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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마을 이야기(Europe)/핀란드(Finland)

[헬싱키] 인상깊었던 헬싱키의 밤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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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펜스키 교회>

밤 11시가 넘어서도 어슴프레 지고있는 저녁노을을 볼 수 있다는 놀라움을 마음에 간직한 채 수오멘린나에서 헬싱키 본토로 넘어왔다. 어둠이 내린 헬싱키의 거리엔 여행자들보다는 밤을 즐기려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더 많이 눈에 띤다. 항구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붉은 빛을 띄고 있던 우스펜스키 교회가 달빛을 받아서인지 붉은 빛 보다는 금빛이 더욱 도드라진다. 낮에도 그 화려함에 놀랐지만 밤엔 조명을 받아 더욱 빛나고 있다. 우스펜스키 교회는 스웨덴의 점령 이후 다시 러시아의 점령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높은 언덕 위에 버젓이 자리하고 있다. 헬싱키인들에게는 그다지 인기가 없다고 하지만 전후사정을 모르는 여행자들의 시선을 빼앗기엔 전혀 모자람이 없다. 시간적 제한으로 내부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으나 외부를 생각할 때 내부의 모습도 놀라울만큼 화려하리라 추측해 본다.

<헬싱키 메인 거리들>

밤 늦은 시간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의 흐름을 아쉬워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띤다. 맥주캔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도 있고, 너무 열심히 놀았는지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간이 스넥바에서 핫도그류를 찾는 사람도 보인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제대로 된 저녁식사를 하지 못했구나... 하지만 늦은 시간이 주는 약간의 경계심으로 그냥 자리를 빨리 벗어나야겠단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버스도, 전차도 끊긴 시간이라 호텔까지 가는 방법은 오로지 걷는 것 밖에 없으니 얼마나 걸릴지 예상할 수 없는 우리는 발걸음을 빨리 할 수 밖에 없다.



<디자인 강국 핀란드>

핀란드에 오기 전엔 단순히 '복지국가', '교육선진국'이라는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지 디자인에 대해서는 크게 살펴보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의 일환일 수도 있다. 그런데 거리를 오가다보면 간혹 디자인에 크게 관심없는 나도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묘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곳이 있다. 그들이 선호하는 강렬한 색채와 다소 엉뚱하게도 보이는 디스플레이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디자인지구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곳에 가지 않아도 이렇게 볼 수 있으니 그곳에 가면 훨씬 더 우리의 눈을 잡아채는 컬렉션이 더 많으리라. 나보다는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엄마와 동생이 이곳으로 왔으면 더 좋았으리란 생각이 든다.


▶ 제일 맘에 들었던 이딸라(iittala)

<이딸라 에스프레소잔>

처음 파리로 향할 때 면세점에서 눈에 찍어두었던 에스프레소 잔이다. 디자인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딸라는 내가 본 핀란드(겨우 2% 정도 봤을 뿐이지만)의 이미지와 너무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북유럽의 작은나라이지만 그들만의 분명한 힘을 지니고 있는 강국 핀란드를 단순하게, 그러면서도 고급스러움을 잃지 않는 모습이 너무 맘에 든다. 나만큼이나 커피를 사랑하는, 내가 제일 사랑하고 의지하는 친구 생일 선물로 주었다.

<면세점의 이딸라 매장>

 
<헬싱키의 어느 실버 밴드>

하나의 디자인북을 보듯 길거리에 펼쳐진 쇼윈도를 보며 걸어가는 도중 나도 모르게 음악소리에 끌려 어딘가로 향했다. 서로 맞닿은 건물들이 하나의 무대를 만든 그곳엔 머리가 히끗한 노년의 신사들이 밴드가 되어 연주를 하고 있다. 그들의 중후함이 음악에 묻어나서일까? 그들의 재즈연주는 나를 어느새 그들이 만들어내는 음악 속으로 끌어들였고, 시간도, 공간도 잊은채 그곳에서 머무르게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분들의 연주도 너무나 멋있었지만 우리를 그 곳의 분위기에 완전하게 빠져들게 만든데는 다른 것들도 있었던 것 같다. 먼저 연주하는 밴드와 그 곳에 자리하고 있는 관객(?)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함께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음악사이에 오고가는 눈인사와 손짓으로 관객들이 가진 밴드에 대한 존경심이 그대로 느껴졌고 처음보는 우리마저도 알 수 없는 존경심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노년의 나이에도 이렇게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약간의 희망도 던져주었다.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우리 사회에서 노인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렇게 파워풀하게 무언가를 하면서 자신도 즐기고, 타인도 즐기게 할 수 있는 일을 노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예견해주는 것이니까 말이다. 빨리 호텔로 돌아가야한다는 생각을 전혀 할 수 없게끔 만든 그들은 내가 지금까지 봐았던 밴드 가운데에서 단연 최고였다. 물론 그들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관객 또한 최고였다.
자신의 삶을 즐기는 노년을 만나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우리 사회도 그들에게 좀 더 기회의 장을 열어주면 좋겠단 생각이 강하게 든다.



음악에 빠져 겨우 사진 한장, 20초 짜리 동영상 하나 건졌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담아 온 시간이다. 내 여행 마지막 밤의 페이지를 장식해 준 그 분들 다시 한번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땐 내가 당신들을 봤을 때 얼마나 큰 기쁨과 희망을 건져올렸는지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시원한 생맥주 한잔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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