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북성로라 하면 "낮보다는 밤이 더 그럴싸한 곳~"으로 회자되는 경우가 많다. 아니, 적어도 내게는 그 기억이 전부였다. 한 손에 꼽을 만큼이었지만 북성로 포장마차에서 맛보는 냄비우동과 연탄 석쇠 불고기는 별미 중의 별미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내게 각인되어 있었던 북성로에 새로운 획이 그어졌다. 지금은 특별한 용무가 있어야만 찾는 곳일테지만 100년 전 대구 최고의 번화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경부선 철도를 타고 순종임금이 다녀갔고, 백화점에, 상점에 없는 것이 없는 곳으로 영광스런 빛을 봤던 곳이다. 그 곳으로 잃어버린 흔적을 찾으러 나섰다.
대구골목투어 1코스는 옛 영광을 되짚어 보는 코스다. 경상감영을 시작으로 역사박물관, 공구골목, 그리고 삼성그룹의 모태 삼성상회까지 현재 대구를 만든 역사적 흔적들이다. 사실 공구골목은 대구에서 오래 생활했던 사람들에게 조차도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거기다 여행자들에겐 케케묵은 먼지만 휘날리는 매력없는 뒷골목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북성로 공구골목도 산업 기자재를 원하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최대의 상권이며 최고의 시장이라는 변함없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또 주의깊게 살펴보면 19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근대 건축물들이 남아있어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깨알같은 재미를 던져 준다.
전략적 상권인 유통단지가 생기고 난 뒤 시장이 많이 축소되었다 하지만 특성을 살린 점포들은 여전하다. 1km정도 되는 골목이 죄다 공구를 파는 상점들이다 보니 어째보면 공장들을 묶어놓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북성로를 한바퀴 돌고나면 어떤 물건이든 원하는대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자동차, 탱크까지도 말이다. 트랜스포머도 충분히 가능할 듯 하다.
대구 최초의 백화점(미나까이백화점-오복점; 지금으로 치면 포목점)이자 당시 최고층 건물이 있었던 곳이 지금은 변방의 주차장으로 남았다. 일본인이 경영했던 백화점으로 그들의 이름을 따서 미나까이라는 이름을 지었단다. 포목과 잡화 등을 판매했던 곳으로 당시 엘리베이터까지 있는 유일한 건물이었다. 높은 건물이 생겼다는 것도 놀라운데 엘리베이터를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아무 일없이 이곳을 찾아와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렸던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하니 당시 사람들에겐 엄청난 문화충격이었겠다. 1984년에 대구 최초의 최고 건물이 허물어지고 지금처럼 주차장이 되었다.
미나까이 백화점, 타마무라 서점, 야마구찌 도자기점... 지금은 남아있지 않는 당시의 북성로에서 이름을 떨쳤던 곳들인데~ 다 일본이름이라는게 씁쓸하다.
북성로 공구박물관
2012년부터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로 세워진 별난 박물관이다. 북성로 주변에는 투박하게 각진 건물과 회색빛 공구들 사이에서 간간히 만날 수 있는 일본식 목조건물들이 있다. 시내 곳곳에 일본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은 속상한 일이지만 그 또한 우리의 역사이기에 무조건 깨부수는 것엔 반대하는 입장이다. 어떻게 지금까지 건재할 수 있었느냐고 묻고 싶을 만큼 반갑기도 하다. 비교적 잘 관리되어 원형에 가까운 일본식 건물에 북성로를 상징하는 공구들을 담았다.
공구골목의 모든 것을 압축해 놓은 이곳의 전시 공구들은 대부분 북성로상가번영회에서 기증한 것들이란다. 드라이버와 같은 사소한 공구부터 전문가들의 기술이 있어야 움직일 것 같은 기구까지 나름의 규칙과 질서를 가지고 전시되어 있다. 장사꾼들이 박물관을 위해 팔아야할 물건들을 기증한다는 건 단순 기증의 의미를 훨씬 넘어서는 일인 듯 하다. 공구골목이 언제까지나 건재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는 듯하여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작은 박물관이지만 북성로 100년의 역사를 담고 있는 뜻깊은 곳이다.
삼덕상회
공구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좀전에 참 이쁜 건물이라 생각하며 슬쩍 지나왔던 곳이 공구박물관과 같은 프로젝트로 재생된 공간이라는 사실을... 이 사실을 알고 그냥 모른척 할 수 없어 왔던 길을 되돌아 삼덕상회로 다시 향했다. 공구박물관과 같은 일본식 적산가옥으로 1층은 상점으로, 2층은 주거지로 활용했던 건물이 아닌가 싶다.
이제 2살을 조금 넘긴 대구 북성로 문화공간 1호점으로 근대건물을 리노베이션해서 재탄생시켰다. 아직 오전시간이라 여유있게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보다는 업무상 미팅인 듯한 손님들이 몇 명 있을 뿐이다. 내겐 오히려 이 한적함이 삼덕상회를 한껏 음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었다. 아직 데워지지 않은 공간의 을씨년스러움이 외롭다 느껴지기 보다 진짜 북성로를 만나게해주는 것 같아 맘에 든다.
좁은 공간에 따닥따닥 붙어 앉는 1층홀도 좋지만 삼덕상회의 진짜 매력은 본 건물의 맛을 유지하고 있는 2층이다. 2층에는 아주 작은 공간이긴 하지만 다다미 방이 마련되어 있어 좌식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더 편히 쉬어갈 수 있도록 해준다. 평일은 상관없지만 주말에는 몰리는 손님 탓에 시간제, 예약제, 인원제한제로 운영된다. 어찌보면 좀 까탈스럽다 싶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적정한 방법이었을 듯 하다.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찾아오는 곳, 향긋한 커피 한잔에 흘러나오는 음악은 똑같을지 모르겠지만 삼덕상회가 풍기는 느낌은 여느 카페의 흔한 낭만과는 분명 차이를 가진다. 맘맞는 친구들과 찾으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고, 혼자 이곳을 찾으면 나와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기에 낭만의 무게가 더해진다. 그들이 남겨놓은 작은 속삭임들에 나도 몇 마디 끄적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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