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중부지역에 있는 알쿠바사(Alcobaça)는 많은 (한국)사람들이 찾는 도시는 아니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유서 깊은 도시 중 하나이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기에 정보가 아주 빈약(가이드북에도 아예 없거나 있다면 단 1페이지에 불과)했지만 알쿠바사를 중심으로 오비두스, 나자레, 바탈랴, 파티마, 투마르, 레이리아 등 소도시들이 인접해있어 작은 도시들을 둘러볼 요량으로 알쿠바사를 숙소로 정했다.
사실 다른 도시들도 후보에 들었지만 에어비앤비(airbnb)에서 숙소를 보고, 가성비가 가장 좋아보여 이곳을 선택했다.
렌트카를 이용해 숙소에 도착한 순간, 한 눈에 반해버렸다. 넓은 마당이 있어 주차도 편리하고, 사방으로 펼쳐진 푸른 초원(겨울이었음에도 불구하고)도 시원스러웠다. 무엇보다 상냥한 목소리로 우리를 반겨준 호스트 아주머니의 수줍은 미소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한게 처음이라 예약확인은 어떻게 되는지, 체크인 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몰라 난감해하는데 아주머니는 "그런거 필요없어, 그냥 편하게 이용하면 돼! 환영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며 방으로 우리를 안내해주셨다.
열쇠를 전해주시면서 언제든 마음대로 오갈 수 있다고 하셨고, 현관문을 여는 방법, 집의 구조 등을 설명해주셨다.
오래된 열쇠구멍에 열쇠를 넣어 여는 순간 '찰칵'하는 소리가 너무 재밌었다. 하지만 구멍을 잘 맞추지 않으면 열기 힘들다는게 함정!
방으로 들어서면서 파스텔톤으로 꾸며진 침구와 커텐에서 아주머니의 감성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황홀함에 빠져 넋놓고 있는 우리를 향해 아주머니는 미안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미안해~ 너희가 커플이라고 생각하고, 더블침대를 준비했어. 트윈침대가 아닌데 어쩌지?"
그러고 보니 우리 방은 꼭 신혼여행 온 사람들이 묵도록 준비해둔 호텔 룸과 흡사했다. 침대와 쇼파에 있는 리본장식과 달콤한 초컬릿까지... 그제야 서로를 바라보며 한바탕 웃었다는...
"괜찮아요. 우린 전혀 문제 없어요. 이 친구가 저쪽 침대 끝에서 자면 되요. ㅎㅎ" 이렇게 첫 인사를 나눈 뒤 짐을 풀기 시작했다.
우리가 예약한 방의 가장 큰 장점은 욕실이 방 안에 딸려있다는 점이다.
방도 무지 넓다고 생각했는데 욕실도 엄청 넓었다. 욕조는 없었지만 넓고 깔끔한 샤워부스 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만족스러웠다. 방 밖에도 화장실이 있으니 이용해도 된다고 하셨지만 이곳을 두고 굳이 다른 곳을 사용할 일은 없었다.
더 늦기 전에 알쿠바사 시내로 나가 저녁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주머니께 위치와 기타 등등을 여쭤본 뒤 외출을 했다.
하지만 아뿔싸..
이 날이 2015년 12월 31일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포르투갈에서 아주 작은 도시에 해당하는 알쿠바사는 이미 연말연시를 즐기기 위해 휴일모드로 들어간 것이다. 결국 레스토랑을 찾지 못하고, 문닫기 직전의 슈퍼마켓에서 냉동 피자와 맥주, 과자 등 먹거리를 사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아직 저녁식사를 못했다는 말에 안타까워하며 전자렌지에 피자를 데워주시고, 과일이라도 좀 먹으라며 주셨다. 그러면서 "오늘 2015년 마지막 날이라 파티를 할거야. 동생도 오고, 친구도 올거야. 뒷마당에선 불꽃놀이도 할거고... 지금 파이와 스프를 만들고 있으니 이따 파티를 함께 하자!"라는게 아닌가. 정말로 아주머니의 벽난로에선 스프가 끓고 있었다.
"와~ 좋아요! 고마워요! 좀 쉬다가 이따가 나올게요."라고 말한뒤 피자 한 판을 허겁지겁 먹어댔다.
드디어 2015년을 보내기 10분 전... 거실로 나갔더니 아주머니의 동생, 친구들, 또 한 명의 게스트였던 독일인 아주머니는 벌써 새해맞이를 위해 마당에 나가 있었다. 우리도 나갔더니 여기저기에서 불꽃놀이가 한창이었다. 우리 숙소가 언덕 위에 위치한 탓에 아랫 마을에서 쏘아올린 불꽃놀이를 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이윽고 아주머니 친구들은 나팔을 부르며 기쁨의 환호를 했고, 우리는 서로 새해 인사를 나눴다.
한참을 바라보고는 안으로 들어와 아주머니께서 준비한 애플파이와 과자들, 와인을 함께 나누며 이야기를 나눴다. 독일인 아주머니는 벌써 이곳에서 3일 정도를 묵었고, 전체 1주일을 묵을 예정이란다. 휴가로 포르투갈을 찾았는데 그날은 파티마를 다녀왔고,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아주머니를 위해 준비했다고 작은 선물까지 전하셨다. 두 사람이 서로 고마워하며 인사를 나누던 모습이 얼마나 정겹던지...
여행에 대한 이야기, 집에 대한 이야기, 사회에 대한 이야기...
짧은 시간에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자연스럽게 포르투갈 여행이야기로 이어지면서 1달간 포르투갈을 여행할 거란 이야기,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는 이야기 등을 했을 때 아주머니는 노트북을 가져 오셔서 몇 군데를 소개해주셨다. 가이드북에는 없는 곳이지만 참 좋은 곳이라며... 바로 아주머니 부모님의 고향,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곳, 그리고 포르투갈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들이었다. 여행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말씀해주신 곳 중에는 정말 꼭 가보고 싶은 곳도 있었다. 하지만 일정이 촉박하여 미처 가보지 못해 담번 포르투갈 여행에선 꼭 찾아보리라 맘 먹고 있다. 하지만 벌써 가물~ 아주머니께 다시 여쭤봐야 겠다.
새해 아침, 조금 늦게 눈을 떴더니 벌써 해가 중천이다. 느적느적 거실로 나와 식사준비가 한창이신 아주머니를 보니 급 출출해졌다. 하지만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에 빠져 밖으로 나가 집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사방의 풍경이 서로 다른 분위기여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어도 지루하질 않았다. 아주머니께서 키우는 닭들도 새해인사를 하는지 연신 울어댄다.
어제 저녁 활활~ 타오르던 벽난로엔 재만 가득했다. 아주머니를 도와 아침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눈에 들어온 가족 사진!
젊었을 때 아주머니 사진(지금과 크게 변한 것이 없는)과 자녀들 사진, 그리고 손자 사진까지 사랑 넘치는 가족사진이었다. 또 어젯밤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셨던 부모님의 고향마을 사진까지... 덕분에 아침준비는 다시 아주머니의 몫이 됐다.
알쿠바사 숙소에서 또 한번 감동한 것은 아침마다 화려하게 차려주시는 아침식사다. 시끄럽게 오가던 닭들이 낳은 달걀부터 정원에서 키우고 있는 오렌지(아주머니는 이 오렌지에 엄청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각종 잼들과 과일, 커피... 포르투갈식 홈메이드 조식은 알쿠바사 숙소에서 놓칠 수 없는 경험이다.
특히 아침 주방 한가득 풍기는 오렌지향은 아주머니께서 가진 자부심에 기꺼이 동의하도록 만든다. 믹서기와 같은 기계를 이용하셔도 될텐데 꼭 손으로 싸야한다며 온 힘을 다해 오렌지를 짜시던 아주머니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이 오렌지는 우리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거야. 다른 오렌지와는 달라!"
아침식사를 하며 오늘은 뭐할거냐며 물으시는 아주머니.
어제부터 나자레 해안이 무척 멋지다고 말씀하시고서는 벌써 잊으셨나? ㅎㅎ 아주머니 말씀을 듣고 일단 나자레로 갈거라며, 그 다음은 그곳에서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집을 나섰다.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아주머니.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남긴 우리~
꼭 외갓집에 놀러온 손녀에게 대하는 할머니 같단 생각이 든다. 할머니를 찾아가듯 꼭 다시 한번 알쿠바사 숙소를 찾으리라 맘먹었다.
반!드!시!
아주머니 말씀처럼 나자레는 무척 사랑스러운 도시였다.
새해 첫날 나자레를 만난건 참 행운이라며, 아주머니 덕분이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한 우리에게 또 한번 수줍은 웃음을 지으셨다.
알쿠바사 숙소 예약
https://www.airbnb.com/rooms/2737196?s=22&user_id=34233994&ref_device_id=692d2b85c0b7cff9
#에어비앤비
#여행은살아보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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