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방문할 때 특별한 용무가 없더라도 한 번은 꼭 방문하게 되는 도시가 프랑크푸르트다. 한국에서 독일로 향하는 대부분의 항공은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며, 종착점이 아니더라도 그곳을 거쳐지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경제적 규모 외에는 별볼일 없는 도시라 부르기도 하지만 독일 5대 도시에 해당하는 프랑크푸르트가 정말 볼 것이 없는 걸까 확인해보고 싶었다.
독일은 2차 대전의 영향으로 구시가지가 많이 파괴되었고,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현대식 도시의 면모를 갖춘 곳들이 많다. 그 중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프랑크푸르트지만 그 가운데서도 흩어진 점들 마냥 눈에 띄는 구시가지가 있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특별한 목적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스쳐지나가는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렸다.
▲ 같은 곳, 다른 느낌(유럽 중앙은행)
↖ 저녁 & 아침 ↗
사실 프랑크푸르트(정식명칭: frankfurt am main)는 독일이라는 이름에 가둬두기엔 너무 큰 도시이다.
독일과 프랑스가 주축이 되어 유럽연합이 창설되면서 유럽 전체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그 중심은 뭐니뭐니해도 '경제'다 보니 유럽 경제의 중심인 프랑크푸르트는 언제나 관심의 한 가운데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대규모 박람회(메세 messe)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잊혀질 수가 없다.
저녁을 먹은 뒤 시가지 산책에서 만난 대형 유로화(€)는 프랑크푸르트의 위상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이곳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의 은행들, 증권 거래소 등이 줄지어 서 있다. 해질녘 오페라 극장(Oper)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선율과 12개의 별을 품은 유로화의 상징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나에겐 짙은 향기를 남겼다.
▲ 쿠텐베르그 동상
독일에서 만날 수 있는 수 많은 동상들~
괴테, 쉴러, 베토벤이 동상의 주인공인 경우가 많아 당연히 그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또 이곳은 괴테광장과 가까운 곳이 아닌가. 헌데... 뜻밖에도 쿠텐베르그 동상이다. 한 손에는 책들을 들고~ 아마 자기가 발명한 활판으로 인쇄한 책들이겠지?
세계 역사의 판도를 바꿔놓은 인쇄술이니 독일에서 자부심을 가지는 건 당연지사, 매년 열리는 프랑크푸르트 도서박람회의 존재이유이기도 하겠다.
그의 업적이 대단하긴 하지만 이 지점에선 왠지 우리의 직지심경(直指心經; 현존 세계 최초 금속활자)을 한번쯤 떠 올리면 좋겠다.
▲ 차일거리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이 오갔던 차일거리(Zeil Strasse). 고층빌딩과 화려한 쇼핑몰이 모인 세련된 거리다.
생기넘치는 거리엔 젊은이들이 가득하다. 이 거리의 명물인 벨로택시(Velotaxi)르 타고 둘러봐도 좋을 것 같다. 아니, 차일거리를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유일한 자동차다.
차일거리에 들렀다면 쇼핑을 하지 않아도 My Zeil은 가볼만 하다.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차일거리에 들어서는 순간 시선을 압도한다. 마치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을 모두 빨아들이겠다는 비장함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My Zeil이 흥미로운 이유는 유럽에서 가장 긴 에스컬레이터가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외관에서 보았던 유리관이 실내까지 이어진다.
장장 47m나 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5층으로 곧바로 이동할 수 있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놀라고,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예측불가능한 기하학적 디자인에 놀라고... 건물 모양에 흠뻑 빠져 쇼핑은 생각도 못하겠다.
신도시 이미지가 강한 이곳에도 나름 구시가지가 있다.
프랑크푸르트 여행자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필수 핫스팟으로 여겨지는 바로 그 곳~ 뢰머광장.
뢰머광장으로 향하는 길목에선 이미 구시가지의 향기가 퍼져나간다. 자동차보다는 트램이 더 어울리고, 시계의 째깍거림이 다른 어느 곳보다 느릴 것 같은 곳, 밤이 되면 목각인형들이 뛰쳐나와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아기자기한 곳이다.
▲ 오스트차일레(Ostzeile, 목조건물)
▲ 정의의 분수
화려한 뢰머광장(Röemerplatz)!
뢰머는 로마를 의미하는 말이다. 로마군이 현재의 독일로 들어와 점령하면서 게르만족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다른 듯 하면서도 같은 모습, 같은 듯 하면서도 다른, 한창 유행했던 노랫말 가사가 떠올려지는 광장의 모습이다. 많은 여행책자들이 프랑크푸르트 편 표지사진으로 이곳을 선택하기에 익숙하게 다가올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는 느낌은 사진을 볼 때와는 사뭇 다르다. 동화책의 마을이 틔어나온 것 같은 모습이다.
광장의 한 가운데 있는 유스티티아의 동상, 뢰머광장의 상징과 같은 곳이다. 정의의 여신인 유스티티아는 법원에선 흔히 볼 수 있지만 이곳엔 왠일일까? 추측컨대 15세기 시청사가 들어오면서 시민들이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이 도시를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게 아닐까 싶다.
창문의 갯수에 따라 세금을 매겼다는 독일... 오스트차일레는 부유한 사람들이 살았던 곳인가? 하긴 비단상인들이 오갔던 숙소라하니 비싼 값을 매겼어도 꽤 많은 사람들이 찾았을 것 같다.
▲ 뢰머광장의 시청사
3채의 비슷한 건물이 사이좋게 붙어있는 저 곳이 바로 시청사다. 원래 귀족의 집이었던 3채의 집을 한꺼번에 구입해 시청사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한 때 황제 대관식이 치뤄졌던 곳이기도 하단다. 뾰족한 지붕들 사이에서 블럭처럼 만들어진 건물을 찾으면 그곳이 시청이다. 창도, 문도 모두 다른 모양을 하고 있어 꽤 흥미로운 건물이다.
뢰머광장에서 살짜기 보이는 대성당~ 저 곳으로 가야겠다.
가는 길에 만난 이것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다들 이곳에 누워보길래 나도 따라 잠깐동안 누웠다. 누워보니 점점 더 커지는 궁금증.. 천정이 아름다워서인가?
바로 이 천정!
프랑크푸르트 대성당, 이곳에서 황제의 대관식을 치뤄 카이저돔(Kaiser Dom)이라 부르기도 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에서는 Catholic Church보다 이를 나눈 세부적 명칭을 더 자주 볼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 시기 만들어진 둥근 지붕을 돔이라 부르지만 독일어권에서는 대성당을 돔(Dom)이라 부른다. 이탈리아식으로 하면 두오모(Duomo)가 되겠다. 우리는 그냥 다 같은 성당이지만 유럽에서는 바실리카(Basilica), 카테드랄(Cathedral), 키에사(Chiesa) 등 그 쓰임새와 규모에 따라, 그리고 누가 거주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나눠진다.
이곳은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권위를 가지는 성당으로 기억하면 될 것 같다. 유럽에서는 흔히 볼 수 없었던 붉은 벽돌이 인상적이다.
사실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의 진짜 이름은 바르톨로메오(St. Bartholomaus Dom)성당이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바르톨로메오를 기리며 이름 붙였다. 유럽에는 워낙 화려한 성당들이 많은지라 처음 느낌은 크게 강렬하지 않았지만 <대성당>이라는 이름이 붙은 성당들에 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 좋았던 곳이다. 유명한 성당에서 기도하는 모습보다 관광객들의 모습(그들의 모습 자체보다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모습)이 더 많이 보일 땐 마음이 아프다.
이곳 외에도 괴테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괴테하우스(괴테생가) 또한 프랑크푸르트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 괴테하우스(Goethe-Haus): http://www.kimminsoo.org/926
이쯤이면 슬슬 다리도 아파오고, 한번쯤 쉬어주고 싶다. 그러던 차에 만난 초록의 공간.
유럽의 공원은 언제나 부러운 공간 중 한 곳이다. 우리도 과거에 비해 공원이 많아지고 발전해나가고 있지만 그 분위기는 분명 다르다. 목적없이 앉아 하늘도 바라보고, 강도 바라보고,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바라보며 한번 웃어주고, 그러다 내 모습도 한번 비춰보고... 이럴 수 있는 이 공간이 너무 좋다.
잔디밭에 앉아 있으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토끼들이 다가오기도 한다. 사람도, 토끼도, 강아지도 다 같이 어우러질 수 있는 곳이다.
간혹 이 강을 라인강(Rhine River)이라고 알고 이는 사람도 있지만 이 강은 라인강의 지류인 마인강(Main River)이다. 지류로 흐르는 강 치고는 꽤 유량도 많아 보인다. 여럿이서 함께 타는 큰 유람선도 좋고, 혼자서 탈 수 있는 카약도 좋고, 조정도 좋고... 강에서 바라보는 프랑크푸르트 시가지의 모습은 색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
짧고 잔잔하게 즐겨본 프랑크푸르트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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