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예천-봉화-영주 여행 중 예천에서 봉화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우곡성지다. 자동차 전용차로로 열심히 달리던 중 표지판 하나를 보고 길을 돌아 이곳을 찾아왔다. 일반적인 성지순례야 계획하고 작정해서 떠나는게 태반이겠지만 그러기를 기다리기엔 너무 기약없는 기대림이 될 것 같아 살짝 들렀다가 가자고 마음을 모았다.
초행길인 탓도 있었지만 외곽에 있었던 터라 표지판을 따라가면서도 '여기가 맞나?'하는 의구심이 계속해서 솟구친다. 최근들어 자주 들었던 성지라 쉽게 찾아가는 곳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외딴 곳이다. 하지만 여름에 찾는다면 너무나 좋았을 곳이다.
입구 피정의 집을 지나(이때 피정을 하고 있었던 팀이 있었던 것 같다) 성당을 찾았다. 이미 해가 내려 앉기 시작한 시각이라 인적은 끊긴 것 같고, 문만 잠겨있지 않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는데 천만다행으로 본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본당 입구의 방명록. 오늘만 해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다. 의외로 대구분들도 많은 것 같고...
나도 흔적을 남기고 본당 안으로~
새로이 만들어졌는지 본당 안은 작고 깔끔~
시골 작은 공소같은 느낌? 사람의 온기가 없어서인지 조금은 건조한 느낌도 든다.
우곡성지는 한국 천주교 최초 수덕자(修德者)인 농은 홍유한 선생(정조의 외가쪽 집안, 혜경궁 홍씨)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아~ 그러고보니 예천에 있는 농은 수련원이 홍유한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것이구나. 주일학교 신앙학교 때문에 기웃거려 농은 수련원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농은 홍유한 선생은 살아서 세례를 받지 않았지만 초기 한국 천주교회의 디딤돌이 되었던 이익, 권철신, 이기양 등과 친교를 나누며 천주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서울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없게되자 충청도 예산으로, 다시 경북 영주로 이주해 이곳에서 철저히 <칠극>에 따른 수계생활을 했다고 한다. <칠극>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인간관과 수양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책으로 <천주실의>와 함께 천주교의 교리를 전해주던 입문서였다.
그저 천주학의 가르침을 알아 그것을 삶의 뿌리로 삼고, 실천하며 지낸... 말 그대로 신앙의 삶을 살아가신 분이다.
이곳은 홍유한 선생의 후손 중 순교자인 13위를 모신 묘와 현양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곳의 묘는 진묘가 아닌 가묘일 뿐이다. 13명의 후손들이 선생을 따라 신앙을 증거하며 죽음을 맞이했지만 전국 곳곳에 흩어져 유해를 찾을 길이 없어 그저 가묘를 조성하여 현양하고 있다.
신유박해 때 5분, 기해박해에 6분, 병인박해에 2분
그 중 기해박해때 돌아가신 홍병주 베드로와 홍영주 바오로는 103위 순교성인에도 올라있다.
안쪽으로는 단체 순례자들이 미사를 올릴 수 있는 제대도 마련되어 있고, 홍유한 선생의 묘소까지 가는 길은 십자가의 길로 이어진다.
십자가의 길을 지나면 맨 마지막에 농은 홍유한 선생의 묘가 나온다. 그 분은 살아 생전에 주님을 만났을까?
매주 주일미사만 참여하면 신앙인으로 의무를 다했다 생각하는 나 같은 신자는 단지 책만으로 주님을 받아들이고 신앙생활을 이어갔다는 것이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그렇기에 죽어서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겠지. 지금은 주님을 만나셨겠지?
죽음으로 순교해야만 신앙을 증거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한번 되새기고 간다.
"축일표도, 기도책도 없이 7일마다 축일(주일)이 온다는 것을 알고
매월 7일, 14일, 21일, 28일에는 경건하게 일을 쉬고,
이런 날에는 속세의 모든 일을 물리치고 기도에 전념하였다.
금육일(소내날)을 몰랐으므로 언제나 가장 좋은 음식을 먹지 않은 것으로 규칙을 삼았으며
그것을 지적하는 사람에게는 본성의 탐욕은 원래 나쁜 것이서
할 수 있는대로 억제해야 한다는 이유를 댔다."
- 샤를 르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 중에 나타난 홍유한 선생의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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