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까운 마을 이야기(Japan)/도호쿠(東北)

[후쿠시마] 오우치주쿠에서 에도시대의 흔적을 찾다.

728x90

꼭 강원도의 산길과 같은 길을 거슬러 올라가더니 어느 순간 버스가 멈춰 선다. 한참을 왔다고 쉬어가자는가 보다 싶어 버스에서 내리니 이곳이 오우치주쿠(大內宿)란다. 아니, '사진에서 본거랑 다른데?'라는 생각을 하는데 저 멀리서 봉긋봉긋한 지붕끝이 보인다. 겨우 주차장에 내려섰으면서 오우치주쿠의 모든 모습을 원하다니 이건 완전히 물 얹어놓고 라면이 익기를 바라는 셈이다. 이미 저만치 달려간 사람도 있다. '나보다 더 맘이 급한 사람이 있네'라는 생각을 하며, 나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내려 누른다.

<주차장 안내소>

주차장 안내소는 근래에 지었으련만 오우치주쿠 건물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있다. 아마도 이곳에서부터 에도시대의 정취를 느껴보라는 작은 배려라 생각하고 살짝 웃음지으며 올라가려는데 더 큰 웃음을 주는 것이 있다. 눈이 많이 와 있으니 미끄러질지도 모른다고 새끼끈으로 신발을 묶으라는 거다. 그러면서 외국인들이 알아듣지 못할까 싶어 그림으로까지 그려두었다. 첫 출발점부터 작고도 세심한 마음이 조금남은 여행자의 긴장을 확~ 풀어버린다. 그들이야 어떤 마음으로 이것을 두었든 보는 사람들이 나를 위한 배려라 생각하고, 감사해하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미끄러운 신발을 위해 준비해둔 새끼줄>

그들도 우리 조상들과 그리 다르지 않는 삶을 살았나보다. 언어가 다르고, 생긴 모습은 다를지언정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어딘가 닮아있기 마련이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그 비슷함을 찾을 수 있으니 손가락 한마디(비록 지도에서지만)만큼만 떨어져있는 그들과는 어쩔 수 없이 닮은 모습이 많을 것 같다. 새끼줄을 보니 에도시대에 게다에 새끼줄을 묶고 걸었을 그들의 조상도 보이고, 고무신에 새끼줄을 묶고 먼 길을 걸었을 우리의 조상도 보이는 듯 하다.


어떻게 저렇게 하얀 눈밭을 지금 이 시간까지 아무도 밟지 않고 그대로 둘 수 있었을까?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눈이 내리면 아무도 밟지 않은 곳에 흔적을 내어 보겠다고 마구 밟고 다니는 나의 모습과는 너무 상반적이다. 너무 깨끗한 모습이 스쳐지나가기조차 미안함이 든다.


오우치주쿠에 대하여...

오우치주쿠는 에도시대에 형성된 여인숙 마을이다. 일종의 여관촌이라고 볼 수 있다. 길 양쪽 끝으로 40여채의 전통가옥이 남아있어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이곳의 가옥들은 대개가 목조건축물이며, 지붕은 짚으로 풍성하게 얹어두었다. 이 길은 아이즈와카마츠와 닛코 이마이치를 이어주는 최단거리의 길로 경제적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 길이였기에 에도시대에 수도로 향하던 영주들이 많이 묵었던 곳이라 한다. 그들 가운데서는 우리가 들어봄직한 사람들도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다테 마사무네, 호시나 마사유키, 요시다 쇼인, 이자베라 버드(영국의 여성 여행가) 등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묵었다.

지금은 음식점과 기념품 가게 등의 형태로 유지되고 있으며 연간 100만명의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일본에서도 얼마남지 않은 오래된 형태의 가옥으로 의미가 있다. 겨울엔 운영하지 않는 곳이 많으니 여행시에는 고려할 것.

 


오우치주쿠의 제일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집이다. 이곳에서 네기소바로 가장 유명한 집이란다. 관광청 사람들이 추천했으니 믿을만한 정보다. 이제 겨우 첫번째 집인데 우리의 발걸음은 이곳에서 멈춰버렸다. 줄지어 사진찍느라 바쁘고, 네기소바를 먼저 먹어야 하나, 한 바퀴 돈 후에 먹어야 하나로 옥신각신하며 이곳에서 한참을 머무른다. 첫번째부터 이렇게 우리의 발걸음을 사로잡으면 앞으로는 어쩌라고... 일단 우리는 한바퀴 돌고 네기소바를 먹기로 했다.


겨울동안 땔감을 쌓아두고, 먹을 양식을 좋은 볕에 말리려 늘어 놓는 모습은 왠지 보는 이로 하여금 정감이 돈다. 우리 부모님들이 겨울이 오면 김장을 하고, 겨울내내 사용할 연탄과 기름을 채우고 미루었던 숙제를 말끔하게 해치운양 편안해했을 그 맘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도시가스에 전화한통이면 배달까지 해주는 김치가 널린 턱에 예전의 그 마음을 느낄 수가 없다.

<술을 제조하는 집>
 
네기소바집 옆에는 술을 제조하는 집이 있다. 쌓여 있는 술통들에 정말 술이 들어있는지 궁금하다.


이것은 뭔가... 입구쪽에 있는 것을 보니 오우치주쿠의 안내도인듯 보이나 온통 알아볼 수 없는 한자와 일본어로 써져 있으니 그저 추정할 뿐이다. 아마 에도시대에 이곳을 지나던 사람들이 이 지도를 보며 오늘은 어드메에서 하룻밤을 묵을까하고 생각했겠지.


눈에 익은 풍경이 들어온다. 즐겨보진 않았지만 TV에서 자주 나오던 아이리스(Iris)에서 주인공들이 일본여행에서 뭔가를 구워 먹던 이글루의 모습이다. 아키타에서는 이것을 가마쿠라(かまくら)라고 부른다고 들었다. 음력으로 1월 15일 물의 신을 가마쿠라 안에 모셔두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떡을 굽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감주를 대접하는 아키타 지역의 어린이 행사란다. 이곳은 그저 여행 온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만든 것 같은데 충분히 목표를 달성한 듯 하다.

조금 더 이쁜 가마쿠라를 만들어보겠다고 손끝을 놀린 그들의 노력이 엿보인다.

<우리도 그들처럼>

<오우치주쿠의 기념품점>

과거엔 숙박시설이었던 오우치주쿠지만 지금은 기념품점으로 탈바꿈했다. 경제적으로 중요한 위치였다하니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종목으로 바뀌었으리라. 그나마 그 모습이 아예 없어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한 없이 내리던 눈은 내리고 녹고, 내리고 녹고를 반복했나보다. 그런 시간의 흐름이 오우치주쿠에 고드름 절경을 만들었다. 어린 시절 집 앞에서 보던 고드름과는 차원이 다르다. 시간이 이들을 이렇게 무르익게 만들었나 보다.



순간 동생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나 저거 하나 할래!"라고 하더니 지붕 끝을 향해 뛰어 간다. 그러고는 큰 고드름을 하나 들고와 이런저런 우스운 포즈를 취해 본다. 산 좋고, 물 좋고, 공기마저 좋은 곳에서 생산(?)한 고드름이니 아이스크림처럼 먹어도 별 무리 없을 것 같긴 한데 선뜻 그러진 못한다. 동생의 고드름 퍼포먼스로 잠시동안 주변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오우치주쿠 전통가옥의 지붕>

오우치주쿠의 전통가옥들은 모두 목조건물이다. 한술 더 떠 지붕은 나무보다 더 잘 타는 짚으로 엮여 있다. 그래서 오우치주쿠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형태의 지붕이 남게 되었다. 짚과 나무로 만들어진 집이었으니 불에 얼마나 취약했으랴. 작은 불씨라도 옮겨붙기만 하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만의 의식으로 지붕 처마 아래에 그들의 염원을 담았다. '수(물, 水)'자를 새겨놓고 수자의 주변에 용을 한 마리씩 새겨놓았다. 물은 불과 상극이니 불이 나지 않기를 바라는 그들의 마음이었을 것이고, 그 염원들을 신성하게 여겨지는 용들이 잘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당시 얼마나 많은 화재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마음을 본다면 한 채도 타없어진 것이 없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오우치주쿠의 모든 가옥들에 새겨진 그들 선조의 염원이다. 그리고 내가 본 오우치주쿠가 가진 에도시대의 흔적 1호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초가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신식으로 지어진(?) 이층집도 보이고, 신사의 입구처럼 장식된 나무기둥들도 보인다.


또 기와집처럼 생긴 2층 집도 보인다. 여기에서는 신식집에 속한다. 나름 테라스도 있다. ^^

<에도시대 관리의 집>

예사롭지 않은 모습이 눈에 띄더니 이곳의 관리였던 사람이 살던 집이란다. 집의 크기도 훨씬 크고, 나무담이긴 하지만 담벼락도 있다(이건 후에 생긴 거일 수도 있지만...) 지금은 박물관으로 이곳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우체통도 있다. 주민들을 위한 것이겠지만 왠지 나도 이곳에서 엽서 한통을 띄우고 싶어 진다.

<산쪽에서 바라본 오우치주쿠의 모습>

그 많던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가버렸을까? 함께 온 사람들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들 네기소바 먹으러 가셨나?


오우치주쿠의 끝자락에 도달하니 입구에서 본 표지판이 또 보인다. 이쯤에서 숙박촌의 안내도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슬쩍 든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안내도 옆에 서 있는 돌상이다. 무슨 돌상인지 스산한 기운도 돈다. 아마 저녁 해가 어슴프레 질녘에 봤다면 아마도 까무러쳤을 것 같다. 주변 어딘가에 신사가 있나보다.


저 위에 올라가면 오우치주쿠의 모습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다. 안전을 위한 처사겠지.
여기서 돌아내려가야 하나 보다.

<오우치주쿠의 수로>
 
드디어 에도시대의 흔적 2호를 찾았다. 바로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수로이다. 길 따라 서 있는 초가집만큼 눈길을 끈다. 이런 날씨에도 물은 세차게 흘러 내린다. 일본은 물 풍족 국가라더니 정말인가? 우리나라는 이맘때 쯤이면 가물어서 이렇게 흘러내리는 물을 보기가 힘들다. 그러고 보니 일본에선 유독 수로와 물로 만든 조형물들이 많았던 것 같다. 예전부터 흐르던 이 물은 지금까지도 흘러내리고 있다. 이 물은 아주 차갑고 깨끗한게 특징이라 냉장고의 역할까지도 해주었다고 한다. 시원한 맥주를 담궈두고 먹을 수 있는 천연의 냉장고이다.


천천히 내려오는데 열심히 눈을 치우고 계신 한 분을 만난다.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눈치우는데 완전 열중하셨다. 그 모습이 좋아보여 한컷 찍었다.


오우치주쿠를 실컷 돌아보았으니 이젠 네기소바를 먹을 차례인가?
후훗~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돈다.
네기소바와 함께 오우치주쿠의 기념품들을 보시려면 절 따라오세요!



반응형

인스타그램 구독 facebook구독 트위터 구독 email보내기 브런치 구독

colorful png from pngtree.com/

DNS server, DNS serv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