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 시간이 걸려 배론성지에 도착했다. 두번째 발길인데도 잘 기억이 나지 않더니 연못에 걸쳐있는 작은 다리를 보니 그 때의 풍경이 조금씩 그려진다. 지난번 돌아갈 때 "배론에 다시 오게 된다면 꼭 꽃피는 봄에 찾으리라!" 맘 먹었는데 어째 또 겨울이다.
다행스럽게도 산 깊은 곳의 청명한 공기 덕분에 섭섭한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계곡에 흐르는 물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걷다보니 저절로 힐링이 되는 듯한 느낌... 이래서 사람들이 조용히 명상할 곳을 찾는구나 싶다.
▲ 배론성당
그 동안 가봤던 성지와 비교하면 배론성지는 정말 큰 규모를 가진 곳이다. 성지내 성당이 3곳이나 됐고, 각종 기도길, 조각공원, 성직자 묘지 등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배론성당은 이 지역 신자들이 주일미사를 드리는 곳. 가장 묵은 때가 남아있는 곳으로 오래된 나무 제대와 의자가 한옥건물과 잘 어우러진다.
▲ 배론성지 피정의 집
▲ 성요셉성당
성요셉성당은 성당이라기 보다는 경당의 느낌이 강했다.
혼자 조용히 기도하고 싶을 때, 깊은 생각에 빠지고 싶을 때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싶다. 제대 옆에 있는 최양업신부님의 부조조각이 인상적이다. 미사도 진행되는 듯 했는데 아마도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가 열리는 것 같다.
▲ 황사영 순교 현양탑
배론성지에는 성당 외에도 의미있는 볼거리가 있다.
바로 국사책에도 언급되는 황사영 '백서'가 이곳에서 씌여졌기 때문이다.
황사영은 정약용의 처조카로 이승훈을 통해 천주학 서적을 접했고, '알렉시오'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심한 박해를 피해 서울에서 배론으로 내려왔고, 이곳에서 한국 천주교의 상황을 비단에 적어 북경주교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하지만 주교에게 전달되기 전 발각되어 백서는 압수되고 만다. 현재 토굴은 재건한 것이지만 이곳의 작은 토굴에서 백서를 썼다고 전해진다. 자그마치 8개월간 토굴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황사영 순교현양탑의 동상은 북한에서 만들어져 중국을 통해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배론에서 눈여겨 볼 또 한가지는 한국의 첫 신학교인 배론신학교이다. 1861년 '요셉신학교'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이곳은 라틴어와 천주교의 교리를 중심으로 가르쳤지만 그 뿐만 아니라 서양문물, 과학, 의학 등을 가르치며 최초의 서양학문을 전파하기도 했다.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수업을 들을 수 있어 교육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병인박해로 문을 닫게 되면서 11년의 짧은 역사를 마감했다.
요셉신학교가 폐교된 이후 그곳에서 공부했던 신학생과 학교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는다. 건물 또한 한국전쟁 때 완전히 소실되어 그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한국전쟁 이전 신자들의 사진과 한 신부님이 그려놓은 도면을 참고하여 복원했다고 한다. 똑같은 모습은 아니겠지만 너무나 작은 방 2칸에 부엌 1칸이 모두인 이곳에서 학생과 선생이 함께 거주하며 공부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배론성당과 성요셉성당의 맞은 편으로 가면 최양업신부 조각공원이 있고, 납골당도 있다.
예전에 왔을 땐 왜 최양업신부 조각공원일까 궁금했는데 이번에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최양업신부님의 장례미사도 이곳에서 진행되었단다.
▲ 최양업신부 기념성당
최양업신부 기념성당은 배론성지에서 가장 최근에 완공되었고, 가장 큰 성당이다. 일명 "바다의 별" 대성당이라 불린다.
성당은 배론의 지형처럼 '배'처럼 생겼다. 배는 노아의 방주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마카오에서 조선으로 여러번 입국을 시도했던 그 때를 기념하는 것이기도 하다. 10월 순교자 성월이면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대성당의 규모도 성지의 다른 성당들의 몇 배가 된다.
최양업신부님의 시복시성을 염원하는 기원이 담겨있는 곳이기도 하다.
성당에는 신부님과 성인들의 유해와 몇 종의 벽화가 시선을 끈다.
특히 벽화는... 의미심장한 의미를 담은 것 같긴한데... 조금은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드넓은 성지에서 보낸 짧디 짧은 시간, 의외의 위로를 받고 다음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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