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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이야기(Korea)/대구(Deagu)

[대구골목투어 1코스] 골목투어 1코스의 끝, 달성(오토바이 골목 & 삼성상회 옛터 & 달성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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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오토바이골목

 

 

지금 생각해보니 대구엔 특별한 타이틀을 가진 골목이 많은 것 같다. 왜 이곳의 골목은 유럽의 아기자기하고 꽃향기가 나는 그것이 아니고, 일본의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그것이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또 다시 내가 아는 세계에 끼워맞추려한게 아닌가하는 반성이 고개를 들었다. 대구의 특성화 골목을 몇 차례 오가며 기름냄새 가득하고 망치소리가 가득한 골목들이 어쩌면 진짜 살아있는 골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대구의 오토바이 골목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허나 대구경북 바이크 마니아들에겐 꽤나 정평이 난 로망의 거리였다. 남자들이 오토바이를 향해 가지는 로망은 직접 보지 않고선 상상하기 힘들다. 까까머리 중학생들도 오토바이만 보면 온 몸의 세포가 제어할 수 없을만큼 환각상태에 빠진다하니 더 이상 무엇으로 설명하리오.

 

 

 

 

 

"오빠, 달려~~~"

사실 오토바이엔 문외한이고, 관심조차 없는 나도 이 거리를 지나칠 땐 자기를 데려가달라고 손짓을 하는 듯 느껴질 정도였다. 귀엽게 생긴 핑크빛 오토바이부터 값을 책정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포스를 풍기는 오토바이까지 한번은 올라타보고 싶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

 

 

 

▲ 삼성상회 옛터

 

오토바이 골목의 막바지에 다다르면 과거 삼성상회의 옛터를 만나게 된다. 현재 국내 최고 기업을 넘어 세계적 브랜드가 된 삼성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단다. 사실 현재 삼성을 생각하고 이곳을 향한다면 실망 100배이다. 인근의 분위기와 상관없이 덩그러니 서 있는 아치기둥과 몇 개의 안내판, 그리고 당시 삼성상회건물을 만든 미니어처 전시공간이 전부인 이곳은 쓸쓸함과 고독감을 넘어 버려진 공간 같은 느낌도 든다.

 

 

 

 

 

 

삼성 초대회장인 故이병철회장은 29살에 23만원, 그것도 20만원은 은행의 돈으로 창업했다. 1년만에 2배의 수익을 거두고 몇 해 후 서울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상회에서 팔았다던 별표국수, 사과 등의 상표가 대구근대역사관에 전시되어 있다.

 

 

 

 

 

대구와 삼성은 묘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듯 하다. 삼성상회가 대구에서 시작되었고, 제일모직 역시 대구를 터전으로 성장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없는 상황이다. 삼성에서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면서 대구는 삼성자동차에 기대를 걸었지만 물거품이 되었고, 그 여파가 삼성 불매운동을 넘어 삼성라이온즈에 까지 미치기도 했다. 어찌보면 대구에 남아있는 삼성의 유일한 흔적이 삼성 라이온즈일지도 모르겠다. 여튼... 이런저런 이유로 멀어지게 된 삼성과 대구는 딱 이 조형물만큼의 관심만이 남아있는게 아닌가 싶다.

 

 

 

▲ 달성공원 입구

 

달성공원은 내 어릴적 기억에 꽤나 자주 등장했던 곳이다. 주말이 되거나 어린이날이 오면 부모님의 손을 잡고 찾아가 뛰놀았던 곳이었고,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소풍왔던 곳이고, 눈이 휘둥그레질만큼 큰 키의 키다리아저씨를 만날 수 있는 곳이였다. 어린 생각에 진짜 거인이 있는 줄 알았던 나는 아저씨 곁을 지나갈 땐 가슴졸이면서도 아저씨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금도 찾아보기 힘든 2m(2.25m)가 넘는 장신의 아저씨는 1999년에 작고하셨다고 한다. 강산이 몇 차례 지나고 이렇게 우리가 만날 줄이야...

 

 

 

 

내게는 단순한 동물원으로 기억되었지만 대구 최초의 성이 축조된 역사적인 장소이다. 대구의 중앙을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높은 언덕에 흙으로 토성을 쌓고 생활터전으로 삼고, 군사를 훈련시키기도 했다. 역사가 흐르며 흙에 돌이 더해지고, 성곽도 변화되었지만 지금은 그 성곽의 규모를 알아보기가 힘들다. 일본에 의해 사라진 토성은 대구 유일의 동물원으로 탈바꿈했다.

 

 

 

 

 

경상감영에 있어야 할 정문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엉뚱한 토성에 서 있다. 일제강점기 박중양이 앞장서 대구읍성을 무너뜨리면서 종로로 옮겨졌다가 지금의 자리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서 있는 위치가 너무 생뚱맞다는 느낌이 든다. 밀려밀려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보는 사람도 그렇고, 저 자신도 그렇고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복원되지 못한 망경루보단 나은 신세라 해야 하나...

 

달성이 좋은 지역인줄 일본인들도 알았는지 이곳에 신사를 세웠다는데 1966년에 철거되었단다.

 

 

 

 

 

 

 

 

어릴적엔 그리도 크게 느껴졌던 달성공원이 손바닥만큼 작아졌다.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동물들의 거처도 초라하기 그지없다. 리얼이 판치는 세상이라 더 초라하게 보인다.

 

 

 

 

 

생기발랄해야 할 동물들의 모습이 죽음을 코앞에 둔 이의 모습과 같다. 오래 전부터 이전 계획이 있었던 터라 더이상 수리점검하지 않는다해도 이곳에 살고 있는 동물들의 삶이 너무 고단하겠다 싶다. 빨리 이전문제가 해결되어 새 터에서 새 삶을 이루어가길...

 

 

 

▲ 한국 최초 어린이 헌장비

 

 

 

▲ 이상화 시비

 

 

 

 

▲ 이상룡 구국기념비 & 의병대장 허위 선생 순국기념비

 

 

 

달성공원 내 산책로 곳곳에는 다양한 인물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가득하다. 대구문학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시인 이상화의 시비(전국에서 최초로 세워진 문학비란다)부터 달성 서씨 가문의 땅이었음을 알리는 달성서씨 유허비, 어린이 날을 기념하여 세워진 어린이 헌장비, 허위선생,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 등 무지 많은 기념비들이 있다. 어찌보면 모두가 우리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을 기리는 기념비인데 왜 이리 구석진 곳에 관리마저도 안된 이런 형태로 남아있는지... 씁쓸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영친왕의 아들, 이구가 설계하여 개장했다고 전해지는 달성공원은 옛 토성을 지닌 달성으로의 재탄생을 준비하고 있다. 그 걸음이 미진하여 알아차릴 수 없어 안타깝지만 전통골목이 다시 살아난 것처럼 이곳 역시도 옛 명성을 되찾을 날이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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