나...
<줄리엣의 집(Casa di Giulietta) 입구>
내가 찾은 줄리엣의 집은 이미 굳게 닫힌 후였다. 유럽의 여름은 시간 감각을 잃게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동네에 익숙한 나는 해가 늦게 지는 유럽의 분위기에 쉽게 동조되지 못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충분하리라 생각했던 시간이 이미 정해진 시간을 훌쩍 넘었다. 꽤나 고민해서 만든 일정이 첫 단추에서부터 흐트러지게 되면 다음을 떠올리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한참이다. 그래서 목표를 잃은 돛단배처럼 주변을 뱅그르르~ 돌면서 무엇을 해야하는 고민한다.
<혼자 남은 줄리엣>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남은 사람은 이런 모습일까? 완전히 홀로 설 수 있을 때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늘 생각했었는데 지금 줄리엣의 모습은 뭔가 허전해 보인다. 어쩜 로미오는 줄리엣의 이런 모습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함께하지 않는 줄리엣의 모습은 완전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가족을 위시한 모든 것들을 버리면서도 그 옆 자리를 지키려 한 것이 아닐까. 그들의 사랑은 완전한 사랑이었을까? 사랑을 완성했을까?
<다시 찾은 줄리엣의 집>
다음 날 다시 줄리엣을 찾았다. 다행히 줄리엣은 어제와 같은 모습이 아니다. 역시... 사람은 여러 사람들 속에 있어야 행복해 보인다. 어제보다 한층 즐거워보이는 줄리엣을 보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다. ㅎㅎ 어젯밤 로미오가 이 곳을 찾아 저 벽을 타고 올라가 줄리엣을 만나고 돌아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의 낙서>
사랑은 낙서에서 시작된다? 줄리엣의 집은 입구부터 사랑의 결실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아름답고, 애뜻한 사연들이 가득하다. 흰 벽이 있는 곳이면, 종이가 붙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그 흔적을 남기려 한다. 저 꼬마들은 어떤 사랑을 원할까? 늬들이 사랑을 알아? ^^
이만치에 서서 줄리엣을 불러댔을까? '오~ 내사랑 줄리엣! 어디있소?', '로미오, 로미오! 왜 당신은 로미오인가요.' ... '당신이 어디있든 당신과 함께 있겠소. 당신과 결혼하고 사랑할거예요. 저 달에 맹세하겠소.', '오~ 반도에 따라 도는 달은 믿을 수가 없어요. 정 맹세하시려면 기품있는 당신, 자신을 두고 맹세하세요.' ... 바로 여기에서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생각하니 그들의 사랑 속에 내가 쏙~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만들어진 이야기지만 참으로 그럴싸하다.
줄리엣의 집을 찾으면 꼭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가 줄리엣과의 기념촬영이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기 시작하면 앞마당엔 발디딜 틈이 없어진다. 기념촬영도 그냥 찍어선 안된다. 조금 넘사스럽긴 하지만 줄리엣의 가슴을 만지면서 사진을 찍어야 한단다. 그래야 행운이 온다는,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전설이 내려온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사진을 찍어댄다. ㅎㅎ 어린 꼬마 아가씨들 너무 과감하게 사진을 찍고 유유히 사라졌다.
<사랑의 자물쇠>
낙서 말고도 사랑을 증명하는 흔적이 또 있다. 사랑의 자물쇠... 지금 내곁에 있는 사랑을 꽁꽁 묶어두겠다는 심산이다. 저러면 사랑이 영원할 수 있을까? 적어도 자물쇠를 잠그던 첫 마음은 잊지 않아야 할텐데... 시간이 지나고 저 자물쇠가 발목 잡았다는 생각이 없어야 할텐데 말이다. 처음 마음처럼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는 사랑이기를 바래본다.
TV 프로그램에서 촬영하러 왔나보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진 않지만 그들의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한다. 여기까진 무료이다. 실내를 들어가려 하면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물론 베로나 카드가 있으면 패스~
실내로 들어가는 문에 들어서니 한 장의 종이가 펄럭인다. ㅎㅎ 아마도 애완견을 데리고 들어오지 말라는 것인 것 같은데 그들의 재치가 나를 웃게 만든다. 줄리엣의 집은 그럴싸하게 이야기의 배경이 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두었다. 그래서 나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한다.
<줄리엣의 집 실내>
2층부터 3층까지의 공간을 여러 칸으로 나누어 방을 장식했다. 그러면서 연극인지, 영화인지 장면장면을 인쇄해 두고, 그 때의 대사를 적어두었다. 그러니 더 쉽게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실내도 낙서들이 가득하다. 세상엔 사랑을 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런 면에서는 동서양이 전혀 다르지 않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의상>
당시 의상을 재연했다. 영화에서 보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보니 친근함이 느껴진다. 얼마나 멋진 로미오였을까, 얼마나 아름다운 줄리엣이었을까.
위에서 내려다 본 마당의 모습.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줄리엣과 사진을 찍고 있다. 아마 문을 완전히 닫기 전엔 혼자 있는 줄리엣을 보긴 힘들 듯 하다.
<방명록>
나도 방명록에 글을 남기고 왔다. 어떤 특별한 사연을 남기고 싶었다기 보다는 자랑스런 한글을 세계인들이 오가는 곳에 남기고 싶었다. 비록 그들은 이것이 한글이라는 것도 모르겠지만 알든 모르든 세계인들의 흔적 속에 대한민국의 흔적, 그리고 나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이번엔 이렇게 글만을 남기고 돌아왔지만 다음번엔 자물쇠를 함께 걸어잠글 사람이 함께할 수 있을까?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지만 줄리엣과 인사하고 돌아선다. 이곳에서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에 담아 돌아오니 언제나 줄리엣은 만날 수 있다. 내 맘 속에도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조금씩 커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삭막한 사막같은 마음에 싹이 다시 틀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줄리엣의 집을 등지고 나오는데 바로 옆에 있는 상점에서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한창이다. 슬쩍 고개를 내밀어보니 재봉틀로 그림을 그린다. 그 그림이 글자가 된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너무 신기해 한참을 쳐다보고 있으니 내 이름을 묻는다. 머뭇거리니 내가 돈을 줘야하는 줄 알고 머뭇거리나 했나보다. 공짜로 주는 거라고 하면서 다시 이름을 물으니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 돈때문에 그런 것처럼 되어 버렸다. 내 이름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그녀가 너무 고마웠는데 옆에 있는 아저씨도 하나 만들어주겠단다. 동양인들이 별로 없으니 인상 깊었나 보다. 그 아저씨,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당신 친구 중 한국인이 있다고 자랑하신다. 서울에 사는데 지금 이탈리아에 와 여행중이라 하면서 곧 만날거라 하신다. 그래서인지 서울은 잘 알고 계신다. 내가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서 왔다고 하자 씨익~ 웃으신다. ㅎㅎ 근데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처음에 해준 여자 분의 것이 더 이쁘다.
예상하지 못했던 멋진 기념품이 하나 생겼다. 이러니 내가 어찌 베로나를 최고로 꼽지 않을 수 있을까. 소박한 도시답게 넉넉하고 친절한 미소와 마음을 가진 베로나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줄리엣 이야기가 남아있는 베로나도 좋았지만 그들이 만들어가는 지금의 베로나도 너무나 좋다.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
우리가 알고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그의 낭만적 비극의 첫번째 작품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온전히 셰익스피어의 창작품이라 보기는 힘들다. 1520년대 비첸차의 루이지 다 포르토에 의해 탄생된 기본 스토리를 배경으로 1562년 아서 브룩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이라는 제목으로 서사시를 발표하였고, 1582년 윌리엄 페인터가 <환희의 궁전>을 출간하면서 그 이야기를 담았다. 이것이 셰익스피어의 창작욕구를 불태우게 했고,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로 다시 태어나 지금까지 전해진다. 현재 줄리엣의 집이 그 당시 줄리엣의 모티브가 된 사람이 실제로 살았던 곳은 아니지만 그 이야기의 큰 줄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을거란 의견이 많다. 베로나에서 발견되는 많은 고문서들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베로나는 지금 이 이야기로 전세계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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