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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에 실린 여행기

[트래비] 여행에 빠지는 진짜 이유(비엔나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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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다녀오니 내게 선물이 도착해 있다. 내 글이 또 다시 실려있었다.
[원문] travie 홈피 → 트레비스트 → 에세이 1889번

 

 


 

 

▣ 비엔나(Vienna)하면 생각나는 것...

 

음악, 건축, 문화, 커피, 소세지.... 그리고 Kiss...
도시자체가 박물관이라는 말, 너무 식상하다고 생각했었다. 단순한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비엔나는 정말 '세상에서 가장 넓은 박물관' 이었다. 적어도 내가 본 최대의 박물관.
이 거대한 박물관에서 과거의 사람을 만나고, 오늘의 사람을 만난다. 그들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하나라는 큰 깨달음도 얻는다.


▣ 이게 네 모습이야.

 



아무런 보호장치없이 내던져지듯 어색한 만남을 시작한다. '이것이 지금 네 모습이야' 내가 미처 알지 못할까봐 내 모습을 보여준다.
모든 것이 새롭기만 한 이 곳에서 행여나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기대와 긴장이 함께하는 호기심 가득한 초보 여행자의 모습을 반영한다.
왠지 동일시할 수 있는 대상이 생긴 것 같아 약간의 긴장이 풀린다. 모든 것을 수용해줄 것만 같은 따뜻한 느낌이 온 마음 가득히 자리한다.

 


▣ 비엔나의 두 여인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나 역사 속 이슈에는 여인이 있기 마련이다. 오스트리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명의 여인을 비엔나에서 만났다.
두 사람 모두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미모를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지만
스스로는 자녀로 인해 까맣게 속태우며 여생을 보낸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
왕후였지만 그 이상의 권한을 가질 수 있었던 그녀의 카리스마는 200년이 지난 지금도 숨이 막힐듯한 장엄함을 보여준다.
이런 여인도 세상사에 대한 걱정이 있을까 싶었는데 사람의 인생사가 그렇듯 걱정없는 삶은 없는가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원하기만 한다면 다 얻을 수 있는 그녀였지만 죽는 순간까지 딸인 마리 앙뚜아네트에 대한 걱정을 가지고 살았단다.
어느 어머니가 자녀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겠냐만은 자꾸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딸은 언제나 마음 한켠을 짖누르는 투박한 바위였을 것 같다. 그러면서 엄마의 얼굴이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 무작정 떠나 연락도 없는 내가 엄마에게는 마음을 누르는 투박한 바위일 수도 있겠지.

 

 

엘리자베스 시씨...
첫눈에 반한 사랑이 비극적인 결말을 보여줄지 그땐 몰랐겠지?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슬며시 기가죽은 나는 시씨의 미소로 약간은 보상받은 듯 하다.
'그 옛날, 그 시대에도 애틋한 연애의 감정을 가질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이 어리석은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 나로서는 그녀의 사랑이야기가 로맨틱한 동화로밖에 여겨지지 않지만
그런 운명적인 사랑을 원하는 사람이 많은가보다.
지금까지도 그녀의 사랑이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으니...
이런 운명적인 사랑을 한 사람들이 잘 살아준다면 나같은 사람도 희망을 가질텐데 안타깝게도 그녀의 사랑이 그리 평탄치만은 않았다.
엄청난 시어머니와의 갈등과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자녀, 예전같지 않은 남편의 사랑...
유럽 방방곡곡을 떠돌다 결국 칼에 찔려 생을 마감한 그녀를 통해 괜스레' 인생이 뭔가'라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 예술품도 결국 사람에게서 태어난다

 



음악과 미술의 공통점을 찾으라 한다면 둘다 사람에 의해 창조된다는 것이다.
간혹 화려한 멜로디와 색채가 그들이 가진 진짜 존재의 이유를 덮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특히 그 예술품들의 경지가 높아질 수록 그런 오류를 잘 범하게 된다.
음악을 따라 발길을 옮기면서, 화려한 색채 앞에서 차마 발길을 옮기지 못하면서 이제야 이것을 탄생시킨 그들을 생각하게 된다.
사실 현재의 비엔나는 200년전, 300년전에 존재하던 그들이 먹여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들의 흔적을 어디서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들의 육신은 사라졌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현대를 살아가고, 새로운 예술품들을 탄생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래서인가. 이 곳 사람들의 단순한 웃음도 예술적으로 보인다.

 


▣ 길에서 만난 작은 연주회



비엔나 중심지는 북적대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다.
마네킹인줄 알고 손을 댔다가 진짜 사람인 것을 알고 놀라는 일은 다반사며 수준 높은 공연을 공짜로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
나름 음악에 대한 조예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지 못하는 악기들과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기구들이 멋진 악기가 되어 보여주는 작은 공연들은 진한 여운이 남는 문화적 충격이다.




여기에다 한 꼬마의 댄스 공연이 그 흥을 더해준다.
작은 녀석이 엄마 앞에서 엉덩이를 흔들며 웃더니, 갑자기 연주자들의 뒤로 뛰어가 그 곳에서 더 큰 몸짓을 하기 시작한다.
이내 관람객들의 눈길은 연주자들에게서 꼬마에게로 옮겨지고 작은 웃음소리와 환호가 서서히 커진다.
이런 시선의 변화가 연주자들은 섭섭하게 느낄만도 한데 오히려 더 흥을 내어 연주해 준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가 되어갔다.

 


▣ 내게 남겨진 또 하나의 인연



'조금 더 많이...'라는 생각이 어느 정도 지쳐갈 무렵, 어설픈 한국어로 말을 걸어온다. "안녕하세요?"
분명 외국인인데 한국어를 한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아무말도 못하고 쳐다보자 다시 한번 웃으며 말한다. 
"어디를 찾고 있나요? 내가 가르쳐줘요"
어설프긴 하지만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왠지 한국말로 하면 못 알아들을까봐 손가락으로 지도를 가르치며 '여기 어떻게 가야하죠?'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니 내 맘을 알아차렸나보다. 
"따라와요. 같이가요."
순간 '이 사람을 믿고 따라가야 할까? 아님 괜찮다고하고 계속 헤매야할까?'
많은 생각들이 머릿 속을 휘젖고 있는데 이런 내마음도 알아들었나보다. 
"나 괜찮아요. 이상한 사람 아녜요."라고 해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따라 나섰다.


여행길에서 처음으로 만난 새로운 인연. 이렇게 페리 아저씨를 만났다.
한참 길을 가다가 잠시 쉬었다 가자고 한다. 그러면서 주섬주섬 가방에서 사진과 편지들을 꺼낸다. 알고보니 페리 아저씨는 한국 애찬론자이다.
비엔나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페리 아저씨는 한국 관광객들을 태우고 다니면서 한국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2년 전엔 한국 방문까지 했었단다.
그때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사진을 보며 찬찬히 설명한다. 배낭 여행온 대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새삼 그가 젊게 사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사이에 언어의 벽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렇다고 페리 아저씨의 한국어가 유창한 것도, 내가 영어에 유창한 것도 아니었지만 눈 빛으로, 마음으로 이해되는 것 같았다.

'아~ 그래서 여행은 사람이라고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진짜 여행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출발때 공항에서 가졌던 설레임으로 마음이 다시 붕~ 뜬다.
사실 이날의 일정은 그 뒤로도 많았지만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 더 끌렸었나보다. 모든 것을 포기해버렸으니.
마음이 따뜻한 페리 아저씨는 계속해서 뭔가를 사주려고 했고, 덕분에 노천까페에서 시원한 맥주도 한잔하고, 커다란 피자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게는 콜라 한잔을 살 수 있는 기회밖에 주지 않았다. 이렇게 한국인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자기에겐 큰 기쁨이라고...
택시 운전을 쉬는 날엔 항상 관광지를 찾아 한국인들을 찾아다닌단다.
그것이 페리 아저씨가 한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해 듣는 내 맘이 짠해진다. 
우리나라에 대해 이런 마음을 가져준다는 것이 고맙기 그지 없다.
비록 반나절의 만남이었지만 마음 깊이 감사함이 남는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내가 한국에 돌아오는 날을 어찌 기억했는지 공항에서 돌아오는 리무진에서 페리 아저씨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나서도 몇 번의 전화통화를 했는데... 여행때 느끼지 못한 언어의 장벽을 그제야 느끼게 된다.
바디랭귀지의 엄청난 위력을 느끼게 된 거지. 이제는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답답하면 그냥 웃어버린다.
이렇게 조금씩 여행의 진가를 알아간다. 그리고 그 매력에 빠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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