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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마을 이야기(Europe)/핀란드(Finland)

[헬싱키] 핀란드를 지킨 요새 수오멘린나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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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반토막 정도가 주어진 헬싱키 여행, 이 시간으로 헬싱키를 다 본다는 것은 100% 불가능한 일이고, 어떻게 하면 더 알차고, 더 핵심적인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부단히도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우리에겐 북유럽, 특히 핀란드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었으니 종이 두께와도 같은 얕은 정보로 이번 여행을 꾸려야 한다. 헬싱키에 대해 검색해 보니, 헬싱키 시내와 수오멘린나에 대한 것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그래서 일단 저녁나절은 수오멘린나를 보는 것으로 결정했다. 참 다행인 것이 북유럽은 '백야'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다닐 수 있는 시간을 조금은 더 벌 수 있다. 그때까진 '백야'를 생각하며 시간만을 따졌다. 정말 '백야'가 뭔지도 모르고서...

<수오멘린나로 향하는 페리>

'헬싱키 시민의 부엌'이라 칭해지는 마켓 광장으로 향했다. 그곳에 가면 수오멘린나로 가는 페리를 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찾은 마켓광장은 이미 시장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고요해져 왁자지껄한 시장만 찾던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몇 몇의 사람들이 앉아있지 않았다면 슬쩍 지나칠 수도 있었을 듯 하다. 어쨌든 이 곳에서부터 수오멘린나로의 항해는 시작된다.

<페리를 기다리는 사람들>


<티켓자판기>

페리를 타기 위해선 티켓을 준비해야겠지? 하지만 우리는 티켓을 끊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헬싱키에서 사용 가능한 버스티켓 1일권(4유로)을 가지고 있으면 수오멘린나까지의 왕복 차비가 무료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수오멘린나는 헬싱키에서 버스티켓 하나로 다녀올 수 있다는 것이다. 섬이라해서 또 다시 비용을 들여 가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가지고 있는 티켓으로 가능하다고 하니 왠지 횡재한 기분이다. ^^ 기분 좋아 들 떠있는 우리 앞을 경고문이 막아선다. 헉! 다시 한번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문제없다는걸 몇 번을 반복해 확인한 후 페리에 올라탔다. 유럽에선 교통티켓을 자유롭게 운영하는데 한번 걸리면 그 결과는 엄청 참혹하게 나타난다. 여기도... 4유로면 하루를 자유롭게 차를 타고 다닐 수 있는데 수오멘린나에 가는 티켓을 제대로 구입하지 않으면 80유로의 벌금을 내어야 한단다. 작은 돈 아끼려다 여행비용 모두 쏟아넣게 된다는 말이다. 음메~ 무서워!


탑승 완료! 이제 가는거야~~~
수오멘린나에 대한 기대도 컸지만 그 기대보다 먼저 내 마음을 채워주는 것이 있었으니 주변의 작은 섬들과 어슴푸레하게 넘어가고 있는 햇살의 여운이다. 15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나 다양한 색을 보여주는 주변 경관탓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렇게 혼을 빼놓고 어쩌겠다는 건지... 눈동자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괜히 주변 눈치를 보게 된다.

결코 그곳의 모습을 100% 그대로 담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함께 나누어 보시길...





<해가 지는 헬싱키>

저 멀리에서 붉은 해를 자꾸만 끌어당기나 보다. 그런데 해는 아직 들어가기가 싫은가? 붉은 빛을 내며 끝까지 해보자는 기색이다. 저녁 하늘의 색깔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는지 지금까지 미처 몰랐다. 자칫 우중충해질 수도 있는 구름까지 제 멋을 더한다. 앞을 볼 때, 뒤를 볼 때, 위를 볼 때, 아래를 볼 때... 어디를 봐도 같은 하늘이 없다. 우와~~~ 지금 생각하니 내가 하늘이 좋다고 떠들어댔던건 그저 1%도 안되는 것을 가지고 혼자 난리를 친 것이다. 어릴적 부터 학교에서 가르쳐 준 '하늘색'뿐인 하늘이었던 것이다. 이제 내가 아는 하늘은 '하늘색'이 아니다. 세상에 나온지 서른해가 훌쩍 넘어 이제야 하늘을 조금 더 알아가는 것 같다. 너무도 다양한 모습을 지닌 하늘에 빠지다 못해 허우적대다가 꼴깍~ 넘어가버릴 것만 같은 위협이 느껴진다.
 


<수오멘린나 선착장>

이렇게 내가 혼란에 빠져있는 사이 배는 수오멘린나에 도착했다. 왠지 이 작은 섬도 나를 실망시킬 것 같지는 않다. 마구 달려가다가 '아차! 돌아갈 시간은 확인하고 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되돌아 와서 시간을 확인한다.

<수오멘린나 행 페리 시간표>

어딜가든 낭패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꼭 버스나 기차, 배 등의 시간을 확인해둬야 한다. 특히 걸어서 움직일 수 없는 곳이라면 반!드!시!


<Suomenlinna Brewery Restaurant>

6시쯤 되었나, 그때 도착했는데 인적이 드물다. 수오멘린나에서 처음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핑크색의 시계탑을 가진 아름다운 건물이다. 히끗한 핑크색이라 더 운치있는 것 같다. 완전한 핑크색이라면 어쩜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레스토랑은 그냥 지나치고 눈에 익은 간판(?)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한가지 팁이라면 여기 레스토랑에서 핀란드 특유의 맥주를 맛볼 수 있단다. 관심있으신 분은 찾아보시길...

<우체국 입구, 실내>

왠지 레스토랑보다는 우체국이 더 맘이 가는지라 그 곳으로 향한다. 편지를 보낼 것도 아닌데 말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도 한때 편지쓰기를 즐기던 여린 소녀였다. 친구들과 주고 받은 편지를 나의 가장 소중한 재산목록 1호로 몇 박스나 챙겨놓고 이사때마다 제일 먼저 챙기곤 했었다. 워낙에 반복된 이동이 많아 그 중간에 분실된 것이 많지만 아직까지 내 책장에 박스로 묶여있는 편지들이 있다. 편지는 쓰는 것도 좋지만 그 전에 받는 사람에게 어울릴만한 편지지를 선택하고, 그 편지지에 맞는 색깔의 펜을 고르고, 더 좋은 말로, 더 이쁜 말을 찾아내는 것도 나름의 맛이다. 내게 이렇게 큰 의미를 지녔던 편지가 이메일로 바뀌고, 클릭 한번으로 세계 어디로도 보낼 수 있는 이메일이 지금은 핸드폰의 짧은 문자메시지로 변해버렸다. 지금은 그 문자도 귀찮다고 생각한 적이 적지 않다. 어쩌다 이리 메마른 사람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세상에 살다보면, 나이가 들다보면 그럴 수 밖에 없다 하겠지만 역시 어설픈 핑계인 것 같다. 나도 연필로 편지를 써본지 언제인지 기억도 못하면서 이메일로, 문자로 흘러가고 있는 세태를 탄식한다. 허허! 조만간 펜으로 꾹~ 눌러 쓴 편지 한통 띄워봐야 겠다. 누구한테 쓰나? ㅎㅎ


추억을 곱씹으며 우체국을 나와 수오멘린나의 깊숙한 곳으로 스며든다. 지도하나 없이, 여기가 어디쯤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잘도 걸어간다. 어둠은 조금씩 내리고 있는데 그래도 크게 무섭진 않다. 그래서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이 중요한가보다. 멋지게 한바퀴 돌아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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