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독일일정을 계획하며 큰 설레임을 주었던 한 가지, 바로 '진짜' 독일맥주를 바로 '그곳'에서 맛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내 기분을 알았는지 여행의 시작을 열어주었던 루프트한자 독일항공은 기내식에서 자신있게 그들의 맥주 Warsteiner를 내놓았다. 캔맥주라 섭섭함도 없진 않았지만 장거리 비행에서 무엇을 더 바라겠나. 당당히 '맥주의 여왕(Eine königin unter den bieren)'이라고 적혀있다. 거기다 왕관까지... 덕분에 맥주에 대한 기대감은 하늘까지 솟아올랐다.
지금은 많이 사라지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독일의 웬만한 맥주집들은 양조장을 함께 운영한다. 지금도 독일 내 양조장의 수가 1,000개를 훨씬 넘는다하니 예전엔 얼마나 많았던 걸까. 플라시보 효과일지도 모르지만 양조장에서 맛보는 맥주는 진정으로 신선함이 느껴진다. 가득히 차오르는 거품에서 부터 투명한 빛깔,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까지 환상적인 조합이다.
양조장에 따라 투어가 가능한 곳들도 있으니 맥주 매니아라면 한번 참여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하와이 코나 브루잉 컴퍼니 맥주 양조장 투어(http://www.kimminsoo.org/620)
▲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의 한 양조장
각기 양조장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역사와 명성을 소개한다.
수상경력, 양조장의 역사와 관련한 사진, 기사 등이 멋진 내부 장식이 됐다. 세계적 명성을 가진 독일의 맥주가 서로 우열을 겨루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깨알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 뮌헨(München)의 비어가든
독일에서 맥주를 마신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이 비어가든이다.
뮌헨의 비어가든이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지만 요즘은 다른 지역에서도 비어가든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 뮌헨의 비어가든은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비어가든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일행이 아닌 사람들과도 어울릴 수 있다는 점이다. 커다란 1ℓ 잔에 넘칠듯한 맥주를 들고, 초면이지만 반가이 인사를 하며 여행의 재미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 비어가든을 제대로 이용하기 위한 TIP!
- 먼저 자리 잡는 사람이 임자
비어가든의 빈자리는 먼저 자리 잡는 사람이 임자다. 합석도 일상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처럼 한 사람이 먼저가서 많은 자리를 잡아놓는다던가 앉지도 않을 자리에 짐을 올려놓는 것은 큰 실례가 될 수 있다.
- 대부부 셀프서비스로 운영
비어가든은 대부분이 셀프서비스로 운영되고 있다. 다만 테이블 위에 테이블보가 있다면 셀프서비스가 아니다.
음식이 가격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웨이터나 웨이트리스의 서비스를 받는다면 팁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셀프서비스가 경제적이다. 심지어 어떤 곳은 손님이 잔을 꺼내 씻고, 직접 맥주를 따라야 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 싸가지고 오는 음식도 OK
셀프서비스로 운영되는 비어가든에서는 외부에서 음식을 사와도 된다. 때문에 비어가든 주변에는 맥주가 아닌 다른 주전부리를 판매하고 있는 곳들도 자주 볼 수 있다. 맘에 드는 음식이 있다면 사와서 맥주와 함께 곁들여도 좋다. 단, 테이블보가 있는 곳은 안된다.
일반적으로 맥주는 발효방식에 따라 상면발효, 하면발효로 나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라거(Lager), 체코 대표맥주 필스너(Pilsner) 등이 대표적 하면발효 맥주다. 하면발효 맥주는 바닥에 가라앉는 효모를 사용하여 5-15℃의 온도에서 긴 시간(8-10일 정도) 발효시킨다. 주로 알코올 도수가 낮은 경우가 많고 부드럽고 깔끔하다. 상면발효 맥주는 표면에 떠오르는 효모를 사용하여 15-25℃의 온도로 짧은 시간(4-6일) 발효한다. 하면발효 맥주에 비해 무게감이 느껴지고 쓴맛이 강하며 알코올 도수가 높은 편이다. 독일 맥주들은 하면발효 맥주가 많지만 지역에 따라 상면발효 맥주를 선호하는 곳도 있다.
또 하나의 구분방법은 맥주의 색에 따른 구분이다.
흑맥주라 불리는 짙은 색을 가진 둔켈(Dunkel), 슈바르츠(Schwarz) 등이 있고, 하얀색 맥주라는 뜻을 가진 바이스비어(Weissbier)도 유명하다. 바이스비어는 밀로 만든 맥주를 의미하는데 흰색(weiss)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금빛에 가깝다. 독일의 다른 맥주에 비해 흰색에 가깝다는 의미인 듯 하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독일에선 그 지역의 맥주를 마셔봐야 한다. 맥주에 대한 자존심이 강한 독일에선 대체로 지역을 대표하는 맥주를 가지고 있다.
▶ 물이 좋기로 유명한 쾰른의 맥주 쾰슈(Kölsch)
쾰른지역은 예로부터 좋은 물로 알려진 곳이다. 그래서 향수, 맥주 등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인지도가 높다.
쾰른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지역 맥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하면발효 맥주가 대부분인 독일에서 상면발효를 선택했고, 거기다 저온숙성을 더해 아주 부드러운 맥주를 만들었다. 또 원산지 표기법(AOC-주로 와인에 사용하며 맥주에는 흔치 않다)을 통해 오로지 쾰른에서 만들어진 맥주만 '쾰슈(Kölsch)'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만들었다. 지금은 소규모 양조장에서 대부분 만들어진다. 아마도 이런 희소성이 인기에 큰 몫을 하는 듯 하다.
여튼 쾰른지역 사람들은 쾰슈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고 한다.
쾰슈를 제대로 맛보기 위해서는 200㎖의 전용잔에 마셔야 한다. 이것도 쾰른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잔이다. 또 이 잔을 테이블까지 나르는 트레이를 보는 것도 재미난 풍경이다. 큰 것은 한 번에 17잔이나 옮길 수 있단다.
▶ 독일 밀맥주의 본고장 뮌헨, 그리고 바이스 비어(Weissbier)
뮌헨은 세계적인 맥주 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지만 독일의 밀맥주 본고장으로도 유명하다. 독일의 밀맥주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바이에른의 공작이었던 빌헬름 4세가 공표한 독일맥주 "순수령(Reinheitsgebot, 1516년)"을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맥주를 만드는 원재료로 보리, 홉, 물(Cersten, Hopfen und Wasser) 외에는 사용해서는 안된다."
'맥주의 질을 낮추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만든 법'이라고 알려졌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다른 의도가 있었다. 빵을 만드는 재료였던 밀이 맥주에 사용되면서 공급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빌헬름 4세는 밀을 맥주에 사용할 수 없도록 맥주 순수령을 통해 "보리"를 사용하게 하였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밀로 맥주를 만들었는데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바이에른 지역에서만 밀맥주를 만들 수 있게 했고, 이 또한 궁정 양조장에서만 양조할 수 있도록 하였다. 덕분에 바이에른은 맥주 순수령 가운데서도 밀맥주를 생산할 수 있었다.
밀 맥주를 weiss라고 부르는 이유는 원래 짙은색이었던 뮌헨의 맥주가 필스너의 등장으로 판매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조금더 옅은 색으로 만들면서 이전과 비교해 '하얀 맥주'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바이첸비어(Weizenbier)라 불리기도 한다.
참고로 그 이후 효모(Hefe)를 포함할 수 있다는 개정 법령(1551년)이 나오고 1906년 독일 전역에서 지켜야 할 국법이 되었다.
▶ 맥주? 칵테일? 베를리너 바이세(Berliner Weisse)
베를린도 뮌헨처럼 밀맥주가 유명하지만 그 모양새는 사뭇 다르다. 엄밀히 보리 맥아 75%, 밀 맥아 25%로 혼합 맥아를 사용한다. 신맛이 강해 갈증해소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베를리너 바이세는 여름맥주로 인기를 끈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계절에 맛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베를리너 바이세 역시 쾰슈처럼 베를린에서 만들어진 것에만 이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지금까지 맥주 순수령을 목이 터져라 외쳐왔는데 이건 뭐지?"라는 생각에 허탈함을 감출 수 없다. 그것도 빨대가 꽂힌 맥주라니... 솔직히 맥주라 하기엔 좀 아쉬움이 있지만 베를린의 특산품으로 생각하고 한번쯤 맛보는 것은 괜찮을 것 같다.
과거 나폴레옹의 병사들은 샴페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단다. 딸기가 들어간 붉은색 맥주와 허브가루를 넣은 초록색 맥주가 있는데 붉은 맥주는 꼭 감기시럽을 먹는 듯 했다. 물론 베를린엔 베를리너 바이세 말고도 베를린에서 양조한 필스너, 베를리너 필스너도 쉽게 만날 수 있다.
▶ 다양한 디자인의 인테리어
독일의 주점 혹은 호프는 내부 디자인도 각양각색이다. 오래된 성에 들어온 듯한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현대적 세련미를 더한 곳, 엄청나게 넓은 비어홀 등 다양한 모습의 맥주집을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인테리어 디자인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한다.
▶ 다양한 모양의 맥주잔
어딜가나 똑같은 모양의 500㎖ 맥주잔을 보다가 이렇게 다양한 모양의 맥주잔들을 보니 눈이 돌아간다. 때때로 만나게 되는 '이 맥주엔 반드시 이 잔!' 이라는 나름의 공식은 맥주의 격을 더 놓여주는 것 같다. 거품을 제대로 즐기 수 있는 잔, 거품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잔 등 다양하지만 무엇보다 용량이 적힌 얇은 쾰슈잔이 내 맘 속에 쏙 들어왔다. 한 독일사람의 말로는 독일에는 용량에 딱 맞게 맥주잔을 채워야한다는 법도 있다고 한다.
참 재미난 나라다.
▶ 특색을 가진 잔 받침대
대부분의 맥주집에선 그곳을 상징하는 잔 받침대를 사용한다.
우리나라 호프집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선명한 특색을 드러내주는 것은 드문 것 같다. 역사를 보여주는 것도 있고, 홈페이지나 연락처를 기록해 놓은 것도 있고, 특정 콘테스트에서 상을 받았다는 것을 부각시켜둔 것도 있다.
그저 재밌다는 생각에 하나, 둘 모았는데 한데 모아두니 그럴싸한 현지 기념품이 되었다. 큰 돈 들이지 않으면서도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좋은 기념품이 된 것 같다.
▶ 바이에른의 전통복장의 웨이터, 웨이트리스
본래 바이에른의 전통복장이었지만 지금은 독일의 많은 비어홀에서 볼 수 있는 복장이다. 여성 전통복장을 드린들(Drindl)이라 하고 남성 전통복장을 레더호제(Lederhose)라고 부른다. 특히 뮌헨에서 열리는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의 지정복이라 해도 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전통복장을 하고 나타난다. 전통복장은 언제나 여행자들을 설레게 만든다. 직접 구입하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추억 속에 넣어둔다.
바쁜 독일 일정 속에서 매일 밤 즐기는 맥주 한 잔은 크나 큰 피로 회복제가 되어 주었다. '맥주의 질'을 고려하며 지금까지 쌓아온 그들의 노하우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독일에서 맥주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 하나의 문화현상이었다. 맥주를 통해 독일의 문화에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간 느낌~ 그래서 더 의미있는 먹거리가 됐다.
'서쪽 마을 이야기(Europe) > 독일(German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유롭거나 혹은 다이나믹한 쾰른의 주말 풍경 (2) | 2014.11.04 |
---|---|
독보적 존재감을 자랑하는 쾰른대성당(Kölner Dom) (8) | 2014.10.21 |
독일인의 집에서 보낸 2박 3일 홈스테이 (19) | 2014.09.17 |
프랑크푸르트(frankfurt am main) 명소 한번에 둘러보기 (6) | 2014.09.09 |
유럽여행에서 만나는 기분좋은 아침 풍경 (8) | 2014.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