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하회마을에서 오리지널 안동찜닭 먹기

<하회마을 입구 하회장터>

하늘과 땅에 가을색이 짙어지고 있는 어느날, 1년을 벼루었던 안동으로 향했다. 작년 이맘때 탈춤공연을 보자고 가족과 굳게 약속했는데 신종플루라는 몹쓸병 때문에 지역축제들이 소리없이 사라져 내가 계획한 안동 나들이도 사라지고 지루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때의 아쉬움을 이제라도 다시 채우고자 그곳으로 간다. 그러고 보면 난 정말 뒤끝이 심한 사람이다. ㅎㅎ 일년을 기억하고 결국엔 오고 말았으니 말이다.

<하회장터>

내가 하회마을을 온 적이 있었던가. 여행이라는 것을 몰랐던 시절부터 주말이면 학교에서 돌아오는 내 손을 붙들고 부모님은 늘 어디론가로 향하셨다. 그때만해도 동네에서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것이 더 좋았기 때문에 항상 찌푸린 얼굴로 불만을 가득채워 따라나서곤 했다. 철이 들기 전이라 내 기억 속에는 남아있지 않지만 어지간히 유명하다는 곳은 내 발자국의 흔적이 남아있다. 어쩌면 지금의 내 방랑벽도 그때부터 다져진 고질병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회마을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래서 한동안 엄마와 실랑이를 해야 했다. 아마 왔다하더라도 지금의 모습과는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일테니까.
만들어놓은 듯한 인위적인 맛이 살짝 나긴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고풍스러운 맛도 더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럼, 그래도 세계 문화유산인데...

<하회장터 맛집들>

요즘처럼 세상에 부족할 것이 없는 세상에 사는 우리는 '장이 선다'라는 말이 생소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다지 멀지 않은 옛날에는 장이 서는 날이면 그 지역 모든 사람들에게 축제의 날로 기억될 수 있는 특별한 날이었다. 나도 장날을 운운할 수 있는 그런 세대는 아니지만 다행히 그 옛날 장날을 흉내낸 곳들은 종종 봐온지라 이곳에 들어서면서 약간의 흥은 낼 수 있다. 장날의 기쁨은 뭐니뭐니해도 맛있는 먹거리들. 사람이 가진 많은 감각들 가운데 가장 큰 기쁨을 주는(?) 것이 미각이 아닌가. 그러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나왔을 터 나도 이곳에서 맛난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줘야 겠다.

<하동고택 1호점-하회맛집>

'어디서 먹으면 잘 선택했다고 소문이 날까?' ㅎㅎ 스마트폰의 위력을 여기에서 처음으로 체험했다. 많은 음식점들이 다 저마다의 개성으로 우리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도저히 어디로 향해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봤다. 검색된 많은 집들 가운데서 우리가 찾은 집은 하회맛집이다. 운이 너무 좋았다. 우리가 들어가고 난 뒤 식사를 다 마치고 나올 때까지 이곳에 왔다가 돌아간 손님이 한둘이 아니다. 정말 인기있는 집이었나 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하나 더 잡아먹는다고 일찍 음식점을 찾는 사람이 더 맛있는 안동찜닭을 먹을 수 있다.

풍악을 울리며 주안상을 받으면 너무나 잘 어울릴 분위기다. 이런 우리 선조들의 미학을 그 누가 따라갈 수 있으리오. 음식을 먹기도 전에 분위기에 취해버렸다. 여기선 뭐든 맛있을 것 같고, 무엇을 해도 좋을 것만 같다. 약간 쌀쌀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지만 그 정도는 참아줄 수 있다. 이런 분위기를 즐기수만 있다면 말이다.

간고등어가 좋을까, 헛제사밥이 좋을까, 아님 안동찜닭이 좋을까. 메뉴 전체가 안동에 오면 빼놓아선 안될 것들이라 고민이 된다. 처음 이곳을 들어설 때는 간고등어 정식으로 찜해놓고 들어섰는데 옆 테이블에서 주문한 안동찜닭이 나오는 순간 우리의 선택은 주저할 것 없이 안동찜닭으로 180도 선회했다. 그래, 뭐니뭐니해도 안동에선 찜닭이다.

음식이 나올 때를 기다리며 카메라 셔터가 불났다. 여기저기 찍어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다만 아쉬운 것은 실력이 그 마음을 따라가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ㅠ.ㅠ
 

<하동고택 1호점표 안동찜닭>

그간 이름뿐인 안동찜닭을 너무 많이 먹었었나 보다. 우리가 이걸 다 어떻게 먹을까 했는데 순식간에 접시가 바닥을 드러냈다. 손의 속도가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빨라졌다. 달콤한 간장소스에 질리지 않도록 매콤함을 가미시킨 양념과 부드러운 닭고기 살이 잘 어우러져 있다. 여기다가 당면만 좀 듬뿍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오리지널에는 당면이 들어가지 않나? 양념국물까지 물을 마시듯 시원스레 들이마신 후 진짜 하회마을을 보러 간다. 배가 든든하고 기분이 좋아지니 여행을 하기엔 최고의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