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턴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한껏 향유하고 본래의 목적지였던 이스트본으로 향했다. 이스트본은 최종 목적지였지만 버스에 올라타기까지 실로 엄청난(?) 결단력이 필요했다. 브라이턴에 너무 젖어있었는지 시간은 무지하게 지나버렸고, 저녁에 예약해놓은 저녁식사와 뮤지컬 공연시간이 우리 일정을 잡아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에 오기 전부터 고대했던 서식스 해안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거금을 투자한 3코스의 디너를 포기할 것인가...
먹는 것 앞에서는 언제나 작아지는 나도 이 여행유전자를 이겨낼 순 없었나 보다.
거금(1인당 4만원 상당의 3코스 디너)을 투자한 저녁식사를 포기하고 차비를 들여가면서 이스트본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으니 말이다.
※ 브라이턴에서 이스트본 가는 방법
브라이턴역 또는 해안가 어디에서든 12번(12A, 12X, N12(night bus) 등) 버스나 13X 버스를 타면 이스트본까지 간다. 대략 1시간 정도 걸림.
단, 이스트본이 목적지가 아니라 서식스 해안의 모습이 보고 싶은 사람은 13X를 타는 것이 좋다. 또한 서식스 해안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다는 Seven Sisters, Beachy Head 등으로 가려면 반드시 13X를 타야 한다. 서식스 해안의 모습은 Seaford Head에서 부터 Beachy Head까지 이어진다. 이 구간은 도보여행도 가능하다.
(12번을 타고 이스트본까지 간 우리는 다시 13X를 타고 Beachy Head까지 나와야 했다. ㅠ.ㅠ)
버스는 매일 1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일요일은 15분, 저녁시간은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버스 노선도 및 시간은 www.buses.co.uk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래 지도 출처 역시 그곳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지도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으니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신다. 무작정 사진을 보여드리며 여길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니 12번 버스를 타면 된다고, 자기도 그 버스를 타고 가니까 자기를 따라서 버스를 타라고 하신다.
일단 영국 사람들은 적어도 겉으로는 굉장히 친절하다(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무의식에 쌓여있는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까진 알아차릴 수 없으니 그저 그 친절함만이라도 여행할 때엔 엄청 감사히 느껴진다. ^^
브라이턴 부두를 조금만 벗어나도 이런 서식스 해안의 모습을 잠시나마 볼 수 있다.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대신해도 좋을 것 같다. 조금씩 달라져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언제 내가 바랬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기대하는 것도 여행의 맛이다.
영국의 빨간 버스는 심장을 쿵쾅쿵쾅 뛰게 한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런던의 명물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빨간 버스가 영국의 트레이드 마크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잘 찍었으면 예술적인 한 장이 나왔을 법도 한데... 치사하지만 이럴 땐 비를 탓하는 수 밖에 없다. ㅎㅎ
사실 뭐 거짓말도 아니지. 계속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뿌려댔으니까...
엄청나게 반가워했을 현대자동차 대리점도 이렇게 뿌옇게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이렇게 퍼부어대던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진정한 영국인들이었다.
꼬마녀석들도 결코 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람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자연이 아니니까.
자연은 언제까지나 함께 살아가야 하는 거니까.
지금부터 펼쳐진 초원의 풍경은 덤으로 만나게 된 환상같은 영국의 초원이다.
아니, 덤이라 말하기엔 너무 아까운 모습이지. 주인공이었던 해안을 두번째로 몰아내고 내 마음을 앗아갔던 초원의 풍경이다.
맘 같아선 버스를 박차고 내려 저 초원을 달리고 싶건만... 너와 나의 사이를 가로막는 것이 오늘은 너무 많구나.
주구장창 토해내는 빗줄기 사이로 우울해지는 내 마음을 위로해주었던 초원의 풍경,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
비때문에 가졌던 아쉬움은 모두 날아가버리고 지금 내 맘은 그저 저 풍경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 뿐이다.
우리를 내려놓고 홀연히 떠나버린 빨간 버스.
사람이 지나간 흔적 조차 보이지 않는 이곳에 기사아저씨는 웃으며 우리를 내려주었다.
쏟아지는 비를 한번, 우리를 한번 이렇게 번갈아 보면서...
저 멀리 해안은 안개 속으로~ 아님 빗속으로~
아쉽지만, 정말 아쉽지만 버스에서 내려 30분도 못견디고 다시 돌아오는 버스에 올라타야 했다.
그 버스를 놓쳐버리면 식사 뿐 아니라 뮤지컬까지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으니까.
도저히 뮤지컬까지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포기한다해도 더 이상 볼 수 있는 풍경도 없을테니 괜히 억지부릴 필요도 없을 것 같고.
언제나 돌아오며 "내가 이곳을 다시 올 일이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곳에선 "반드시, 꼭 다시한번 내 너를 찾아오리라"하고 다짐했다.
진정으로...
아~ 그런데 이것 때문에 놓친 3코스 디너가 자꾸 눈 앞에 아른거린다. 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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