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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이야기(Korea)/경상도(Gyeongsangdo)

자연을 화폭에 담아 걸어둔 곳, 병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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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조선시대 5대 서원인 병산서원을 찾았다. 도산서원도 그렇고, 병산서원도 그렇고... 학문을 닦는 선비들에게는 유혹의 요소가 너무나 많은 듯 한데 이곳에서 공부하여 정치의 길로 나갔다고 하니 나와는 학문에 임하는 자세부터 다른가 보다.

고요하니 풍겨나오는 분위기는 학문에 임하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너무나 빼어난 경관이 자꾸만 시선을 사로잡아 책보다는 곁눈질이 더 많아질 듯 하다. 나무를 곱게 다듬어 만든 계단이 맘에 들어 살짝 올라서고 싶은데 안된단다.

산들 피어있는 꽃의 아름다움도 나를 유혹하고

오래되어 색이 바랜 처마, 현판의 결도 나를 유혹한다.

병산서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건축물로 꼽히는 병산서원은 류성룡선생과 그의 셋째아들 류진을 배향한 서원이다. 본래 안동의 다른 지역에 서당이 있었는데 이를 옮기면서 류성룡선생이 이곳을 추천했다고 한다. 빼어난 자연이 병품을 친듯하다고 그 이름을 '병산'이라 불렀다. 임진왜란 때에 화재가 났지만 다시 중건했고, 재건시 사당을 함께 세워 서원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에도 살아남은 서원 중 하나로 지금까지도 1년에 두번, 류성룡선생과 류진선생을 기리는 제시를 지낸다고 한다.

 

<입교당>

한 폭의 병풍을 연상시키는 만대루를 지나오면 보이는 메인건물이 입교당이다. 서원의 가장 가운데 위치해 있는 만큼 서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으로 친다면 교실 정도?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라는 뜻을 담아 서원 교육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다.

<만대루>

많은 사람들이 '병산서원'하면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물이 입교당보다는 만대루를 떠올리게 된다. 병풍에 새겨진 그림이라는 것도 이 만대루가 폭을 나누는 기준이 되어 위로는 산과 아래로는 낙동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주로 서원에서 치뤄지는 행사를 진행했던 곳으로 지금의 강당과 같다. 사방이 훤히 트여있어 동서남북 어디든 거스름없이 바라볼 수 있다. 주안상 한상 차려놓고 가야금을 뜯으며 시를 한편 읊으면 금상첨화인 곳이다. 입교당 중앙에서 바라보는 만대루의 풍경이 일품이다.

<동재, 서재>

서원생들의 기숙사가 되었던 곳. 만대루와 입교당 사이에 양쪽으로 된 건물이다.

<존덕사 입구>

준덕사는 병산서원의 가장 위쪽에 위치하고 있는 사당으로 류성룡선생과 류진선생의 위패가 모셔진 신성한 곳이다. 굳게 걸어잠궈 들어갈 수 없어 입구만 보고 돌아와야 했다. 1년에 2번 치뤄지는 제사가 이곳에서 진행된다.

<장판각>

이곳은 책을 인쇄할 때 사용했던 목판을 보관하는 곳. 그 시대 인쇄 양식을 알 수 있는 곳.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하회마을보다 병산서원이 가진 답사적 가치가 더 크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역사적 의의도 크지만 아름다운 건물의 양식이 한국건축사의 백미라 칭해도 좋을만큼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란다. 정말이지 모난듯, 울퉁불퉁하면서도 서로 어우러지는 모습이 건축에 대해선 문외한이지만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모습이다.
입구 다락방(?)에 얹어진 가마가 눈에 띄어 찍어본 사진. 드라마에서 보던 대감님들의 가마다.

앞마당처럼 넓게 펼쳐진 낙동강 줄기와 모래사장, 그리고 위엄을 가진 산줄기. 풍수상으로는 일반 가정집이 들어서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라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아 공부하기엔 더 없이 좋았던 곳이라는 병산서원. 글쎄... 이곳을 걸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맘을 빼앗길 것 같은데... ㅎㅎ

돌아오는 길, 석양마저도 내 마음을 빼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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