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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에 실린 여행기

[트래비] 발길만 닿으면 모두 길이 된다(몽골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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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글이 잡지에 실렸다.

너무나 감격적이고 기쁜일이 아닐 수 없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기에 더욱 큰 기쁨을 주는, 적어도 나에게는 역사적인 일이다.

 

[원문] http://www.travie.com/traviest/week_view.asp?idx=274

 

 

 

  

 

 


▶ 몽골을 아시나요?

 

대한민국의 국경을 넘어 갈 수 있는 나라로는 그리 멀지 않은 곳, 3시간여 비행으로 도착할 수 있는 곳, 몽골리아(Monglia)이다. 하지만 '가깝다'라는 느낌 보다 '익숙하다'라는 느낌이 먼저 와 닿는 것은 왜일까? 똑같지 않지만 낳설지 않은... 단지 몽골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만 알았던 나인데 늘 곁에 있어왔던 것처럼 편안하고 익숙함이 느껴진다. 몽골로 들어가는 첫 관문인 칭기스칸을 넘어 드디어 광할한 대지에 발을 내딛었다.


▶ 하늘과 땅, 구름, 야생화의 천국


밤 늦게 도착한 나를 질타라도 하듯 몽골은 제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거기다 비가 없기로 유명한 이 곳에 비까지 추적추적... 8월의 찌는 더위답지 않게 한기마저 느껴진다. 그런데 스물스물 나의 코끝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다. 후훗~ 야생화와 허브의 천국이라더니 눈에 보이진 않지만 허브의 향기가 코를 찌른다. 정말 이곳이 마구마구 좋아질 것 같은 생각에 가슴마저 쿵쾅뛴다. 자칭 허브 매니아라고 떠들고 다닌 내가 어떻게 이곳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도대체 어떤 허브가 나를 반하게 만들었을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초원을 향해 달려나갔다. 



 


세상에... 나가보니 야생화, 허브가 다가 아니다. 하늘과 땅, 구름 모두가 환상이다. 이 땅을 처음 밟았을 때 느꼈던 익숙함, 드디어 찾았다. '그래 이거였어. 이게 초원이구나.' 이 초원의 모습, 늘 내가 모니터를 통해보던 화면과 같은 모습이다. 넓디 넓은 초원과 푸른 물감 한방울로 물들인 듯 새파랗고 투명한 하늘, 살짝 뛰어 오르면 금방 내 손 안에 들어올 것 같은 뭉게 구름. 바로 그 모습이었다. 하늘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아 자꾸만 뛰어오르게 된다. 아이가 되어버렸다. 이유없이 웃음을 흘리게 되고, 뛰어 오르게 되고, 세상의 모든 것이 새로운듯 빠르게 굴러가는 나의 눈동자가 나를 어린 아이로 만들어 버렸다.


 

 

 

 

이 고귀한 왕의 이름은 칭기스칸이었으니
그는 당대에 큰 명성을 떨쳐
어느 지역 어느 곳에도 만사에 그렇게 뛰어난 군주는 없었다.
(캔터베리 이야기 中)


 

▶ 역사는 살아있다.

 

몽골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칭기스칸이다. 칭기스칸에 대해서는 '버려진 아이', '야만인', '대제국의 영웅' 등 여러가지 수직어가 붙지만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왕'이었다는 것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몽골을 넘어 아시아가 좁았는지 저 멀리 변방 유럽까지 영역을 넓혀 단단한 제국을 후손들에게 남겨주었다. 그래서인가. 지금은 아시아의 많은 민족들이 서로 칭기스칸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우기고 있으니. 때마침 내가 이곳에 갔을 때가 몽골제국 건국 800주년 기념해라 여기저기서 그의 흔적을 살필 수 있었다. 광활한 땅덩어리만큼 스케일도 크다. 산등성의 한 쪽을 흰색으로 칠한 돌로 그의 얼굴을 그려 놓았다. 소문에 의하면 군인들이 이 그림을 만든다고 꽤나 공들였다고...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나 다른나라나 군인들이 큰 국가의 일꾼이다.



 

만일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노력과 의지가 있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한 것이 없고
배우지 못할 것이 없으며 실패할 것이 없다.
(수흐바트르 기념비 中)

물론 몽골에는 칭기스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울란바토르 시내 중심에는 몽골혁명을 이끈 수흐바트르를 기념하는 광장이 있다. 우리에게 서울광장이 있듯이 몽골인들에게는 이 광장이 서울광장의 역할을 한다. 과거 혁명의 중심지가 지금은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산책도 하고 데이트도 하는 그런 곳이 되었다. 칭기스칸의 명성이 언제 있었냐는 듯 몽골은 중국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왔던 몽골이 그를 통해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다. 
또 하나의 역사는 2차 대전때 러시아와 함께 전쟁에 승리한 기념으로 세운 자이산 승전 기념탑이다. 울란바토르 어디를 가도 안보이는 곳이 없을 정도로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이 곳엔 공산당원들이 자축하는 듯한 그림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 러시아와 중국에 둘러싸여 분리 아닌 분리가 되어버린 이 곳의 흔적을 보니 아직까지 '함께'가 되지 못한 우리나라가 가슴에 더욱 아련히 남는다.


▶ 가장 몽골다운 모습

울란바토르 시내는 자본주의의 모습이 조금씩 자리잡아 감에 따라 복잡해지고 시끌벅적해져버렸다. 하지만 외곽으로 조금만 나온다면 가장 몽골다운 모습을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유목민의 습성을 아직 버리지 못한 몽골인들은 지금도 게르를 만들었다가 접었다가하면서 자신들에게 가장 적합한 지역을 찾아 나선다. 여름엔 시원한 곳으로, 겨울엔 바람이 적은 곳으로... 생활필수품과 가족들, 목숨같은 양, 소, 야크 등을 데리고 찾아나선다. 심지어는 집까지 들고. 하지만 이것도 머지 않아 보기 힘든 광경이 될 것 같다. 몽골에서는 국가 정책으로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정책을 추구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울란바토르를 향하고 있고, 안정적인 생활을 원하는 몇 몇의 사람들은 정착형 주택을 선호하고 있다. 이 초원에 빌딩이 들어서고, 아파트가 들어서게 된다면. 생각만으로도 눈을 찔끔 감게끔 한다. 글쎄... 한 낱 관광객의 눈으로 보는 것과 이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는 눈은 다를 수 밖에 없겠지만 내심 그들이 이 넓은 자연을 포기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 리틀 나담축제

 



 

 

돌아오기 전 몽골의 대표 축제인 나담축제를 보러 한 학교에 들렀다. 물론 나담축제는 이미 끝났지만 한 학교에서 아이들을 위한 나담축제를 한다고 해서 그것으로나마 위로해 보려했다. 이 축제가 내 발길을 끄는 더 큰 이유는 이곳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의 대부분이 '거리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높은 이혼율로 버림받은 아이들이라는데 표정에서는 전혀 그런 아픔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한 수도원에서 만든 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꿈을 키워가고 있다. 한국어를 배웠다며 슬며시 다가와 말을 거는 아이들에게서 몽골의 미래를 본다. 열심히 한국어를 배워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고, 다시 조국으로 돌아와 이곳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는 아이들의 얼굴이 무척이나 밝다. 생각의 깊이가 나이와 비례하는 것이 아님을 새삼 느낀다.


 

 

▶ 지금부터 내길을 만들어 간다.

 



 

어디로, 어떤 길로 가야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어디든 갈 수 있는 곳이 몽골이다.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고, 자유롭기를 바라는 여행자에게는 이 곳이 천상낙원이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로든 달려갈 수 있으며,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곳이다. 초원이 좋아 초원에서만 10일을 넘게 보냈지만 한번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았다. 자연에서 왔으니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헛말은 아닌가 보다. 초원을 뒤로 하고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이 발길을 자꾸만 잡지만 또다른 세상을 향해 나갈 수 있는 나만의 길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떠나기에 아쉽지만은 않다. 몽골에서 무지개를 보면 다시 이곳으로 올 수 있다는데 열흘이 넘는 시간을 이 곳에 있으면서 무지개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떠나는 이 순간 내 마음의 무지개를 보면서 발길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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