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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이야기(Korea)/전라도(Jeollado)

[아름다운 성당 투어1] 어은동 공소와 함열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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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와 성당

공소는 성당과 같이 (가톨릭)교회를 의미하지만 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 할 수 있다.
사제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공소예절을 행하고, 사제가 방문했을 때 미사와 성사를 거행한다.
과거 사제가 많지 않던 시절 인근 성당 사제가 정기적으로 공소를 방문했지만
교통이 발달하면서 신자들이 성당에서 미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져 공소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피정이나 행사 등의 장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어은동 공소

"어은동(魚隱洞)"이라는 이름에 흠뻑 빠졌다.

'잉어가 숨어 편히 지내는 혈'이라는 의미처럼 고요한 시골길을 따라 한참을 안으로, 산을 향해 들어가야 했다. 그 길의 끝에 이렇게 정갈하고 고즈넉한 공소가 있을 줄이야... 지금이야 도로가 시원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옛 선조들이 이곳에 이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듯하다.

 

어은동 공소

병인박해를 피해 이주해온 신자들이 모여 신자촌을 이루었고, 1888년 처음으로 어은동 공소가 설립되었다.
공소였기에 사제가 없이 신앙생활을 유지해오다 당시, 전동성당(전주) 주임신부의 요청에 따라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담당사제가 부임하게 되었다. 현재 공소 건물은 1909년에 지어진 것으로 한옥 건축 양식과 너와지붕이 잘 어우러져 있다. 건축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 국가등록문화제 제28호로 지정되었다.

 

 

 

성당 내부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중앙대들보가 계속 신경 쓰였는데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 남성과 여성의 좌석을 나누기 위해 구분해놓은 거란다. 

 

 

 

본래 공소에서 사용하던 제대는 외국에서 가지고 온 것이라 한국전쟁 때도 지켜냈다고 하는데 1999년 진안성당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십자가의 길은 한국 전쟁 당시 북한군에 의해 손상되었다고... 우리 역사를 고스란히 경험했다.

 

 

 

서까래 아래에는 옛 공소 신자들과 지금의 공소 신자들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는데 상당히 인상적이다. 한 때 2000명이 넘는 신자들이 이곳에 있었다는데... 당연한 일이겠지만 예전 청년들이 가득했던 공소를 지금은 어르신들이 지키고 계신다.

 

 

 

당시 너와지붕을 얹기 위해 30리(약 12km)가 넘게 지게를 지고 날랐다고 하니, 신자들이 얼마나 공소를 귀하게 여기며 정성을 다했는지 느껴지는 듯하다. 특히 공소(당시 성당)에서는 정식 인가를 받은 학교까지 운영했다고 한다. 드망즈 주교님이 축복식을 거행했고, 1921년 폐교될 때까지 학문과 문화 교육을 위해 그 역할을 다했다고 한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공소와 성당을 오가다 1952년 진안성당이 설립되면서 지금은 공소로 이어지고 있다.

 

 

 

지나치던 길, 예쁜 이름에 이끌려 오게 되었는데 이름 만큼 주변 풍경과도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시간이 가진 힘인 듯 싶다. 

 

 

 

익산 나바위로 가던 길에 또 한 번 걸음을 멈췄다.

1959년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님이 지은 성당인데 본래 안대동 성당이었다가 현재 함열성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건축양식이 전동성당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는데 이건 무슨 양식이라 해야 하나... 뾰족한 고딕 양식보다 훨씬 아름답고 편안해 보인다.

 

 

 

코로나 이후 많은 성당들이 미사 시간이 아니면 문을 잠가놓는 곳이 많이 생겼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좀 아쉬운 마음은 숨겨지지 않더라.

 

 

 

우연히 만난 길에서도 이런 멋진 성당들을 찾을 수 있다니... 평소 관심 없던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봐야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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