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를 전공한 사람들에게 유럽은 조금 더 특별한 여행지다.
유럽은 '사회복지의 발상지'이며 그 누적된 시간만큼 복지가 일상화되어 우리가 말하는 복지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런 흐름은 복지국가라 불리는 스칸디나비아 지역 뿐만 아니라 독일, 영국, 프랑스 등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만큼 복지가 일상화된 생활을 하고 있다.
아우크스부르크는 짧은 기간 독일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즐겨찾는 여행지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세계 최초의 복지시설 푸거라이(Fuggerei)가 있다는 이유였다.
"복지시설이 여행지라고?"
푸거라이는 1521년 푸거가(Fugger family)에 의해 설립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복지주택이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없지만 여튼... 저소득층에게 아주 저렴하게 개인주택을 제공하고, 그곳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복지시설의 한 형태이다. 놀라운 것은 이런 복지시설이 여행책에도 소개되는 아우크스부르크의 대표적인 여행지라는 사실이다. 꽁꽁 숨어야하는 우리네 복지시설과는 참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에서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한다.
푸거라이는 복지시설이라기 보다는 복지마을이란 이름이 더 어울리는 곳이다.
15,000평이라는 공간 안에는 따뜻한 햇살이 충분히 머무를 수 있는 잔디정원이 있고, 각양각색의 꽃나무를 가꿀 수 있는 개인 정원도 있다. 휴일이면 마을사람들이 한데 모여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소박한 분수대는 덤이다. 교회도 있고, 과거엔 학교도 있었다. 상당히 안락함 느껴지는 이곳이 푸거라이라는 사전지식이 없었다면 전원주택 단지로 오해했을 법도 하다.
"유럽 최고 재력가가 만든 사회복지시설"
르네상스 시대, 유럽 사회를 흔들었던 피렌체의 메디치가(Medici family), 그들은 정치, 종교, 문화 등 곳곳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보였다. 헌데 이곳에야 알게된 푸거가의 경제력은 메디치가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한다. 어떤 사람들은 메디치가의 재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컸다고 전하기도 한다.
유럽 최고의 재력을 가진 가문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회복지시설을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이슈가 되긴 충분하다. 하지만 이런 시설을 만들고도 푸거가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양분화되어 있다. 사채업을 통해 부를 축적했고, 그들의 사업이 그리 투명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것. 또 당시 사회에서 경제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힘을 가진 사람들은 교황청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푸거가 역시 교회와 꽤 가까운 사이였고, 교황청이 발행하는 면죄부를 판매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게끔 만드는데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인데... 더 자세하게 파헤쳐보지 못해 뭐라 말할 순 없지만 여기에선 그들이 만들어 500년이 넘게 이어져오는 이 시설에 좀 더 집중해보고 싶다.
사회복지시설을 대중에게 오픈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시설에 대한 평가가 되고, 또 한편으론 이곳에서 거주하고 있는 생활인들의 사생활 보호와 존엄성에 대한 문제까지 얽혀버리면 꽤 복잡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공개를 선택했다는 것은 따가운 평가도 감수할 수 있을만큼 그들이 가진 자신감과 자부심이 컸다는 것이 아닐까.
▲ 푸거라이의 과거 모습(출처: http://www.fugger.de)과 현대 모습
샛노란벽들과 붉은 지붕, 푸른색과 흰색의 문장식들이 푸거라이에 생동감을 심어준다. 이런 색감 때문인지 역동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2채의 건물로 시작한 푸거라이는 현재 67개의 건물(142가구)로 늘어났다. 2차 세계대전때 폭격으로 무너지기도 했지만 이렇게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했다(2차대전 당시 사용했던 벙커도 보존되어 있다).
"푸거라이 박물관"
푸거라이는 지금도 여전히 사회복지시설로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67개의 건물 대부분의 주택엔 일상생활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 가운데 2-3개는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푸거라이 박물관>엔 푸거가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과 푸거라이의 역사, 과거 생활을 보여주는 오픈 하우스 등이 있다.
▲ 푸거라이 운영초기 주택의 모습
개별 주택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한 가구 내에 주방, 침실, 거실이 모두 구비되어 있다. 지금의 주택과 비교해도 손색없을만큼 훌륭한 시설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생활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푸거가는 이 시설을 만들면서 딱 3가지의 조건을 내걸었다.
첫째, (가난한) 아우크스부르크 시민이면서 가톨릭 신자일 것.
둘째, 매일 기도할 것(푸거가를 위한 기도도 포함).
셋째, 주택 이용료를 지불할 것(500년간 한번도 변하지 않은 연간 이용료 €0.88)
"빈곤층을 위한 주택에 비용을 지불하라고?"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1년에 0.88유로(1,000원)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다. 물론 전기세, 수도세 등은 지불해야 하지만 그것 또한 큰 부담이 안되는 선에서 지불한다.
과거 모차르트의 증조할아버지도 이곳에서 생활했다고 하는 작은 안내문이 붙여져 있다.
이렇듯 획기적인 운영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보니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푸거라이를 찾고 있다.
여기저기서 학생들의 무리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곳곳에 도네이션을 위한 장치(?)들도 있다.
푸거라이의 과거를 보여주는 박물관에서 조금 벗어나면 진짜 거주지대로 들어서게 된다.
덕분에 창문을 내다보는 할머니와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할 수 있는 반가운 일도 있다.
푸거라이가 참 좋은 이유 중 하나가 박제된 듯 틀에 갇혀있는 죽은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곳곳에서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고, 함께 숨쉬고 살아있음이 전해지는 곳이라 정겨운 마음이 더 커진다.
물론 이런 이유로 우리가 지켜야 할 에티켓도 있다.
- 생활인들의 사생활을 보호해줄 것(창문을 통해 집 내부를 들여다보는 일 따윈 하지 않을 것! 오픈 하우스가 있으니까.)
- 그들이 애써 만들어 놓은 정원과 기타 공간을 깨끗하게 이용할 것
- 과도한 소음을 내지 말것
"누구나 가져야 할 인간답게 살 권리"
집집마다 작은 정원이 있고, 사는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정원의 모습도 각기 다르다.
반듯반듯 삭막하게 연결된 우리네 아파트와 너무나 다른 모습인데, 이곳이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주택이라는 사실은 놀라움 자체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일을 한다.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 푸거라이에서 봉사를 하기도 한다. 또 이곳의 크고 작은 일들은 주민들이 함께 모여 의논하고 정해진다고 한다. 자치성을 가지고, 자율성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는 이곳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들의 인간다움을 지켜주는 곳이기도 하다.
▲ 현재 푸거라이의 모습
박물관에서 푸거라이 설립 초기 주택을 보았다면 이곳에선 현재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주택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생각보다 넓은 면적에 놀라고, 깔끔하고 단정함에 한번 더 놀라게 된다. 거실을 지나면 사람들의 대화가 들리는 듯 하고, 주방을 지나칠 땐 입맛을 자극하는 음식 냄새가 풍기는 듯 하다.
우리의 시설과 자꾸만 비교하게 되어 속상하지만 깊이 숙고해봐야 할 우리의 과제이다.
급식부터 시작해서 무상보육, 보육서비스의 질, 노인문제 등 우리에겐 해결해야 할 복지적 과제들이 산재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서비스들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복지"에 대한 기본 개념과 가치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긴 힘들다.
더 이상 복지가 한 때의 포퓰리즘이 아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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