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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cious Memories/Travel Essay

로마의 역사가 시작되는 지점, 포로 로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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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통해 내려가면 포로 로마노, 즉 로마 공화정으로 향하게 된다. 공화정(Foro)은 로마제국 당시 공공의 영역으로 시민들의 기본 생활 근거지였다. 캄피톨리노 언덕과 팔라티노 언덕 사이에 위치해 정치, 경제, 종교의 중심지로 화려한 꽃을 피웠던 곳이다. 말하자면 로마의 명동이고, 동성로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팔라티노 언덕보다 좀 더 다양한 모습들과 큰 대로들을 볼 수 있다. 주변의 언덕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지형에 속하는 이곳은 원래 빗물이 흘러내리는 늪지였다고 하는데 하수시설을 하면서 공공시설이 생겨났다. 팔라티노 언덕에 있는 집에서 휴식과 여유를 즐긴 귀족들은 낮동안은 포로 로마노를 오가며 정치를 하고, 자신의 입지를 다져갔던 것이다.

 

 

 

 

앞쪽의 흰건물과 종탑은 산타 프란체스카 로마나 성당으로 지금은 작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성당 뒤쪽으로는 비너스와 로마 신전이 있다. 비너스와 로마 신전은 하드리아누스 황제때 설계되었다고 하는데 다른 곳들보다 비교적 중요도가 떨어지나? 알려진 이야기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아래로 내려와보니 멀리 베네치아 광장의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까지 보인다. 이곳에서 보니 새하얗고 으리으리한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 생뚱맞다는 로마사람들의 말이 충분히 이해간다.

 

 

 

 

"원로원과 로마시민이 신(神)인 티투스에게 바친다."


포로 로마노 안에는 몇 개의 개선문이 있다. 위에 보이는 것은 콜로세움 가까이에 있는 티투스 개선문으로 로마에 있는 개선문들 가운데에서 가장 오래된 개선문이라 한다. 서기 70년 티투스 황제가 예루살렘을 파괴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가 죽고난 뒤 원로원과 시민들이 세웠는데(81년) 개선문 내벽에 그때의 모습이 부조조각으로 새겨져 있다. 규모면에서야 파리에 있는 나폴레옹 개선문이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에 비할 수 없지만 의미의 무게는 그들 못지 않다.

 

 

 

 

높은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는 또하나의 개선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은 가까이에서 봐야 그 중후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멀리서 봤을 때와는 상당히 다른 위엄있는 모습을 가까이에 이르러야 드러내기 때문이다. 포로 로마노는 발굴이전엔 흙으로 덮여있었던 곳이라는데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만이 지상으로 반쯤 드러나 있어 이곳에서 부터 발굴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네로황제 이후 굉장한 혼란을 겪었던 로마에서 군대의 세력을 안고 황제로 올라선 사람이 세베루스이다. 그래서인지 탁월한 군사지휘력을 가졌다고 전해지는데 황제와 그의 아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 이 개선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아들(카라칼라)은 자신의 근위군 사령관에게 살해당했다. 그도 그럴것이 동생(제타)과 함께 공동통치를 해오던 그가 1년이 지나고 난뒤 가차없이 동생을 죽이고 단독 권력을 누렸다. 심지어 개선문에 새겨진 동생의 이름까지 지웠다하니 그런 만행을 하늘이 보았다면 어찌 그 권력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었겠는가. 독일 베를린에 있는 황제궁 정문 아치가 이 개선문을 모방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유럽의 다른 곳들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이 개선문이다.

 

 

 

 

 


남아있는 신전들은 대개 앞면만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나머지는 거의 무너져버렸다. 아마도 기독교가 로마에 자리하기 시작하면서 의도적으로 무너뜨린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그나마 안토니누스와 파우스티나 신전은 그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편인데 11세기 즈음에 와서 로렌조 인 미란다 성당으로 개축되었다. 불의 여신에게 바쳐진 베스타 신전은 미네르바 여신의 형상 등 트로이 등지에서 가져온 유물을 보관했던 곳인데 이 유물들을 밝히는 성화가 있어 그것을 지키는 것이 당시에 큰 미션이었단다. 성화가 꺼지는 날에 로마에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설이 있어 왕국의 존재여부가 그 성화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 성화를 지키는 사람으로 귀족 가문에서 선발된 처녀들을 뽑아 신전 뒤에 있는 처녀제관들의 집에서 생활하게 했다. 불이 꺼지거나 순결을 잃는 경우 생매장과 같은 엄한 벌을 내렸다고 한다. 신전과 제관의 집은 로마 최초의 왕궁에 속하는 곳이다. 로물루스 신전은 막센티우스 황제의 아들인 로물루스를 위해 세운 곳으로 4세기에 만든 청동문이 아직 남아있는데 지금도 고대 열쇠로 잠그고 여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열쇠가 아닐까... ㅎㅎ

 

 

 

 

 

 

포로 로마노의 메인 로드인 비아 사크라로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길 오른쪽은 바실리카 줄리아로 기원전 1세기에 만들어진 시저 황제의 법정이다. 비아 사크라는 그 때 그 모습으로 아직까지 남아 있다.

 

 

 

 

비아 사크라를 따라 끝까지 오면 기원전 498년에 세워진 '농사의 신' 사투르노에게 바친 사투르노 신전을 볼 수 있고, 그 오른쪽에는 서기 81년에 세운 베스파지아노 신전이 있는데 두 곳 다 기둥만이 남아있다. 베스파지아노 신전의 남아있는 세개의 기둥은 코린트식이라고 하는데 확실히 어떤 형태인지는 모르겠다. 로마는 정말이지 공부하지 않고는 둘러보기가 너무나 힘든 곳인 것 같다. 중고등학교 때 1년을 정해 로마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 ^^ 완전히 생생한 현장 교육인데... ㅎㅎ 그러기 전에는 경주와 부여를 먼저 거쳐야겠구나. 중앙에 난 길로 올라가면 캄피돌리오 언덕으로 갈 수 있다.

 

 

 


 

포로 로마노 안에서 작은 유물전이 열리고 있었다. 대부분이 조각상들이고 부조조각으로 포로 로마노에 있는 건물들에서 가져온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이 깨진 것도 있고, 온전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들도 있다.

 

 

 

 

 이렇게 포로 로마노와도 인사한다. 일정의 변화로 갑자기 찾은 곳이지만 그 덕분에 과거의 로마를 만났다. 지금까지는 영화에서 보던 모습들을 그대로 떠올릴 수만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혼자서도 그 시대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생생하게...

 

 

 

 

 

예전의 모습을 상당히 완벽하게 간직하고 있는 이곳은 트라이아노 시장이다. 트라이아노 공회장과 함께 있는 이곳은 포로 로마노의 맞은편에 있다. 건물이 특이해서인지 콜로세움을 보기 위해 이곳에 처음 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곳이다. 지금으로 치자면 대형마트 격이 될라나. 약 150개의 상점들이 이곳에 있었다고 하는데 야채와 과일부터 시작해서 실크와 생선, 꽃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종류의 물건들을 판매한 곳이다. 때때로 이곳에서 무료로 곡물을 나눠주기도 했다는데 기근이 들었을 때 로마시민들이 담합하여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일종의 예방책으로 사용했던 공화정의 관습이었단다. 버스 정류소가 맞은편에 있어 한동안 바라보고 서 있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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