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도시 페스(Fes)의 가장 큰 매력은 사방 팔방으로 엮여있는 메디나의 골목일테다.
알려진 골목의 갯수만 9천개 이상이라고 하니 상상을 초월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페스 골목을 오갈 때는 '길을 기억해야지', '길을 찾아가야지' 하는 생각은 아예 못했던 듯 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헤매다 보면 언젠가는 원하는 곳에 도달하게 된다.
메디나(Medina)는 '구시가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대개 도시의 중심인 이슬람 사원에서 부터 시작해 시장, 식당 등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모로코 도시 여행을 할 때 메디나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페스의 메디나가 거미줄 보다 더 복잡한 미로의 골목을 가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도시를 방어하고 수호하기 위함이다.
외부 군사들이 한꺼번에 골목 안으로 침입하지 못하도록 좁은 문과 골목으로 연결했고, 혹여 들어온다 해도 건물 위에서 화살을 쏘면 우왕좌왕하는 군사들을 쉽게 진압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이다. 놀라운 건 그때의 그 골목을 지금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골목이 좁다보니 차는 엄두도 못낼 일, 메디나의 시장 상가에서는 대부분 당나귀로 물건을 옮긴다. 짐을 가득 실은 당나귀가 다가오면 사람들은 홍해가 갈라지듯 양 옆으로 비켜선다. 페스의 메디나는 시간도 비켜간 듯 하다.
이른 아침의 메디나는 시끌벅적한 낮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렇게 똑같은 대문과 골목을 보니 알리바바를 찾아온 도적이 X를 쳐 놓은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모로코에서 최초의 이슬람 왕국을 세운 이드리시 1세가 '평등'을 강조하면서 적어도 겉으로 봤을 때 부유한 집과 가난한 집의 구분을 없애기 위해 똑같이 생긴 창문과 출입문, 장식이 없는 벽을 규정했다고 한다. 정말이지 하나같이 똑같이 생겼다.
밤에도 메디나의 부산스러움은 여전하다.
어쩌다 메디나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되면 방향을 찾는데 큰 지표가 되는 것이 '블루 게이트(Bob Boujloud)'다. 본래 이름은 밥 부즐렛이지만 여행자들에겐 블루 게이트로 통하고, 이제는 안내판에도 블루 게이트로 표기되기도 한다.
블루 게이트의 벽면이 방향에 따라 서로 다른 색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아무리 걸어도
흩어진 시간의 조각을 찾을 수 없을테지만
스쳐오는 너의 이야기가 있다면
기꺼이 멈추리라.
일 년 전에도 이러했을 것이고
백년 전에도 다르지 않았을 이 길에서
한 걸음에 오늘을 만나고
또 한 걸음에 너를 만난다.
그리고 언젠가 이 길의 끝에서 나를 만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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