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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이야기(Korea)/가톨릭성지(Catholic place)

[제주도] 용수성지-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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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성지 전경>


근 10여년 만에 제주도를 다시 찾았다. 이번 제주도의 일정은 개인적인 선택이 1%도 포함될 수 없는 시간이었지만 나름대로 여러가지 생각들을 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하룻밤의 꿈처럼 '정말 내가 제주도를 다녀온 것일까?'라는 생각에 아직까지 의아하지만 실제였든 꿈이었든 내 기억에 2010년 제주도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이 살아가는데 보탬이 되니 또 하나의 감사해야 할 일이다.

<제주도 성지 지도>


제주도는 대한민국에 있지만 내륙에 있지 않고, 그 분위기 또한 색달라 심정적으로는 국외라는 느낌이 많이 든다. 그래서 '제주도'라는 이름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설레임을 준다. 그 설레이는 곳에서 첫 발자국을 찍은 곳이 용수성지이다. 한국의 첫번째 사제로 서품을 받고, 사목활동을 위해 고국으로 돌아오던 김대건 신부님의 첫 발자국 위에 오늘 나의 발자국도 아로새긴다. 스치듯 지나간 곳이지만 결코 스치듯 버릴 수 없는 용수성지를 다시 되새겨 본다.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기념관 입구>



용수성지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해 김가항성당에서 한국 최초의 사제가 탄생했다. 한국교회의 목자로 크나큰 사명을 짊어진 젊은사제 김대건은 상해항을 출발하여 서해를 통해 조선으로 들어오려 했으나 예상치 못했던 폭풍우를 만났고, 표류 29일(9월 28일)만에 제주도 용수리 해안에 그 첫발을 내딛었다. 용수성지에 도착한 김대건 신부의 일행은 용수리 해안에서 감사의 첫 미사를 봉헌하였고, 타고 온 선박 '라파엘호'를 수리하여 전라북도 금강 하류 나바위로 떠났다.
용수성지는 1999년 9월 19일 천주교 제주교구로 부터 성지로 선포되었고 2006년 현재의 모습으로 기념성당과 기념관이 건립되었다. 입구에는 김대건 신부의 일행에 타고 왔던 '라파엘호'를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다. 

Open: 오전 10시~오후 5시(매주 월요일 휴관)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성당 측면>


제주도의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순백색의 성당이다. 작은 시골성당 같은 편안하고 가까운 느낌을 주면서 한국 교회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이다. 어찌 나의 편안한 여정에 비하랴만은 나 역시 배를 타고 제주도로 향한지라 약간의 감정이입도 생긴다. 바람이 많은 제주도라더니 지금도 바람은 여전하다. 이 바람에 제주도로 도착하지 못했으면 어찌되었을까 싶다. 저 멀리 일본에 당도하게 되었다면 우리 교회의 모습도 지금과는 다른 형태이겠지. 역사의 한 꼭지는 길고 긴 역사에서 '한 순간'으로 기억될테지만 그로 인한 영향력은 '영원'으로 남게된다는 것에 다시한번 놀라움을 가지게 된다.

<기념성당 안내문>

<기념관 앞 바다>


1998년 제주교구 선교 10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하면서 김대건 신부님의 여정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조선으로 들어온 김대건 신부님의 일행이 처음 당도한 곳은 제주 서단에 있는 죽도(현재의 차귀도)였다고 한다. 용수리 포구는 라파엘호가 정박했던 곳이면서 사제로 조선에서 봉헌한 첫 미사의 은총이 서린 곳이다. 라파엘호가 서 있던 곳이 어딘지 궁금해 주변 바다를 둘러본다. 지금은 흔적도 없는 바다를 말이다.

...

비록 너희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몸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의 긍련하실 때를 기다리라.
....

모든 신자들은 천국에서 만나 영원히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 입으로 형제들 입에 사랑을 친구하노라.

- 김대건 신부님 마지막 옥중 서한 中에서 -



<기념관 내부 전시물>


기념관은 1층과 2층으로 나눠져 있고, 신부님의 유해와 영상실, 각종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전시물이 있다는 걸 알고 짧은 시간에 휘리릭~ 둘러봤는데 자세히 보지 못한 아쉬움이 아직도 남아있다. 우리성당 이름이 성김대건 성당이고, 주보성인이 김대건 신부님인데 정작 봐야할 것을 못보고 돌아왔따는 느낌이다. 또 다시 찾기를 기약해야 하는 건가? ^^

<복원된 라파엘호>


라파엘호는 1845년 4월 30일 제물포를 떠나 상해로 향한 김대건 신부님 일행이 타고 갔다가 다시 조선으로 입국하기 위해 타고 돌아온 배이다. 이 배를 라파엘호라고 이름지은 이유는 라파엘 천사가 여행자들의 주보이기 때문이란다. 여행을 좋아하면서도 정작 나는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다. 에효~ 어찌되었던 조선을 떠나 다시 조선으로 돌아올 때까지 5개월 12일 동안 신부님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것이 라파엘호다. 신부님과 함께 조선으로 들어온 페레올 주교님이 파리의 동료 신부님에게 보낸 서한에 배의 구조가 그려져 있었다. 그 덕분에 지금 우리는 라파엘호의 모습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것이다. 현재의 첨단 선박들만을 보아온 나로서는 '어떻게 저런 배를 타고 왔을까' 싶은데 그것도 주님의 은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당시 조선해안은 외국선박이 자주 출몰하여 해안경비가 매우 심했다하니 이곳 제주도에 당도한 것이 더욱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라파엘호 항해도: 용수성지 홈페이지 참조>



사제로 서품받고 1년하고 1달을 보내고 새남터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그라진 김대건 신부님의 일생을 다시금 되새겨보는 귀한 시간이다. 신부님의 그 마음이 하늘에 닿은 탓인지 현재 한국교회는 아시아 교회에서도 꽤 중요한 위치를 지키고 있다. 사실 우리의 노력보다 선조들의 피와 노력으로 현재를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느님을 그릴 수 있는 마음만으로도 행복했던 선조들의 모습과 하느님의 이끄심을 살짝 살짝 모른척하고 싶은 우리의 모습을 한번쯤은 함께 살펴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저는 주님을 위해 죽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원한 생명이 저에게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죽은 뒤에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천주교를 신봉하십시오."

- 김대건 신부님이 참수되기 전 남긴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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