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알프스를 만나기 위해 티틀리스로 향한다. 이미 출발부터 융프라우는 포기했고, 루체른에서 갈 수 있는 알프스산들을 손꼽아 보면서 티틀리스와 필라투스 두 군데를 두고 무지하게 고민했다. 모두 다 가보면 당연히 좋겠지만 한정된 일정으로 그건 불가능한 일이고,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선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던 중 민박집에서 리기산과 필라투스가 성격상으로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다(필라투스가 더욱 험난하지만 흔히 알프스하면 떠오르는 눈을 여름엔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유사하다는 뜻)해서 두 말할 것 없이 티틀리스를 선택했다. 이미 리기는 결정된 사항이었기 때문에 재고하게 되었을 땐 또 혼란스러움이 있을 수 있으니까.
티틀리스로 향하는 길도 스위스 어느 지역 못지 않게 아름다운 풍경을 가졌다. 그 곳에 있을 때는 보는 것마다 신기하고 흥미롭다 생각했는데 돌아와 사진을 꺼내보니 잘못하면 어디에서 찍은지 구분할 수 없는 사진도 몇 장 보인다. 이런 풍경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물론 나에겐 전혀 지루한 화면이 아니지만 사람에 따라선 그럴 수 있겠다는 거다. 사실 이전까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티틀리스로 가기 위해서는 엥겔베르그로 가서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루체른에서 엥겔베르그까지는 기차를 타고 가는데 내가 탄 기차는 분명 산악기차가 아닌데 급한 경사를 타고 올라가고 숲이 우거진 산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가 때론 절벽처럼 느껴지는 가파른 벽면을 지나가기도 한다. 예상하지 못했던 다이나믹함에 놀랐지만 그래서 더 흥미롭다.
드디어 엥겔베르그에 도착, 우리로 본다면 시골 간이역 같은 곳에 멈췄다. 낯선 곳에서 느끼는 정스러움... 이 맛 때문에 나는 여행을 포기할 수 없다.
<엥겔베르그 역>
엥겔베르그는 '천사의 마을'이라는 뜻이라는데 첫 인상부터 천사들이 곳곳에서 툭! 튀어 나올 것 같다. 나중에 내려와서 깜짝 놀랐다. 정말 천사들이 툭~ 툭! 튀어 나온다. ^^
<티틀리스 로프웨이 승강장>
엥겔베르그 역에서 조금만 걸으면 티틀리스로 올라가는 로프웨이를 탈 수 있다. 아침부터 조금씩 찌푸리더니 하늘엔 구름이 가득하다. 구름 사이로 간간이 보여주는 푸른 하늘이 감질나지만 곧 괜찮아지려니 생각하고 산으로 올라간다. 티틀리스는 2번의 로프웨이를 갈아타야 도착한다.
흐린 날씨에도 티틀리스로 향하려는 사람들은 많다. 더 놀라운 건 저 높은 곳까지 자전거를 가지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자신이 가져오지 않으면 빌려주기도 한단다. 초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녀석이 자기 덩치만한 자전거를 가지고 혼자서 티틀리스로 올라간다. 저 용기는 어디서 나올 수 있는 걸까? 또 한번의 문화적 충격이다.
드디어 내가 탄 로프웨이가 하늘로 떠 올랐다. 순식간에 붕~ 하고 떠오르더니 엥겔베르그를 한 눈에 보여준다. 저 멀리 수도원도 보이고, 호수도 보이고, 양과 과 소떼들도 풍경에 녹아내린다. 커다란 건물들이 하나의 점으로 변해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본다.
2번을 갈아타야 하니, 3개의 다른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간다. 첫 번째는 미니 케이블카로 최대 4명까지 탈 수 있는 로프웨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케이블카 하나하나에 세계 국기가 그려져 있다는 거다. 설마 태극기가... 했는데 태극기가 보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 버렸다. ㅎㅎ 촌스럽게... 그래도 좋은걸 어쩌랴. 한 대가 아니라 자주 자주 눈에 띠는 태극기를 보며 자긍심 충만하여 티틀리스로 올라간다.
<트륍제 정거장>
첫 번째 갈아타기 정거장, 트륍제이다. 지상에서 1800m정도 되는데 느껴지는 기온차가 생각보다 꽤 큰 것 같다. 슬쩍 내 얼굴을 때리는 공기가 내가 다른 곳에 와있다는 걸 실감하게 한다. 재미있는 건 이런 정거장 마다 대형 온도계가 달려있다는 거다. 이곳의 온도가 어떻게 되는지를 가르쳐 준다. 점점 기온은 낮아진다. ㅎㅎ
두 번째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가는 길은 처음보다는 좀 더 큰 로프웨이를 타고 간다. 부모님을 따라 온 꼬마녀석들은 아래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빙하의 모습에 감탄이 끊이지 않는다. '늬들도 여기가 처음이구나.' ㅎㅎ 괜한 동질감을 느낀다.
<세계 최초 회전 로프웨이>
드디어 세 번째 로프웨이를 타고 정상에 도착했다. 약 600m 정도를 회전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왔다. 그러니 자리를 이곳저곳 옮겨다니지 않아도 티틀리스 사방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이 로프웨이가 아주 자랑스러운가 보다. 가는 곳마다 '세계 최초'를 빼놓지 않고 자랑하고 있다. 한글로까지 적혀있으니 뭐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하긴, 올라오면서도 조금 재밌긴 했다.
드디어 빙하의 세상으로 올라왔다. 하얀 눈으로 덮힌 산은 언제부터 이런 모습이었을까. 언제까지 이 모습을 간직할 수 있을까. 흩날리는 얼음눈 아래로 보이는 돌산과 모래가 예전의 모습이 아닐거라는 추측만 할 뿐 무엇도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내 생애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다. 이틀 사이에 가장 높은 곳이라는 랭킹을 갈아치웠다. 3000m가 넘는 이 곳에 두 다리를 딛고 내가 섰다. 야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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