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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에 실린 여행기

[낙동강 Magazine] 천번의 두드림이 빛을 내는 곳, 대구방짜유기박물관(1월호-VOL.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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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요즘이라 마음이 좀 찜찜했는데 몇 개의 여행관련 잡지에서 글을 실겠다는 요청을 받아 그 마음을 조금은 해소할 수 있었다. 그 첫번째가 <낙동강 Magazin>으로 무엇보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 개인적으로는 좀 더 의미있는 일인 것 같다. 최근들어서는 대구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풀어나가고 싶은 욕구가 점점 커지고 있어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찌됐건... 내겐 새해 첫 기쁨이고, 큰 의미를 가진 일이다.

 

 

낙동강 매거진(Magazine) VOL. 04 (p.96~101)

 

낙동강 생명의 숲 실천본부와 매일신문사가 공동으로 발행하는 영남권 중심의 계간지로 2012년 5월에 창간하였다.

낙동강 유역권을 중심으로 역사와 문화자원을 소개하는 잡지로 전국 지자체와 관련부처, 교육기관 등에 배포되고 있다.

 

본 기사의 내용(사진, 글)은 moreworld가 작성하였고, 저작권은 실천본부로 귀속됩니다.

이하 전문.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 본섬에서 조금 벗어나면 ‘유리의 섬(무라노섬)’이 있다. 정교한 유리공예 기술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육지와 떨어진 곳으로 유리공들을 이주시켰고,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세계적인 예찬을 받고 있다. 우리에게 이탈리아 유리공예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것이 있으니 바로 “방짜유기”이다. 팔공산 기슭에 자리한 대구방짜유기박물관은 방짜유기가 가진 과학적 우수성과 예술적 탁월성을 후대에 알리기 위해 2007년 개관한 국내 유일의 방짜유기전문박물관이다.

 

 

유기(鍮器)의 도시 납청(納淸), 그리고 안성(安城)

 

 

 

 

평안북도 정주군에 있는 납청은 유기의 명산지로 꼽히며 일제 강점기까지 각 지방의 유기 도매상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개성, 구례, 진주, 순천 등 유기를 제작하는 곳은 많았지만 산이 높고 물이 맑은 납청에서 생산된 우수한 소나무 숯 비법에는 비할 수 없었다. 납청과 함께 유기장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곳으로 안성이 있다. 안성에서는 양반들의 주문을 받아 만든 맞춤유기가 성행했는데 안성에서 제작한 유기는 빛깔이 뛰어나고 정교한 모양을 갖추어 양반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안성에서 맞춘 유기는 내 마음에 쏙 들어!” 양반들의 칭찬이 안성맞춤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과학과 예술의 향연, 유기

 

 

 

 

 

 

 

사실 유기라는 이름보다는 놋그릇이라는 이름이 귀에 더 친숙하다. ‘놋쇠는 구리와 주석을 기본재료로 하는 합금속이지만 이들을 어떤 비율로 섞느냐에 따라, 이들을 어떻게 용해하느냐에 따라 색깔과 질감이 달라져 그에 붙는 이름도 다르다. 1300도가 넘는 불구덩이에서 구리와 주석을 78:22로 합금한 뒤 망치질로 모양을 만드는 방짜유기”, 불에 녹인 쇳물을 일정한 틀에 부어 동일한 모양의 규격제품을 생산해내는 주물유기”, 비교적 최근 들어 개발된 기술로 주물기법과 방짜기법을 절충하여 만드는 것을 반방짜유기라고 한다. 방짜유기는 망치의 두드림이 그대로 남아 고유의 결을 이루며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작품이 되어주니 예술적 가치 또한 높다. 주물유기는 쇳물의 배합비율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독특한 모양의 유기를 다량으로 생산할 수 있어 예술성에 경제성도 더하였다.

 

 

오천년을 살아온 유기의 역사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시대부터 유기를 제작사용하기 시작했지만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온 시기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서이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불교미술품들을 통해 당시 유기기술을 짐작해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종교적 상징물을 넘어 각종 생활용기와 악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제작되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식기로 사용된 놋그릇은 구리와 주석만의 합금으로 만들어진 방짜유기가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적 노력으로 채금을 시도하고 유기 기술자들을 관아에 배치하여 생활용기와 예술품 제작이 활성화되었다. 이렇게 꽃을 피워가던 유기제작은 일제의 유기공출로 사그라들었으나 해방을 맞아 다시 성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사용에 편리한 스테인레스가 대세로 자리잡아 우리 주변에서 점차 사라져갔다. 최근 들어 방짜유기의 살균기능과 각종 효능이 알려지면서 다시금 우리 생활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생명을 담는 그릇, 방짜유기

 

 

 

 

 

 

 

 

적당한 보온기술이 없던 시절, 아랫목에 묻어둔 밥은 시간이 지나도 그 온기가 가시지 않았다. 덕분에 느지막이 들어온 아버지도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방짜유기의 보온보냉효과 때문이다. 오래 저장해두고 먹어야 할 음식들도 방짜유기에 담아 보관하면 세균을 사멸하여 식중독을 예방할 수 있으며 농약성분도 사라져 우리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스님들의 머리를 깎을 때 사용하는 삭도를 방짜로 만드는 것, 미나리를 씻어낼 때 10원짜리 동전을 넣고 씻는 것과 같은 이치다. 특히 O-157과 같은 맹독성 대장균의 살균효과는 도자기, 스테인레스 그릇 중 으뜸이다.

방짜유기가 가진 효능의 비밀은 세계적으로 유일한 황금비율 78:22에 있다. 원재료에 약간의 오차만 있어도 두드렸을 때 늘어나지 않거나 깨져버리니 꼭 지켜야 할 황금비율이다. 78:22에는 보온성, 살균성, 견고성 모두를 사로잡은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져 있다.

 

 

1300도의 열정이 만든 대구방짜유기박물관

 

 

 

 

 

 

방짜유기가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1300도가 넘는 유기장인들의 열정 덕분이다. 그 노력을 치하하기 위해 국가에서는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로 방짜유기 제조기술을 지정하였다. 대구방짜유기박물관은 유기장인들의 작품을 기증받아 대구광역시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1,500여점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작품이 이봉주 장인이 직접 제작수집한 것이다. 후대에 방짜유기를 전하고 싶다는 바람이 전국에서 유일한 방짜유기 전문박물관을 탄생시켰다. 박물관은 유기에 대한 전반적 설명을 담고 있는 유기문화실, 이봉주 방짜유기장이 제작한 작품들을 선별하여 전시하고 있는 기증실, 1930년대 납청마을의 유기공방과 놋점을 복원한 재현실이 있다. 재현실에 들어서는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 당시의 납청마을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방짜유기, 부활을 꿈꾸다!

 

 

 

 

대구방짜유기박물관에는 일상생활용품부터 악기와 종교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방짜유기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투박한 망치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악기들에선 유기장인들의 노동요가 들려오는 듯 하고 매끄럽게 다듬어 놓은 식기들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입맛을 다시게 된다. 화려하고 섬세한 조각이 수놓아져 있는 종교용품들에선 신성함 마저 풍겨 나온다. 편리함에 밀려 숨죽이고 있던 유기들은 대구방짜유기박물관에서 현대인들과 조우한다. 웰빙의 시대,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방짜유기가 우리의 삶 깊숙한 곳에서 새롭게 도약할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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