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Porto)에서 보낸 일주일.
처음부터 그러고자 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행이 어디 계획된 대로만 이루어지던가. 예상보다 많은 날을 머물게 되면서 기왕이면 제대로 포르투에 빠져보잔 생각에 호스텔에서 일반 주택으로 숙소를 옮겼다.
오래된 골목길을 따라 오로지 번지수 하나만 보고 찾아가는 길은 긴장 반, 설레임 반. 어느새 눈에 들어오는 번지수에 긴장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안도감만 남았다. 바로 이곳이, 적어도 4일은 온전히 내 집이 될 곳이다!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새로 칠한 페인트 덕분에 누추해 보이지 않았다. 혼자 이곳에서 지내야한다는 사실이 억울할 만큼 내부는 사랑스러웠다. 주인의 깔끔한 성격을 반영하듯 어느 하나 흐트러짐 없이 깨끗하고, 포근했다. 포르투갈에서 보낸 1달 중 최고의 숙소였다는 것을 두고두고 되뇌일 만큼 편안한 곳이었다.
오기 전 연락을 주고 받았던 마르코의 부인이 나를 반겨주었다.
"자~ 이제 여기는 너의 집이야! ... 뭐 더 필요한 거 있니?"
"딱히 그런건 없고... 나 여기서 3일을 머물렀기 때문에 관광지 말고 주변에 괜찮은 레스토랑을 좀 알려줘. 이곳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으로... 물론 가격도 좋아야겠지? ^^"
이렇게해서 그녀에게 몇 가지 정보를 얻은 후 이 곳은 진짜 나의 집이 되었다.
무엇을 제일 먼저 해야할까?
여느 때 같으면 짐을 놓고 부리나케 관광지로 달려나갔겠지만 숙소를 보니 그러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났다. 제대로 친해져야겠단 생각으로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2층 건물에 있는 1층 집, 원룸 형식으로 주방과 작은 응접실, 침실이 연결되어 있다.
3명정도는 너끈히 지낼 있는 공간적 여유가 있다. 잠들기 전 책을 읽기도 편하고, 여행에 대한 짧은 기억을 기록하기에도 불편함이 없었다.
무엇보다 맘에 들었던건 빵빵하게 나오는 히타!!!!!
1월의 포르투, 결코 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우기인 탓에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았다. 희안하게도 포르투에선 거의 대부분 우중충했다는... 쌀쌀하진 않았지만 축축한 기운이 가득한 포르투갈은 여름의 눅눅함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눅눅함을 한 방에 보내준 라디에이터! 심지어 욕실까지 라디에이터가 있어 쾌적하게 보낼 수 있었다(특히 빨래 말릴 때 최고!). 큰 차이없는 이 온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포르투를 떠나 눈물나게 경험했다!
붉은색 인테리아가 인상적인 숙소의 욕실은 화이트 컨셉이다. 수압도 어찌나 좋은지...
주방을 둘러보다 저녁을 먹기 위해 찬거리를 사기로 했다.
옆집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는 간단한 먹거리를 사기에 충분한 곳이다. 쌉싸름한 맛이 그리워 콜라도 함께 사려하니 주인 아주머니 말씀이 "우리 집엔 포르투갈에서 나는 것 밖에 없어~" 무안할 만큼 단호한 말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필요한 몇 가지만 골라 나왔다. 물론 콜라를 사기 위해 조금 더 멀리나가야 했지만.
포르투갈의 물가는 상상을 불허한다. 비싸서가 아니라 너무 싸서... 펜네 1봉지, 바나나 4개, 토마토 소스, 핫소스, 맥주 2캔, 콜라 1캔 이렇게 많은 먹거리가 5,000원도 채 하지 않는다.
저녁식사는 사온 재료로 만든 파스타와 샐러드, 콜라 혹은 맥주. 주로 이런 식이다. 일행이 있었다면 다른 것들도 해먹었을텐데 혼자이다 보니 고기나 다른 것들은 조금 부담스러웠다. 대신 파스타는 쉽게 조리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포르투갈에 있는 동안 자주 해먹은 메뉴다. 대신 질리지 않게 한번은 토마토 파스타, 또 한번은 올리브 파스타, 다시 한번은 미트볼 파스타. 가장 손쉽게, 가장 맛있게 먹는 한 끼의 식사다. 식사땐 한국 드라마와 함께. ^^
아침식사는 동네 빵집에서 아침 일찍 사온 빵들.
포르투갈이라면 꼭 먹어야한다는 나타. 그리고... 이름은 모르겠는데 안에 생선살이 들어있어 꽤 맛있었다.
기본 양념, 주방 도구, 심지어 원두와 모카포트까지 있다. 포르투에서 와인은 당연한 일상이고.
인상적이었던 건 응급도구까지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 응급시 연락할 수 있는 곳의 번호는 물론이고, 간단한 약품과 반창고도 있었다. 다행히 사용할 일이 없었지만 급할 땐 꽤 유용한 도구들이 될 듯 하다.
골목으로 난 창.
커피 한 잔을 들고 이곳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도 의외로 재미있는 일이다(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왜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지 조금은 알겠다는). 특히 이 골목은 해가 지면 재밌는 일이 더 많다. 맞은 편에 동네 할아버지들이 즐겨찾는 작은 카페 겸 술집 겸 식당(간판도 없어 아는 사람만 찾는다는)이 있다. 해가 지면 어슬렁 어슬렁 집에서 나와 이곳에서 당구도 치시고, 축구도 보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게임도 한다. 한번씩 젊은 얘들도 왔다갔다하던데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순 없지만 서로의 어울림이 의외로 재밌다.
이 숙소가 맘에 든 이유는 숙소 상태도 좋았지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뛰쳐나가 산책하기 좋은 곳이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5분 거리에 있는 광장과 전망대는 매일 아침 찾았던 내 산책코스다.
영화 속의 한 장면 처럼 이곳으로 달려가 마음으로 소리 친다.
"안녕! 포르투~ 좋은 아침이야! ^^"
하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동네 식당 "안토니오(Antonio)"이다.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추천받은 곳인데 처음에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가 사람이 너무 많은 탓에 식사를 하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괜히 오기가 생겨 아침 식사하러 다시 찾았다.
입구에 서 있는 나를 보자 마자 손짓하며 들어오라 하셨던 mamma!
하지만 알고 보니 처음 날 그리 반긴건 다른 사람으로 착각해서 였다. 지난 여름 이곳을 찾았던 한국인 여학생인줄 알았다며 내게 사진을 보여 주시는데... 내가 보기엔 전혀 다른 생김새였는데 여튼 그리 어린 친구로 봐줬다는 점에 감사~ 그래서인지 자꾸 찾게됐다는.
한참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 한잔과 함께하는 아침식사가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이곳의 왠만한 먹거리는 모두 mamma가 만든다. 초코파이와 애플파이는 최고! 애플파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음에도 한 입에 다 먹어치웠다. 아침에 안토니오를 찾는 이유는 저녁 때완 다르게 mamma와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웃을 수 있어서이다.
포르투를 떠나는 날, 더 이상 이곳을 올 수 없다는 것이 더 아쉽게 느껴졌다.
mamma가 주방으로 들어오라며 나를 부르더니 이렇게 사진도 함께 찍고, 포근히 날 안아주었다.
이 사진을 찍어준 할아버지 덕분에 식당 사람들 모두가 한참을 웃었다는...
포르투에 간다면 꼭 다시 가봐야 할 곳이 생겼다.
집(숙소)으로 돌아와 가만 생각해보니 이곳에서의 3박 4일이 더 없이 아쉽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을 때 떠나야 다시 찾을 이유도 생기는 법!
짧은 포르투 살이를 마무리하며 브라가로 떠난다. 물론 꼭 다시 찾겠다는 다짐과 함께!
#여행은살아보는거야
#에어비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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