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시마는 2곳의 항구가 있지만 다카마쓰에서 훼리를 타면 미야노우라항을 접하게 된다. 항구에 내려선 사람들은 한결같이 항구 저편에 있는 베네세하우스나 지중미술관으로 향하지만 항구주변만 잘 살피더라도 아쉬움이 없는 나오시마 여행이 될 수 있다. 일본여행의 참 재미는 작은 골목길에서 시작되니 말이다.
나오시마의 지중미술관, 이우환미술관, 베넷세하우스가 1차적 목적지라 하더라도 빠짐없이 발길이 향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나오시마 센토 아이러브유(直島銭湯 I♡湯)다. 이름도 다채로운 온천들이 지도 곳곳에 가득한 일본에서 동네 목욕탕이라는 시시한 이름이 명소가 되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함께했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보고 간 사진들에 비해 작은 규모에 깜짝 놀란 것이 I♡湯와의 첫 대면이었다.
작년(2013년) 한국에서 전시회를 가졌던 신로 오타케(Shinro Ohtake)의 작품이다. 그의 이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수식어를 찾기 힘들만큼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작가이다. 나오시마에서는 아이러브유 목욕탕도 그렇지만 집프로젝트나 해변 조각품들 사이에서도 그의 작품을 찾을 수 있다. 건물전체가 이루어진 모습이 조화로운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색한 조합이라는 생각도 든다 싶었는데 그의 작품들 가운데 주를 이루는 것이 콜라주란다.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지면서 I♡湯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I♡湯는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 대중 목욕탕이다(매주 월요일 휴무).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겉모양과는 확연히 다른 실내를 한껏 체험해보고 싶었지만 오픈 시간이 오후 2시라 좁은 유리창으로 들여다보는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실내의 모습은 3평도 채 안되 보이는 목욕탕 입구일 뿐이지만 그것으로나마 아쉬움을 달래본다.
목욕탕 옆으로 난 골목으로 빠져 나오니 NaoPAM이라는 이름이 붙은 요상한 목조건물이 나온다. 박물관을 주테마로 하고 있지만 기념품샵과 식당을 겸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 역시 오후부터(오후 1시) 오픈이라 단잠에 빠져 있지만 일단 보여지는 비주얼만으로도 범상치 않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섬세한 손길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전해진다.
전형적인 일본식 아트갤러리에서 거침없이 사진만 찍어대고 나온다.
박물관 NaoPAM에서 고개만 살짝 돌리면 보이는 곳에 007박물관이 있다. 하코네의 어린왕자 박물관도 그렇고, 나오시마의 007박물관도 그렇고, 다소 생뚱맞아 보이는 박물관들을 일본에서 간간히 만날 수 있다. 억지 장삿속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테마를 중심으로 이런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내겐 한없이 부럽게만 보인다.
007박물관은 나오시마에서 영화 007을 촬영했으면 하는 바램에서 만든 007 공간이다.
아무런 인기척이 없어 이곳 역시 오후 오픈인가보다 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들어와서 구경하라고 손짓을 하셨다. 들어가보니 오직 007영화만을 위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제임스 본드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The Man with the Red Tattoo(Raymond Benson)]라는 소설에서처럼 나오시마가 007영화의 배경이 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곳이다.
50년이 넘는 시간동안 20편이 훨씬 넘는 영화가 나왔으니 연령에 상관없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007을 알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사실 007시리즈 중 본 영화가 몇 편 안되기 때문에 이곳에 있는 영화관련 자료들이 거의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곳을 이룬 사람의 열정은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007영화들의 포스터를 보며 아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재미난 시간이 된다.
오후에 방문했다면 더욱 알차게 볼 수 있었을 미야노우라 지구였지만 나오시마에서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이렇게 둘러본 시간도 내겐 참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얻은 좋은 것이 있다면 '포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워낙에 미련이 많은 소심한 성격을 가졌기에 포기를 해도 마음의 한쪽 끈은 여전히 그곳에 두고 왔던 나였는데 포기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것도 없다는 진리를 여행에서 다시금 찾게되었다는게 내겐 참 좋은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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