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선물을 받았을 때의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선물에 기뻐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선물이 예상치 못했던 선물이라면 그 기쁨은 2배, 3배가 되어 언제까지나 기억에 남는 법이다. 재팬인사이드와 여성중앙이 내게 준 선물, 바로 일본 후쿠시마 여행이 내게는 기쁨 이상의 의미를 주는 선물이 되었다. 새로운 곳을 여행할 수 있다는 기쁨에, 멀리서 생활하고 있는 동생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는 타이틀까지 더하니 이야말로 금상첨화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우리 (울랄라 시스터즈-1)의 후쿠시마 여행은 시작되었다.
일본은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제일 가까운 이국임에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아는 바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리상으로는 가장 가깝지만, 심리적 거리감은 가장 먼곳이 일본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심리적 거리감이 멀게 된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번 여행은 그런 고정관념 없이 있는 그대로의 일본을 느껴보기로 했다. 누군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아는 만큼 많이 볼 수 있겠지만 그만큼 편견이 생긴다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편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일본을 느끼기 위해 아무런 장치없이 후쿠시마로 뛰어든다.
후쿠시마 여행의 첫번째 테마: "역사를 거슬러 가다"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은 대개 내가 가는 곳에 어떤 볼거리가 있는지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대표적인 건축물을 찾아보고, 박물관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광할한 자연을 통해 이국적인 정서를 느끼고자 한다. 그런 목적을 가진 이가 있다면 주저없이 후쿠시마를 추천해줄 수 있을 듯 하다. 후쿠시마의 산새는 우리네 강원도와 많이 닮은듯 하지만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익숙한 산새에 조금 지루한 감을 느낄즈음 우리를 실은 버스가 어딘가에서 멈춘다. 버스에서 내리니 지금까지의 광경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곳이 눈에 띈다. 바로 오우치주쿠이다.
물론 오우치주쿠의 볼거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갖가지 기념품들과 토산품들이 이곳이 다른 세상임을 말해주고 있으며, 네기소바 음식점에서 그 정점에 이르게 된다. 메밀소바에 장렬하게 꽂혀있는 대파 한 줄기는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음식문화를 눈과 입으로 맛볼 수 있게 한다. 눈 돌리는 곳마다 새로운 볼거리며, 오감을 즐겁게 하는 이 곳은 살아있는 박물관이 된다. 그저 투명 유리관에 장식되어 눈으로만 볼 수 있게 만든 박물관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제는 전통 료칸으로 묵은 피로를 날려버릴 차례다. 료칸으로 향하던 중 일본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다던 초가지붕을 한 유노카미 온천역에 잠시 드른다. 아이즈철도를 통해 오우치주쿠와 주변 온천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 역에서 정차해야 한다. 분위기는 시골의 작은 간이역이지만 많은 이용객들의 사연들이 쌓여있어서인지 고풍스럽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친절하게도 역사 내에는 책들과 화롯불이 마련되어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뭐니뭐니해도 일본은 온천욕을 빼놓고서는 이야기할 수가 없다. 그것이 전통 온천욕을 경험할 수 있는 유서있는 료칸이라면 두말할 나위 없다. 우리가 도착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연세 지긋한 오카미상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준다. 그저 하룻밤 묵고 가는 나그네일 뿐인데, 어쩌면 다시 볼 수도 없을 사람인데도 손자를 맞는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맞이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다.
짐을 풀고 색색의 화려한 유카타를 골라입고 전통식을 맛보러 가는데 로비에서 우리를 불러세우고는 옷 매무새를 고쳐주신다. 한복의 미가 긴 옷고름에 있다면 유카타의 미는 허리장식(정식 명칭을 모르겠다)에 있는 것 같다. 정갈하게 갖춰입고,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그득하게 쌓인 전통식도 맛본다. 이름을 알 수도 없는 음식들이 순서에 따라 연달아 나오고, 색과 향이 서로 어우러져 보는 이를 자극한다. 거기다 지극한 대접까지 따르니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드디어 찾게된 욕탕. 알듯 모를 듯한 알싸한 향기가 코 끝을 건드리니 내가 일본의 온천탕에 앉아있는 것이 사실임을 그제야 받아들이게 된다. 자고로 머리는 차게, 몸은 따뜻하게 하라고 했던가. 그렇담 겨울에 즐기는 노천 온천탕만큼 좋은 것은 없는 듯 하다. 후쿠시마가 자랑하는 순백색의 눈을 바라보며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맞는 시원한 바람은 절로 노래가 나오게 한다. 몸이 스르르 풀리면서 새로운 것에 대한 경계심마저 함께 풀려 버린다. 이렇게 우리는 완전히 일본 속에 동화되어 가는 것 같다. 이쯤이면 일본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이번 여행의 모토도 반은 이룬 셈인가? 료칸에서 준비한 작은 공연을 마지막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아침이 밝자 또 하나의 역사적 장소인 츠루가성으로 향한다.
아이즈 지방을 소개할 때 빠질 수 없는 역사의 보고인 츠루가성은 일본 교과서에서도 자주 언급된단다. 일본 어린이들이 후쿠시마는 잘 몰라도 츠루가성은 안다고 하니 그 명성을 알 수 있다. 아이즈와카마츠 시내에서 10여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데 날개를 펼치는 것 같은 겹겹의 누각들이 메이저유신 당시 이 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소년들의 절개를 보여주는 것 같다. 츠루가성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다고 하지만 벚꽃으로 만발한 봄과 눈꽃으로 가득한 지금이 제격일 듯 하다.
후쿠시마 여행의 두번째 테마: "일본의 맛을 찾아간다"
좋은 것들을 구경하면 할 수록 마음은 채워지지만 비워지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위장의 공허함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여행에서 그 지역의 맛을 보지 않고 돌아오는 것은 반쪽짜리 여행이라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한 것은 기타카타 라면을 맛보는 것이다.
아이즈와카마츠에서 전차를 타고 기타카타 역에 내리면 양 옆으로 길게 뻗은 라면의 먹자 골목이 나온다. 너무나 다채로운 라면집들이 즐비해있어, 미리 계획해 놓지 않고 가게되면 '어느 집을 가야할까' 고민하다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생기니 반드시 친절한 라면맵(map)을 통해 적당한 곳을 골라놓아야 한다.
기타카타라면의 특징은 간장으로 맛을 낸 국물과 꼬불꼬불한 면 그리고 국물에 띄워져있는 삼겹살로 종합해 볼 수 있다. 특히 우리가 찾은 곳은 직화구이를 한 삼겹살을 내준다니 생각만으로 입 안에 군침이 가득하다.
국물을 들이키면 "국물이 끝내줘요~"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파와 숙주나물, 간장의 절묘한 맛이 시원함을 더하고, 꼬불꼬불하면서도 탄력있는 면이 씹는 즐거움까지 준다. 물론 직화구이 삼겹살도 없으면 섭섭하다. 기타카타 라면이 일본 3대 라면으로 당당히 자리잡은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라면이 요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느끼며, 국물의 여운을 혀끝에 두고 아쉽게 돌아나온다.
이것으로 후쿠시마 여행을 종합해보려 한다. 미처 언급하지 못했던 반다이산의 절경이며, 일본 천엔 지폐의 주인공인 노구치 히데요의 고장 아이즈와카츠 시내 풍경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아이즈의 마스코트 아카베코까지.
아무것도 모른채 뛰어든 나는 후쿠시마를 이렇게 즐겼다. 곳곳에 산재해 있는 문화적 유산이며, 일본의 맛, 거기에 광활한 산과 호수가 서로 어우러져 보여주는 자연의 미까지. 어디하나 버릴 것 없는 후쿠시마를 보고 체험하며 돌아왔다.
사람들은 낯설은 곳을 볼 때 약간의 환상과 함께 두려움도 가진다. 물론 앞으로 벌어질 우리의 앞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대처해야할지를 걱정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여행에서는 두려움 보다는 환상을 조금 더 크게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런 우리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여행지는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큰 선물을 줄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2010년의 시작에 나는 너무나 거대한 선물을 받았다. 지금도 일본을 떠올리면 연달아 나올 수 있는 연관검색어 후쿠시마가 나를 즐겁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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