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은 100여년 전 이 땅에 발을 딛고 "일하고 기도하라! Laborare et Orare!)"를 영적 가르침으로 하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오랜 역사도 기념할만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한국 최초의 남자 수도원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부활, 성탄 등 교회의 특별한 축일이면 TV에 자주 소개되곤 한다. 평소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이기에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관심이 쏠리는 곳이기도 하다.
여러가지 이유로 적잖게 베네딕도 수도원을 방문했지만 올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은 이 곳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을 늘 설레이게 한다. 모든 수도원이 그들만의 영적 지침을 두고 있지만 베네딕도 수도원의 가르침은 다른 수도회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베네딕도 성인은 세속화된 세상을 버리고 이탈리아 수비아코 동굴에서 생활하면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경험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베네딕도 규칙(Regula Benedicti)>을 만들어냈다. 물론 그 규칙은 서양 수도회 규칙을 형성하는데 초석이 되었다.
입구에 있는 기념품점은 정형화된 성물(聖物)이 아니라 해탈과 익살스러움이 담겨있어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 같다. 뭐니뭐니해도 베네딕도회에선 전통 독일식으로 생산해내고 있는 소시지를 빼놓을 수 없다.
예전엔 수도원 내에서만 수급하던 소시지가 지금은 <분도식품>이라는 이름을 달고 판매되고 있다. 알음알음 구해 먹던 소시지를 예전보다 손쉽게 구할 수 있단 생각에 어찌나 기뻤는지... 조금 비싼 가격이긴 하지만 일반에 판매되고 있는 소시지와는 확연히 다른 맛이다. "일하며 기도하라!"라는 모토에 따라 베네딕도 수도원 내에는 유리공예, 분도가구, 분도출판, 금속공예, 농장 등 수사님들의 노동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크고 작은 시설들이 마련되어 있다. 일반에 늘 공개되는 것은 아니지만 때만 잘 잡으면(매년 4월 경, 성소주일 등...) 이런 시설들을 방문할 수 있다.
예전에 한번 포스팅한 적도 있지만(http://www.kimminsoo.org/457) 왜관 수도원의 입구에는 구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1928년 지어져 지금까지 그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는 구성당으로 종탑의 종소리도 아직까지 건재하다. 행사때마다 지금은 100주년 새성당이 생겨 특별한 행사때가 아니면 이곳에서 미사를 드릴 수 없지만 왜관의 상징으로 잘 보전했으면 한다. 현재 왜관본당의 전신이기도 하다.
새롭게 봉헌된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의 새성당.
안타깝게도 2007년 왜관수도원의 구관과 신관의 일부가 전소되면서 많은 유산들이 소실되었지만 2009년 지어진 이곳도 시간이 지나면 귀한 유산으로 또 다른 이름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번 방문에서 뜻깊었던 것은 왜관 수도원에 대한 속깊은 이야기들을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수도회 소속의 신부님께서 직접 나오셔서 성당 곳곳을 설명해주시고, 베네딕도회의 전통과 이념에 대해 설명해주시니 그저 눈으로 겉만 훑어보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시간이다.
옛 성전에서도 시선을 뗄 수 없었던 것이 제대 위 십자가였는데 새 성전의 십자가도 그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배치되어 있다.
십자가 뒷면에 조각된 여성, 소, 사자, 독수리는 각각 성경의 저자였던 사도들을 의미하는데 여성은 마태오를 의미하고, 소는 루카, 사자는 마르코, 독수리는 요한을 의미한다고 한다.
베네딕도 수도원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한국의 정서를 담은 듯 은은한 색감이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 유럽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도 멋지지만 이런 은은한 색감이 고루 퍼져나가는 듯한 우리네 스테인드글라스도 참 맘에 든다. 아마도 베네딕도 유리공예실에서 제작했겠지? 아랫부분 창에는 성경의 상징을 스테인드글라스로 표현하고 있다.
성전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곳은 한 쪽 벽면에 자리하고 있는 큰 규모의 파이프 오르간이다. 낮기도를 함께하면서 오르간 소리도 들어볼 수 있었는데 깊숙한 음색이 기도를 더 풍성히 만들어 준듯 하다. 보통 파이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요즘은 전기 오르간이 대부분인데 이곳의 오르간은 예전 방식대로 소리를 내는 전통 오르간이다. 설치하는 것만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대개 성전 전면에 자리하고 있는 감실이 이곳엔 한쪽 벽으로 비켜져 있다. 성당 내 경당처럼 마련된 기도실 벽면에 감실이 있다. 그래서 일반 미사를 드리는 사람들은 감실을 볼 수 없다. 감실에 대한 설명을 해 주시는 신부님...
수도원 역사전시관엔 베네딕도 수도원의 역사를 설명하는 많은 성물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2007년 화재로 많은 자료들이 화마 속에서 사라진 후 그나마 남아있는 것들로 베네딕도 수도원을 설명하고 있다. 예전 성당의 벽화가 부서진 채로 유리관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니 괜히 마음이 짠하다. 그 벽화를 보며 참 인상적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 그림이라 생각하니 참... 기분이 그렇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겸재 정선의 산수화 21점이 전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노르베르트 베버 초대 원장이 금강산에서 구입한 겸재의 그림을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2005년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으로 반환했다고 한다.
▶ 베네딕도 수도원 겸재 및 유물관 소개: http://www.kimminsoo.org/457
베네딕도 수도원은 피정을 원하는 신자들에게 그 문을 열어놓고 있다. 개인피정, 단체피정, 소그룹피정, 일일피정 등 개인의 상황에 맞는 피정을 형태를 선택할 수도 있다. 특히 부활 및 성탄 전례피정은 인기있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미리 계획하지 않으면 참여하기 힘들다고 하니 일찌감치 준비해야 한다.
★ 베네딕도 수도원 홈페이지: http://www.osb.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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