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리히를 찾으니 빠지지 않는 사진이 이 컨셉이다. 그래서 나도 한번 찍어본다. 내게도 이 풍경이 제일 이쁘고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날씨만 조금 더 좋았더라면 더 멋진 모습이 나왔을텐데 하늘이 어두우니 더 이상의 멋진 사진이 안나온다. 물론 내 실력 부족탓이겠지만... 아무 생각없이 그저 찍어대기만 하면서 무슨 말을 하리. 아~ 사진 공부를 좀 해야겠어.
여성의 대성당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1250년에 세워져 몇 차례 수리 후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의 모습은 1911년에 수리된 모습이 가장 강하게 남아있다고 한다. 첨탑은 훨씬 후인 1732년에 완성된 것이다. 게르만의 황제였던 루드비히왕이 자신의 딸인 힐데가르드 공주를 수녀원 원장으로 임명(874년)하면서 수도원 성당으로 이어져오게 되었다.
왕이 딸에게 수녀가 되기를 바랬다? 지금의 생각으론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이지만 당시 수녀는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귀족 여성의 수장 노릇을 했다고 하니 그들의 권력을 탄탄히 만드는 밑거름으로 제격이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수도회는 혁명시기에 해체되었고, 지금은 그저 성당으로 이용되나 보다.
아주 오래전 그려놓은 듯한 희미한 그림이 가득하다. 여자 수도원이었음을 증명하듯 여성들에 관한 그림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언젯적 그림인지 모르겠지만 색감으로는 엄청난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그림이다.
프라우뮌스터가 유명세를 떨치는 또 하나의 이유, 바로 샤갈이 내부를 디자인했다는 점이다. 바로 여기가 내가 꼭 가야할 곳으로 꼽은 곳 중 하나였다. 스테인글라스를 보는 순간 나는 황홀경에 빠져버렸다. 1970년 샤갈이 만들었다는 스테인드글라스는 한 눈에도 샤갈의 작품임을 알 수 있는 색채의 은은함이 배여 나온다. 종이가 아닌 유리에 이런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이런 색감을 우려낼 수 있다는 것... 머리로는 골백번을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해서 담아오진 못했지만 그 때의 소름끼침은 지금도 생생하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성경을 테마로 만들었는데 가운데 초록색 부분은 예수님의 일생을, 왼쪽의 노란색은 다윗과 예루살렘에 관한 그림들이란다. 그리고 오른쪽의 푸른색은 교리에 관한 내용이란다. 양쪽으로 2개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더 있는데 기본 교리와 마호메트에 대한 그림들이란다.
<프라우뮌스터를 강쪽에서 바라본 모습>
바로 저 3개의 창이 샤갈의 창인데 실내에선 그렇게 찬란하던 창이 다른 쪽에서 보니 이렇게 다른 모습이다. 반대쪽에서라도 한번 찍어볼까해서 돌아왔는데 전혀 그 느낌이 나지 않아 약간 실망이다. 그래, 귀한 모습은 그리 쉽게 보여주는게 아니지.
왼쪽에 보이는 곳은 성 피터 교회로 취리히에서 가장 오래됐으며, 유럽에서 가장 큰 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전체 지름 8.7m, 분침의 길이만 4m가 된다고 하니 땅에 눕혀 보면 엄청난 크기의 시계가 되겠다. 뾰족한 첨탑에는 과거 취리히 화재담당자가 살았다고 한다. 15분 마다 취리히 시내를 내려다보며 화재가 난 곳이 없는지 살피고, 화재연기가 보이면 깃발을 그 쪽으로 향해 달았다고 한다. 봉수대같은 역할을 한 건가? ^^
이렇게 사이좋게 두 개의 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건너편에는 또 다른 교회가 하나 있다. 트라이앵글 구조로 3개의 교회가 마주하고 있다.
규모로는 3개의 성당 가운데 가장 큰 것처럼 느껴진다. 원래는 8세기경 카를 대제가 세운 성당이 있었는데 11세기에 와서 새롭게 지금과 같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으로 만들었단다. 취리히에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이곳은 3명의 순교자(펠릭스 외 2명, 2명의 이름은 기억이 안난다)가 주변에서 순교당한 뒤 그들의 머리를 들고 온 것을 기념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성당 옆면에는 카를대제의 조각상이 있는데 진품은 지하성당 납골당에 있고, 이건 모조품이라 한다.
<카를대제와 츠빙글리, 그리고 다른 한 사람>
카를대제 말고도 다른 몇 명의 조각상들이 더 있는데 그 중에서도 츠빙글리가 기억에 담아두어야 할 사람이다. 종교개혁자로 혁명에 대한 설교를 즐겨하던 그의 이야기는 취리히 전역으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원래 성당으로 사용되었으나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지금은 교회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화려하게 장식된 내부 장식들은 종교개혁 당시에 벗겨졌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아주 크지만 단순한 모습의 교회로 남아있는 것 같다.
이곳의 스테인드글라스도 꽤나 유명하단다. 친절하게도 입구에 설명판까지 부착해두었다. 들어갈 때 이걸 들고 들어가서 둘러볼 수 있도록 말이다.
이제 좀 하늘이 개려나? 성당 3군데를 둘러보고 나오니 조금 개이는 듯하다. 날씨가 내 기분을 닮았나 보다. 오락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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