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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에르베 광장을 찾아갔다. 어제처럼 북적이는 광장을 상상했었는데 거짓말처럼 고요하다. 언제 사람들이 그렇게 모였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노점상들도 싹~ 사라졌고, 카페도 사라졌다. 조용한 광장을 거니는 느낌이 새롭다. 사람들이 별로 없을 때 탑을 올라가야 겠다. 밀라노 두오모처럼 중간에 밀리면 상당히 곤혹스러우니까. 저기 보이는 하얀벽으로 둘러싸인 곳이 내가 올라갈 곳이다.
적어도 하루 이상의 일정으로 베로나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싶다면 베로나 카드를 구입해서 둘러보는 것이 좋다. 베로나 카드가 있으면 13곳의 관광지를 10유로에 둘러볼 수 있다. 더 오랜 시간을 머물 경우 3일권을 사용할 수 있으며 가격은 15유로이다. 베로나의 유명 관광지는 베로나 카드를 통해 모두 관람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버스도 이 카드로 탈 수 있다는 것이다. 잘만 둘러본다면 3-4곳만 둘러봐도 본전은 넘는다. 만 하루동안 베로나에 머물면서 기차역에서 베로나까지 왕복하는 버스요금, 4곳(아레나를 포함하면 5곳)을 둘러봤으니 나도 득본 셈이다. 베로나 역에서 구입할 수 있다.
델라 라조네 궁(Palazzo della Ragione 이성의 궁전, '법원'을 가리킨다. 현재는 시청이다.)과 람베르티 탑은 함께 어우러져 있다. 언뜻 보기엔 하나의 건물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정확히는 모르겠다. 앞에 보이는 석조계단은 14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이 줄지어 서 있다. 하지만 내겐 그렇게 인상깊게 와닿지는 않는다. 아마 탑에 올라갈 생각으로 가득차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람베르티 탑은 84m의 높이를 가진 탑으로 베로나 시내의 모습은 물론이고 날씨가 좋은 날은 저 멀리 알프스까지도 볼 수 있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방법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 방법과 걸어서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베로나 카드가 있어도 1유로를 더 지불해야 한다. 아껴보자는 생각도 없진 않았지만 그냥 걸어서 한번 올라가보고 싶었다. 저 정도는 아직 무리가 아닐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시작한지 얼마지나지 않아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던가'하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했다. 헉헉~ 거리다 못해 거의 기다시피 올라갔다. 참 다행인 것은 이런 나의 모습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올라가서 옥상에 앉아있으니 연세 지긋하신 분들도 많이들 걸어 올라오시던데 부끄럽구나. 이럴때 늘 드는 생각! 정말이지 꼭 운동을 해야해! ㅎㅎ 그나마 나를 위로하고 힘이 되어 준 것이 계단복도 중간에 하나씩 난 조그만 창이다. 감옥에 갇힌 죄수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선택한 것인데도 창밖의 자유가 그립구나.
람베르티 탑이 종탑이었구나. '여기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베로나 전체에 아름답게 울려퍼지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숨을 고르고 있는데 '쾅~'하는 소리가 났다. 어릴적부터 내게 입력된 종소리는 '딩동댕'인데 그게 아니다. '쿵쾅~' 엄청나게 큰 종소리가 내 귀를 때린다. '얘 떨어질뻔 했다'는 말이 이럴 때 꼭 맞는 말이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없던 얘도 떨어질 수 밖에 없겠다. 종 바로 아래에서 듣는 소리는 엄청났다. 약간이나마 투덜대며 앉아있는 내게 '그러지 말고 주위를 한번 둘러봐'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내 마음에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싶었나 보다. 한참을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앉아있다가 그제야 주변 모습을 둘러보기 위해 일어섰다.
산 위에 있는 성모성당이 인상적이다. 빨간 지붕으로 일관된 베로나의 여타 건축물들과는 느낌이 다르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알프스인가? 날씨가 좋은날이면 잘 보인다고 했으니 오늘 같은 날 보이지 않으면 언제 볼 수 있을까. 풍성한 나무로 둘러쌓여 꼭 숨을 쉬고 있는 것 같다. 우뚝 솟은 두오모의 모습도 성모성당과도 잘 어울린다.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다. 힘들게 올라온 것을 120% 보상받는 것 같다. 이런 느낌이라면 몇 번은 더 올라올 수 있을 것 같다. 고진감래(苦盡甘來)이지 않던가.
<가르델로 탑(Torre del Gard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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