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길목, 먼 길을 떠났다.
얼마 전 영월을 다녀오긴 했지만 경상도와 인접한 강원도라 별 느낌이 없었는데 강릉은 조금 먼 여정이란 느낌이 확연히 든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다녀오고 처음이니 얼마나 오랜만인가.
어린 마음에도 참 좋았던 기억이 남아 꼭 다시한번 오고 싶단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오게되니 만감이 교차한다.
오죽헌은 아주 깔끔하게 정돈된 유적지였다.
입구부터 길게 뻗은 돌바닥이 그랬고, 곱게 다듬어진 정원이 그랬다. 그래서인가. 한걸음 한걸음이 더해갈수록 오죽헌에 대해, 율곡과 신사임당에 대해 생각하며 걸을 수 있었다.
드디어 '오죽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의 풍경이 나왔다.
2006년까지 사용한 오천원권 지폐에 그려져 있던 풍경을 제대로 담을 수 있는 곳엔 사람들의 기념촬영이 끊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담 너머로 보이는 기와지붕과 오래된 나무의 어울림이 참으로 아름답다.
오죽헌은 현존 일반주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이다. 궁이 아닌 일반주택이 지금까지 남아있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참 다행스런 일이다.
오래된 건물과 함께 손꼽히게 오래되었다는 배롱나무. 분홍의 꽃이 가득 피었다. 풍성한 잔가지와 꽃무더기가 범상치 않다했더니 신사임당과 율곡의 손길을 머금고 지금까지 굳건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무란다.
지금은 메인건물처럼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몽룡실이지만 본래는 오죽헌의 별채였다. 신사임당은 외가였던 오죽헌에서 머무르다 몽룡실에서 율곡을 낳았다. 흑룡이 바다에서 하늘로 오르는 꿈을 꾸었다고 몽룡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지금은 신사임당 초상화가 걸려있다.
오죽헌(烏竹軒) 이라는 이름의 배경이 된 검은 대나무들...
학창시절 친구들과 이곳에서 기념촬영을 찍었는데 이번엔 조카가 이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검은 대나무에 한참 눈길이 머무른다.
죽녹원에서 봤던 푸른 대나무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오묘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오죽헌의 사랑채. 오죽헌이 겸손되이 소박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면 사랑채인 이곳은 뭔가 모를 강렬함과 강인한 기개가 드러난다. 멋스럽게 휘갈긴 기둥의 주련글씨는 추사 김정희가 쓴 것이다.
오죽헌의 아궁이가 저문 것은 한참 전일텐데 여전히 땔감들이 가득하다. 왠지 겨울 준비를 재촉하는 듯 하다.
율곡기념관
오죽헌에서 잊기 쉬운 작은 박물관이지만 이곳에 담긴 유물은 스쳐지나가기엔 아까운 것들이 너무 많다. 조선 최고의 여류 화가인 어머니와 조선 최고의 학자인 동생에 가려진 다른 형제들의 그림들... 전혀 모자람이 없었던 훌륭한 작품들이었다.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영향이 컸던 집안인 것은 확실하다.
율곡 이이로 시작해 신사임당으로 마무리하게 되는 오죽헌 나들이.
율곡이 쌓은 학문과 삶이 아무리 대단해도 그 기반에 신사임당이라는 어머니가 없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다. 대나무의 곧은 절개가 오죽헌 일대에 가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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