쾰른에는 그들이 자랑하는 '물'이 있다.
언뜻 생각하기에 거대한 라인강이 흐르는 쾰른이라 풍부한 물로 많은 혜택을 입었다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중세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은 쾰른도 피해갈 수 없었고, 흑사병 이후 도시는 더럽고 피폐한 곳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 속에서 피어난 것이 있으니 바로 향수의 전설이라 불리는 오 드 콜로뉴(Eau de Cologne)다.
오 드 콜로뉴(Eau de Cologne)... 말하자면 '쾰른의 물(water from Cologne)'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쾰른의 물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이탈리아인인 Giovanni Maria Farina(1709년)였다. 이것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1792년, Wilhelm Mülhens가 수도승에게 결혼선물로 받고, 쾰른에 오드 콜로뉴를 만드는 공장을 설립하면서 부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향수를 처음 만든 G. M. 파리나보다 4711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4711이라는 이름은 프랑스군이 독일을 점령하면서 점령지 파악을 위해 집집마다 번호를 붙였고, 그 때 붙여진 번호가 4711 즉, 4711번지였다. 당시의 번지수가 지금까지 이어지며 세계적인 향수 브랜드의 대표 이름(그래서 붙여진 원래 이름은 Eau de Cologne & Parfümerie Fabrik Glockengasse No. 4711)이 되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당시 주소록을 보면 4711번지에 Wilhelm Mülhens의 이름이 씌여져 있다.
Glockengasse 4711에 있는 오 드 콜로뉴 오리지널 하우스 입구에는 '쾰른의 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으레 향수란 화려하고 아름다운 포장용기 속 담겨있어야 하는 것인데 오 드 콜로뉴 4711은 별로 특징적일 것이 없는 투명한 병에 담겨 있다. 사전지식이 없었다면 주류점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향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겐 제 아무리 쾰른의 물이라해도 이곳은 단순한 향수매장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넘어설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향수 박물관"이다. 매장의 2층에는 오 드 콜로뉴 4711의 역사를 보여주는 작은 박물관이 있다.
오 드 콜로뉴 4711가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온 역사와 4711과 관련된 인물들, 향수를 담은 용기,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훈장과 인증서까지 작지만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4711이라는 번지를 부여하는 장면까지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실인지 알 수 없지만 나폴레옹이 목욕물로 사용할 만큼 이 향수를 좋아했단다. 당시 프랑스 군인들은 집으로 돌아갈 때 이 향수를 선물로 가지고 가는 것이 대유행이었다고...
매주 토요일에는 가이드 투어까지 진행된다. 이 작은 박물관을 둘러보는 가이드 투어가 1시간이나 걸린다고 하니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것의 극히 일부일 뿐인가 보다. 참고로 가이드투어는 미리 신청해야만 참여할 수 있다.
▶ 가이드투어 신청: http://www.4711.com/index.php/de/anmeldeformular-fuer-historische-fuehrungen.html
유명한 상품들의 제조방법은 자식도, 며느리도 모른다 했던가.
4711도 알코올을 증류하여 베르가모트, 레몬, 오렌지, 장미 등이 함유되었지만 그 비율은 지금까지도 비밀로 전수된단다. 실제로 의학적인 효과까지 있다고 전해지면서 두통을 가진 사람이나 피부병이 있는 사람들이 즐겨찾기도 한다. 지금은 구강청결제와 비누 등 다양한 제품으로 제조되어 판매하고 있다.
▲ 쾰른의 상징이 된 4711 향수. 쾰른 시내에서 어렵지 않게 매장을 만날 수 있다.
또 하나의 쾰른의 물이라 할 수 있는 쾰슈(Kölsch) 맥주.
세계적인 맥주 강국 독일에서도 쾰른 사람들이 가진 쾰슈에 대한 자부심은 둘째가라면 서럽다. 상면발효과 저온숙성을 통해 깔끔하고 가벼운 맥주를 만들어 냈다. 맛도 맛이지만 쾰른에서 만든 맥주만이 '쾰슈'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도록 법이 보장하고 있어 괜히 더 신뢰가 간다.
쾰른 대성당 앞에 있는 가펠하우스를 찾았다. 중세시대 맥주 양조자 길드였던 '가펠'은 7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쾰슈를 판매하는 브로이하우스에서는 다양한 볼거리도 놓칠 수 없다.
흰셔츠와 검은 조끼와 바지, 그리고 짙푸른 앞치마를 두른 건장한 웨이터가 맥주트레이를 가지고 바쁘게 오가는 모습도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재미난 풍경이다. 그들은 쾨베스(Köbes)라는 고유의 이름을 가질만큼 브로이하우스의 상징이 되었다.
또 쾰슈는 200㎖의 전용잔에 마셔야 제 맛이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얇고 긴 쾰슈만의 잔에 금빛 맥주를 담아준다.
아무리 맛난 맥주라 해도 적절하게 곁들일 음식이 있어야 제맛을 즐길 수 있는 법!
우리에게 '치맥'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슈바인학세(schweinehaxe)'가 있다. 뿐만 아니라 감자, 소시지 등 맥주에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많은 음식들이 있다.
돼지고기 정강이로 만든 슈바인학세는 독일에 머무는 내내 먹었던 대표 음식이다. 같은 재료로 굽고 튀기고, 훈제하는 등 다양한 조리법을 할용하니 전혀 다른 음식 같기도 하다. 슈바인학세가 물릴 때 자우어크라우트(Sauerkraut)로 입가심하면 다시 슈바인학세가 당긴다.
그리고 소시지와 감자.
독일 음식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감자이다. 감자튀김이야 어디든 똑같지만 삶거나 구운 감자는 식감이 우리가 늘 먹던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스펀지를 입에 넣은 듯 폭신폭신한 식감이 묘한 느낌을 주는데 이상하게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독일에서 왠 피자?! 싶지만 어찌 늘 독일음식만 가지고 살겠나.
익숙하게 먹던 음식으로 한번씩 기분전환 해주는 것도 여행의 입맛을 유지하는 괜찮은 방법이다. 대체적으로 짠맛이 많이 느껴지는 독일의 음식들이지만 맥주와 곁들이기엔 이 보다 좋을 수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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