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 마을 이야기(Korea)/가톨릭성지(Catholic place)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 겸재를 간직한 수도원 풍경

728x90

<왜관 수도원의 옛성당과 사무실>

주말 피정을 위해 왜관 수도원으로 향했다. 소원했던 우리 사이를 좁히기 위해 하느님이 먼저 내게 손을 내미셨다. 바보 같이 그 손 덥석 잡지도 못하고 팅겨대다가 겨우 그 손 끝을 잡았다. 아~ 벌써 여기 왔었던게 6년 전이구나. 그때와 지금의 모습, 안타깝게도 너무 많이 변해 있다. 지금의 모습도 그리 나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섭섭한 마음이 든다.


피정 중 2시간이 넘는 휴식시간이 주어져 한참 방에서 어슬렁거리다가 겨우 밖으로 나갔다. 돌아나오다 보니 '좀더 일찍 나올걸...'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랬다간 피정보단 다른 것에 더 집착하게 될 것만 같다.
왜관 수도원(정식명칭: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은 1909년 뮈텔 주교가 베네딕도 수도회를 한국으로 초청하면서 시작되었다. 서울 혜화동 가톨릭 대신학교와 동성중고등학교 자리에서 처음 시작되었지만 일제시대 탄압과 한국전쟁 등으로 수도회는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그러다 1952년 남한으로 피신한 20여명의 베네딕도 회원들이 대구 주교관에서 생활하면서 왜관과 낙산에서 본당사목을 시작했다. 1956년 로마로부터 정식 수도원으로 인가되었고 사목권한도 위임받아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다.
"기도하고 일하라"라는 모토를 두고 현재 왜관 수도원에서는 순심 중·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고, 분도출판사와 인쇄소, 피정의 집(한국 최초 피정의 집, 1964), 유리공예, 금속공예, 가구공예, 사회복지사업 등을 운영하고 있다.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자급자족하기도 하는데 난 왜관 수도원에서 만드는 소시지(일명 순대라고도 부르는 독일식 소시지)가 젤로 좋다.

<왜관 수도원 새성전>

2007년 부활을 3일 앞둔 성금요일 큰 화재로 수도원 본관이 대부분 소실되었다. 당시 건물이 목조건물인 터라 생각보다 손실이 컸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뉴스에서 수도원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가족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왜관 수도원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을 했고, 2009년 수도원 한국진출 100주년이 되던 해에 새성전을 봉헌할 수 있었다고 한다.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된 새성전은 수도자를 포함한 신자 50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로 지어졌다.


<화재 전 사용하던 성전>

화재 전 사용하던 성전의 모습이다. 지금은 새성전에서 모든 기도와 미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이곳에 갈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화재 때 성당은 크게 소실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개방은 하지 않는 듯 하다(아마도...). 2005년 성소주일 아이들을 데리고 방문했을 때의 모습이다. 제대 뒤에 걸려있는 십자가상만 보다가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모습의 십자가상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새성전의 십자가상도 그렇게 생겼다. 오랜 기억의 한 페이지를 끄집어 냈다.

<성당 입구 베네딕도 성인상>

이탈리아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베네딕도 성인은 로마로 유학을 갔지만 환락과 유흥으로 가득한 모습에 실망해 로마를 떠나게 되었고, 수비아코 계곡 천연 동굴에서 생활하면서 고독한 은수생활을 하였고, 그 곳에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체험했다고 한다. 특히 베네딕도 성인은 몬테카시노 수도 공동체에서 저술한 규칙서 <베네딕도 규칙(Regular Benedicti)>이 서방 수도자들의 생활 기준이 되는 초석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수도원 규칙서를 들고 있다. ㅎㅎ

<새성전 전면부 모습; 올해 부제서품식의 모습>
아래 사진 3장은 왜관 수도원 사진첩
http://osb.or.kr/board/bbs/board.php?bo_table=menu_04_03에서 가져옴

사방이 깨끗하고 하얀 새종이처럼 시원스럽게 만들어진 성전의 모습이 오로지 기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한 듯 하다. 그동안 번잡한 마음으로 기도에 집중하지 못했었는데 분위기 때문인지 하루 3번의 기도와 성무일도, 하루 한번의 미사가 너무나 편안하고 좋았다. 수사님과 함께 기도하고 미사하는 특별한 경험이 주님과의 소원했던 거리를 좁혀나가는데 모티브가 될 수 있음 좋겠다. 뭐... 내 맘이 중요하겠지만.


서품식을 보면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 이것이다. 가장 낮은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그 분을 본받아 나 역시 가장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 다짐하게 되는 모습이다. 이렇게 다짐하면서 그 분들은 예수님의 삶을 살아간다.

<성당 내부 모습>

성당 내부는 세로가 긴 직사각형의 모양으로 전면부 제대가 있고, 그 앞으로 수도자석이 88석, 그 뒤를 이어 일반 신자들의 좌석이 400여석 마련되어 있다.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는 성전 내부에서 가장 화려하게 장식된 것이 오르간이다. 왜관 수도원의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오딜리아 연합회에 소속된 유럽과 미국의 수도원에서 기증한 오르간으로 독일에서 제작되었단다. 총 2748개의 파이프로 구성된 오르간의 몸체는 지름 10m, 10t의 무게에 달한다. 앉아있으면서 저 오르간 한번 쳐보고 싶단 생각이 굴뚝 같았다. 유럽성당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니 이곳에선 꼭 한번 쳐보고 싶었다. ㅎㅎ

<겸재 재의 금강내산전도>

미사를 드리기 전 약간의 시간이 남아 왜관 수도원의 유물관을 살짝 둘러볼 수 있었다. 겸재의 그림을 수도원에서 소장하고 있다는 수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알기로 겸재는 정선을 이야기하는데 그 그림이 이곳에 있다고? 왜? 알고보니 2009년 KBS 다큐멘터리에도 소개되었다고 한다. 수사님께서 당신이 친히 독일까지 가서 흰 장갑을 끼고 고이고이 이 그림들을 가지고 오셨다고 무지하게 자랑스러워 하셨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장갑을 낀 손이 당신이라고. ㅎㅎ 익살스러운 수사님... 물론 이 유물관에 있는 겸재의 그림들은 모두 복사본이다. 진품들은 '우리만이 알고 있는 그 장소에 보관하고 있다'고 하셨다. 왜관 수도원에는 분명히 있다고 재차 강조하신다. 수도원으로서도 엄청난 자랑거리이지만 한 국가의 입장에서도 상당히 귀한 유물이다. 화재에 소실되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다.


산새의 모양이 과연 비범함을 갖추고 있는 금강산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헤아려 보면 꼭 일만이천봉일 것처럼 자세하게 그려져 있고, 골짜기에 위치한 암자까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어 놀랍다.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초대 원장인 노르베르트 베버(Norert Weber)는 한국 선교를 위한 준비로 1911년과 1925년 2번에 걸쳐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남겼던 일기와 사진, 메모 등을 토대로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던 우리나라의 고유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라는 책과 영화를 만든 것을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작년 KBS스페셜에서 방영했다. 꼭 한번 보길 권한다. 너무나 생생하게 우리나라의 옛모습을 볼 수 있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보아야 할 중요한 자원이라 생각한다). 두번째 한국 방문에서 금강산에 들렀다고 하는데 당시 묵었던 호텔에서 이 그림들을 발견했고 그 곳에서 겸재의 그림 21점을 구입했다고 한다. 이후 독일에서 긴잠에 빠졌던 겸재의 화첩은 1975년에 한국인 독일 유학생 유준영을 통해 발견되면서 외부로 알려졌고, 1991년부터 왜관 수도원에서 화첩의 반환을 위한 방법을 고민했다고 한다. 당시 겸재의 그림이 많은 관심을 받았던 터라 수 많은 경매회사들이 수도원을 찾아와 엄청난 가격을 제시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2005년 8월,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서는 형제 수도원이라 할 수 있는 한국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으로의 반환을 결정했고, 영구적으로 이곳 왜관 수도원에서 소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상 베네딕도 수도회 홈페이지 참고) 만약 그 당시 독일로 가지 않았다면 어쩌면 남아있지도 않을 귀한 자료이다.


수도원에 화재가 났을 때 수사님들이 죽을 각오를 하고 다시 들어가 꺼내온 작품들이다. 작은 전시관에 겸재의 그림과 수도원의 역사를 소개하는 문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수도원 초기 편지들도 남아있고, 각종 성물들도 전시되어 있다. 교회의 역사이자 한국의 역사이기도 하다.


<유물관 내 모습>


<2005년 봄, 수도원의 모습>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봄이 오면 동생과 함께 수도원을 다시 찾기로 했다. 최근들어 성당 건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동생이 와서 본다면 좋아할 것 같아 돌아와서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했다. 그땐 수도원 뿐만 아니라 근처에 있는 가실성당과 신나무골도 함께 들러봐야 겠다.
반응형

인스타그램 구독 facebook구독 트위터 구독 email보내기 브런치 구독

colorful png from pngtree.com/

DNS server, DNS serv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