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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이야기(Korea)/가톨릭성지(Catholic place)

전주 전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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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순교성지 - 전주 전동성당


<전동성당 내부>

전동성당의 방문은 성지순례 또는 방문이라기 보다는 여름행사를 위한 답사로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다녀온 많은 성지들이 도시 외각에 가까운 곳에 위치한 탓에 전동성당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가는 많은 차들과 엄청난 인파 속에서 성당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성당의 유명세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인접한 곳에 바로 전주 한옥마을이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또 공교롭게도 학생들의 수학여행(?) 또는 소풍(?)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무지 많은 학생들의 무리 속에서 이곳을 찾을 수 있었다. 이 곳에 도착했을 때 특강이 진행되는 것 같았다. 도착했을 때에는 성당 내에서 강의가 진행되고 있어 조금 기다렸다가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외국여행 때 미사하는 도중에 들어와 성당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그리도 싫더니만 오늘은 내가 그런 짓을 할 뻔 했다. 물론 재빨리 나오긴 했지만... 이래서 사람 맘이라는게 늘 깨어있지 않으면 안된다.


<전동성당 전경>

모습은 입구 뒷편에서 바라 본 성당의 모습이다. 빨간벽돌의 색바램이 세월의 흐름을 보여준다. 매번 달력을 보면서도 이렇게 올 수 있을줄 전혀 생각지 못했다(이 곳은 달력의 인기 모델이다). 1791년 신해박해 때 한국 천주교회의 최초 순교자가 발생했다. 물론 그때부터 있던 성당은 아니다. 이곳은 그 분들이 순교한지 100여년이 지난 뒤 한 외국인 신부님에 의해 지어졌다고 한다. 그때도 이런 규모의 성당은 아니었고, 단지 민가 한채를 사들여 임시 본당으로 삼았다. 이후 신자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신자들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명동성당을 설계한 신부님이 이곳도 설계하여 짓기 시작했다고. 자그마치 23년동안 지어졌다니 이에 들인 공을 말로 설명한들 모두 설명할 수 있으리까. 

맞은편에는 태조 이성계의 영정이 보관되어 있는 경기전이 있다.

 

 

 

당의 왼쪽에 마련된 잔디밭 뒤쪽에 있는 건물이다. 수녀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은데 교육관도 겸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옆에는 유치원도 붙어 있다. 아마도 성당이 지어진 시기에 함께 지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뒤쪽으로 돌아가면 성지개발작업으로 공사를 하고 있다. 5월 성모성월을 맞아 이 곳에서 성모의 밤 행사를 하면 참 멋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성당처럼...







<성당 입구 안내문>


 

이 곳은 대구교구와도 각별한 인연이 있다. 초기 대구대목구 소속이었다가 전주지목구로 분리가 되면서 전주지역 주교좌성당으로 지정이 되었단다. 그래서인지 계산성당과도 비슷한 모습이다. ㅎㅎㅎ 하지만 이 시대 만들어진 모든 성당은 비슷한 모습을 지닌 것을...



<경기전 담너머로 보이는 전동성당>                      <수녀원과 함께 나온 전동성당>


 

씨가 조금 좋았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전체 전경을 이렇게 밖에 담을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답사였기 때문에 사진을 찍기 위한 시간을 줄일 수 밖에 없었다. 우리의 첫 여정이 이 곳이었고, 앞으로 가야할 곳도 많이 남아있어서... 아쉬운 내맘을 주님도 아시는지 내가 차키를 트렁크에 넣고 잠궈버리는 엄청난 실수를 하게 하셨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이 곳에서 3-4시간을 보내야 했다. 정말 대구까지 렉카로 끌어와야하나 얼마나 걱정했는지... 그리고 함께 온 후배들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점점 기억력이 쇠퇴해간다. 큰일이다. 세상에서 할일이 아직은 많은데...

 

<예수평화상과 순교자상>

국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바오로) 성인과 권상연(야고보) 성인의 상이다. 윤지충 성인은 윤선도의 6대손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선비였다. 사촌인 권상연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함께 공부를 했었단다. 윤지충이 잡힌 가장 큰 이유는 '제사폐지'때문이었다. 유교가 국가이념이었던 그 시대에는 제사폐지는 엄청난 반역이었다. 결국 이들은 이 자리에서 참수되어 전주 풍남문(전동성당에서 걸어서 5-10분정도)에 9일동안 내걸렸다. 한국의 첫 순교자가 된 것이다. 9일이 지났으나 이 분들의 피는 응고되지 않았으며 죽은 이들을 살리는 기적까지 남겼다. 하지만 당시 지도자들은 이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천주교가 사교(邪敎)라는 알렸다.

이 분들 외에도 5명의 순교자가 더 있다. 유항검(아우구스티노), 윤지헌, 윤관검, 김유산(토마스), 이우집
주님을 전하다 하늘로 갔으니 지금은 그분 곁에서 후손들의 믿음을 지켜보고 계시겠지.

 

 

동성당의 주변에는 많은 성지들이 있다. 전동성당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인근 성지로 나바위, 여산성지, 천호성지, 초남이성지, 숲정이성지, 치명자산, 풍남문, 초록바위, 서천교 등의 성지가 링크되어 있다. 우리가 본 것은 풍남문과 치명자산인데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이 곳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몇 일전 이 곳 정문과 성당입구 문에 붉은 락카로 낙서를 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범인은 잡았다는데 그렇게 한 이유가 몇몇 몰지각한 개신교 신자들의 행태에 분노하여 화풀이한 것이라고 한다. 개신교 신자들의 행태(물론 전체 개신교 신자들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도 너무 하지만 그렇다고 지역의 문화재이자 한 종교의 깊은 역사가 담겨있는 소중한 성지를 그렇게 훼손한다는 것은 우리의 사고가 아직 전근대적인 것에 머물러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면이라고 생각한다. 하루 빨리 서로 존중해줄 수 있는 마음이 충만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하루 정도의 일정으로 이곳 주변을 둘러보면 초기 서양 건축물에 대한 관찰과 함께 전통 문화의 체험, 유명한 전주 비빔밥의 향연을 느낄 수 있다.

가족과 함께 이곳을 다시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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