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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마을 이야기(Europe)/이탈리아(Italy)

[로마] 시에스타(Siesta)로 못 볼뻔한 예수님 수난의 흔적-스칼라 산타 성당, 산타 크로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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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라 산타(Scala Santa)성당>

앞서 라테라노 대성전을 먼저 소개했지만 실제 여정에서는 스칼라 산타 성당과 성 십자가 성당을 먼저 다녀왔다. 다만 문앞까지 밖에 못갔을 뿐이고... 오늘, 내일 일정의 틀을 잡아주신 분의 충고를 100% 존중해서 이곳까지 당도했는데 충고는 완벽했지만 로마의 교통은 그 충고를 수용할만큼 완벽하지 못했다. 처음 카타콤베를 가는 것부터 계획을 흐트렸던 로마의 버스가 이곳에서 환상적인(?) 마무리를 해 주었다.
말로는 수없이 들었지만 운이 좋게도 잘 피해다녔는데 여기서 완벽하게 맞닥뜨리게 되었다. 시에스타... 가는 족족 시에스타에 걸려 코 앞에서 문이 닫히는 걸 보고나니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묵직한 짜증과 화가 자꾸만 올라온다. 망할놈의 시에스타... 수만번을 되뇌이면서 라테라노 대성전을 잠시 둘러보고 고민에 빠졌다. 이곳을 떠날 것인가, 기다렸다가 보고 갈 것인가. 이럴때마다 고개를 드는 나의 오기... 햇빛이 쨍쨍한 성당 앞마당에 자리 깔고 앉았다. 보고야 말 것이다. 시에스타가 나를 막아도 결국은 보고 말 것이다. ㅎㅎ 그래서 결국은 보았다.

시에스타(Siesta): 원래 라틴어 hora sexta("여섯번째 시간")에서 유래한 말로 '동틀 녘부터 정오 사이인 6시간이 지나 잠시 쉰다(위키백과사전)'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체로 날씨가 따뜻한 나라에 남아있는 풍습(?) 또는 습관(?)으로 점심때를 전후하여 휴식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지금은 없어진 곳이 많지만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그리스, 브라질, 몰타 등에서는 아직 남아있는 풍습이기도 하다. 짧게는 1시간 30분, 길게는 3시간까지도 되는 시간을 휴식하게 되는데 이때는 상점이나 박물관, 성당 등도 문을 닫아 걸고 휴식을 취한다. 여행자에게는 작은 불편함이 될 수 있는 시에스타는 시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각 장소마다 다르기 때문에 미리 확인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스칼라 산타성당은 우리말로는 성 계단(scala)성당이란 뜻이다. 이렇게 이름지어진 이유는 이 성당에 재판을 위해 빌라도 앞으로 나가면서 예수님이 밟고 지나갔던 계단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예루살렘에 있었지만 헤레나 황후(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모)가 라테라노 궁전으로 가져왔고, 1589년 교황 식스투스 5세때 성당을 건설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다시 가져왔다고 한다. 화려한 모자이크가 드러난게 '조금 다르다'라고 생각했는데 원래 식당의 벽면이란다. 지진으로 허물어진 교황 레오3세의 식당이었다. 규모는 다른 곳보다 작아보이지만 역사적, 종교적 예술품들이 많아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당들 중 하나이다. 16세기 이전까지는 성지순례를 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교황의 축복을 받았다고 한다.

<계단을 오르는 순례자들>

시에스타가 끝나기가 무섭게 많은 사람들이 성당 입구로 마구 들이닥쳤다. 바로 이 계단이 헤레나 성녀가 가져왔다는 계단이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하며 이 계단은 오로지 무릎으로만 오를 수 있다. 총 28개의 계단이 나무로 덮여있는데 반질반질하게 빛나는 나무결과 움푹 패인 모습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올랐으며 고통을 체험했을지 나의 무릎을 타고 고스란히 전달되는 듯 했다. 웃음을 머금으며 시작했던 계단 순례는 중간도 못가서 일그러졌고,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으로 그 때의 그 고통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내가 가진 무거운 자만심과 육중한 이기심은 오롯이 나만의 것인데도 이렇게 감당하기 힘든데 타인의 그것들을 지고 가셨을 그분의 고통을 생각하니 떨궈진 고개를 도저히 들 수가 없다.

<성당입구 조각상>

왼쪽은 <군중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는 빌라도>, 오른쪽은 <유다의 입맞춤>이다. 1854년 야코메티의 작품으로 조각상들을 보니 수난 당시의 모습이 더욱 강하게 그려진다.


힘들게 계단을 올라간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계단을 오르다보면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기도를 하게 된다. 어떤 힘이 기도로 이끄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가진 마음은 다들 비슷한 것 같다. 나도 여기서 기도하고 돌아나왔다.
이 옆에 위치한 '거룩한 성소(Sancta Sanctorum)에는 천사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예수님의 초상화가 있다. 귀한 작품인만큼 가까이에서 볼 수는 없고 멀리 떨어진 철창 밖에서 봐야해 자세히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너무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ㅠ.ㅠ

이제 맞은편에 있는 성 십자가 성당으로 향한다.

<성 십자가 성당(Basilica di SantaCroce in Gerusalemme)>

성 십자가 성당도 시에스타에 걸려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가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로마의 4대 성당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7대 성당 중 하나로 결혼식 장소로 아주 인기가 높은 성당이다. 결혼식이 많을 때엔 하루에 4건도 진행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성당이 유명한 것은 결혼식보다 예수님 수난때의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름이 '성 십자가'인 것도 예수님이 수난당할 때 사용되었던 십자가의 조각들이 이곳에 있어 그리 지어진 것이다.


성당 앞마당의 작은 분수대와 성당 뒷뜰로 연결되는 철문이다. 철문 사이사이에는 화려한 색을 가진 돌? 유리? 여튼... 장식품들로 꾸며져있는데 이 문이 상당히 맘에 들었다. 그래서 한참 앉아서 쳐다봤다는... ㅎㅎ 심지어 자동문이기까지 하다.

<성 십자가 성당의 내부 & 결혼식>

이 성당이 결혼식으로 유명하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8월 4일(수), 평일 오후였는데도 결혼식 준비가 한창이다. 외국에서 결혼식을 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가슴뛰는 일이었다. 신랑 신부가 어떤 사람일까도 궁금했지만 결혼식 하객들의 화려함도 주인공 못지 않다. 결혼은 당사자들에게도 의미있는 시간이지만 이곳에선 하객들도 함께 즐기는 축제인 것 같았다. 비록 손님이지만 그들도 마음을 다해 이쁘게 치장하고 꾸며 결혼식을 더욱 멋지게 장식한다. 반주자는 미리부터 와서 음악을 연주하고... 귀에 익은 음악을 들으니 꼭 친구결혼식에 온듯 착각하게 만든다.

<성당 천정화>

성당 천정화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로마까지 가지고 온 헤레나 황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하게 된 것은 어머니였던 헤레나 황후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이곳에 있는 많은 유물들은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떠난 헤레나 황후가 발견한 것들로 그녀가 직접 로마로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어마어마한 유적들이 보관되어 있는 이곳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첫줄 가장 오른쪽에 있는 사진이 헤레나 황후가 가져온 유적들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박았던 못, 십자가 위에 죄목으로 걸어놓은 나무조각의 한 모퉁이, 십자가의 조각들, 돌무덤과 돌기둥, 마굿간에서 찾은 돌조각 등이다. 그리고 아래사진은 십자가 나무 조각들이 들어있는 십자가와 토리노에 있는 예수님의 수의를 복사한 복사본이다. 특히 수의를 볼 때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예수님의 얼굴과 두 팔, 두 다리가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바닥에서 발을 떼기조차 힘들다.


성당전면부 위에는 여러개의 조각들이 있는데 제일 왼쪽에 십자가를 쥐고 있는 조각이 헤레나 황후의 조각상이다. 그야말로 이 성당은 헤레나 황후의 신앙심과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단지 콘스탄티누스라는 아들을 두어 성녀로 봉해졌나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산교육을 한 셈이 됐다. 기다림의 시간에 지치고, 뜨거운 햇살과 목마름에 지쳐 관심도가 낮아진 나에게 주어진 것으로는 그 의미가 너무 큰 것들이라 짜증으로 툴툴댔던 내가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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