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의 아침은 묘한 매력을 지녔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가운데 나 혼자만 우뚝 서 있는 느낌.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홀로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형언할 수 없는 쾌감마저 느껴진다. 그 마약같은 쾌감에 빠져 오늘도 아침거리로 달려나간다.
바쁘게 움직이며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아침공기의 산뜻함과 약간의 긴장감이 어우러져 하루 중 가장 신선함을 간직한 이 순간이 좋다. 이 찰나의 짜릿함이 내 여행에선 엔돌핀이 된다.
하루를 여는 풍경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먹거리 장터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 자전거를 타고 바쁘게 오가던 사람들도 이곳에선 영락없이 멈춰선다. 나 역시도 오감의 자극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곳으로 향해버린다. 알록달록 오색찬란한 과일의 달콤한 향도 매력적이지만 코 끝을 자극하는 시큼하면서도 고소한 빵 냄새를 당할 재간이 없다.
▲ 브뢰첸(Brötchen)
독일의 빵은 우리네 빵과 사뭇 다르다.
겹겹이 쌓인 부드러운 층이 입 안에서 살살 녹는 그런 빵을 기대했다면 크게 실망할 수 있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만 생각난다.
가만히 생각하면 독일빵은 독일인을 닮아있다. 겉은 무뚝뚝하고 차가운 듯 보이지만 쪼개어진 조각 사이로 보이는 푹신함은 겉만 보고는 알 수 없는 그네들의 성격을 고스란히 닮았다. 맥주에서도 알 수 있듯 독일인들은 담백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재료들을 섞는 것보다 원재료의 맛과 향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이 그들의 특징인가 보다. 우리에게 잡곡밥이 웰빙식이라면 그들에겐 잡곡빵이, 특히 호밀빵이 즐겨 먹는 웰빙식이다. 시큼한 냄새가 매력으로 다가오는 순간, 당신은 독일빵 예찬론자가 된다.
▲ 쿠헨(Kuchen)
그렇다고 투박함만이 독일빵의 모든 것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나릇해지는 오후엔 탱글탱글한 과일이 그대로 얹어진 달콤한 케익이 제격이다.
한창 월드컵 결승전을 앞두고 있었던 독일의 빵집, 가장 인기있는 디자인은 역시나 "축구"였다. 그들의 응원방식이 통했나 보다.
배를 채우고 나면 알록달록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 바쁜 아침시간에 꽃시장이 웬말이냐' 싶지만 꽃을 사랑하는 그들에겐 기분 좋은 아침을 만드는 필수 아이템인 것 같다. 걸음을 멈추는 사람들의 모습이 적잖게 보인다. 특별한 이벤트에나 등장할 법한 꽃장식이 그들에겐 일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유럽에서는 베란다나 앞마당과 같은 곳들을 그냥 내버려두면 '게으른 사람'으로 취급당하기 일쑤다.
손바닥만한 테라스를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것에서 집주인의 체취가 느껴진다. 아침에 일어나 꽃을 가꾸는 것은 내게도, 집앞을 지나는 다른 사람에게도 큰 기쁨이 된다.
거리도 마찬가지다. 그저 내리쬐는 햇빛과 간간히 내리는 비에 의지해 살아가나 했더니만 누군가의 정성이 보태어져 아름다운 풍경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침부터 뜨거운 유럽의 태양이 시원한 물줄기에 주춤한다. 다만... 길거리 주차는 주의해야 할 것 같다. 비맞은 생쥐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웅장하면서 고요함을 간직한 교회(성당)의 참맛을 보려면 이른 아침이 제격이다.
유럽에서 성당이나 교회는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지만 시끌벅적한 인파로 시장인지, 교회인지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간혹 있어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다. 때문에 내가 선택한 방법은 이른 아침 그곳을 찾는 것이다. 특히 미사가 있는 시간을 잘 찾으면 관광객이 가득한 교회가 아닌 진짜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은 덤이라고나 할까? ^^
때때로 유명 관광지가 아닌 그냥 동네 교회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된다. 휘황찬란하게 장식된 금빛 제대와 스테인드글라스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 숙소 인근에서 만나게 되는 작은 교회들은 예상하지 못한 따뜻함과 포근함을 경험하게 한다. 신자가 아니더라도 잠깐의 묵상은 여행의 기쁨을 더욱 찐하게 느끼게 한다.
아침산책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공원산책이 아닐까.
산만한 도심을 지나 만나게 되는 공원은 별천지다. 왠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같고,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우리에게 공원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유럽 공원의 아침풍경은 특별하게만 느껴진다.
특히 독일에선 아침부터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된다. 선크림에 선스프레이로 모자라 자외선 차단모자와 마스크까지 착용해야 밖으로 나가는 우리에겐 의아한 모습이지만 일조량이 부족한 독일에서 햇살은 더 없는 축복처럼 여겨진다. 이어폰을 귀에 걸고 돗자리 하나, 책 한권이면 충분하다. 주위 시선에 아랑곳없이 주섬주섬 겉옷을 벗고, 일광욕을 즐기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도 편안해 보인다. 그들의 행복한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나도 까치발로 조심조심~
이런 아침 산책, 유럽여행 중이라면 꼭 한번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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