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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여행... 내가 태어난 나라에서도 시도해보지 못했던 여행을 저 먼 곳에 있는 이탈리아에서 하는구나. 나이가 적지 않은 탓에 조금 더 비용을 지불하고(실제 지불한 것은 아니지만 본질적으로는 그런...) 탄 기차가 조용히 관상할 수 있는 의외의 즐거움을 준다.
지금은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 전시전을 하고 있는 미술관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네모난 창은 액자의 틀이 되고 바깥의 풍경들은 작품이 된다. 마치 디지털 액자를 보듯이 그림이, 또는 사진이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이 어떤 전시회에서도 볼 수 없는 다채로운 모습이다. 계속되는 여행 속에서 피로감이 쌓일만도 한데 이런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피로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니 여행이란 참 묘한 것이다.
고흐에 의해 갇혔던 해바라기들이 세상 밖으로 튀어나왔다. 고흐는 자그마치 해바라기 그림을 7점이나 그렸다고 하는데 왜 갇히고 꺾인 해바라기만 그렸을까? 툭~ 터진 공간에 있는 모습도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말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건지, 내게 손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무엇인들 어떠하리. 기분이 좋아지면 그만인 것을... 우연히 만난 하나의 풍경이 나만의 그림이 되어버렸다. 평소 좋아하는 꽃을 말하라면 해바라기는 기억 저 끝에서 떠오르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감동을 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탈리아에서 아름답기로 두번째라면 서러울 토스카나를 지나 움브리아로 넘어왔지만 움브리아 지방도 그에 뒤쳐지지 않는다. 특히 아씨시가 가까워질수록 언덕 높은 곳에 위치한 작은 도시들이 많아진다. 그런 도시들이 나오면 미술관 산책의 절정에 이르게 된다. 계획에 없는 곳이지만 훌쩍 뛰어내려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밀려온다. 안타까운건 아직 여행의 내공이 부족한지라 그 충동을 실행할 힘이 없다는 거다.
이탈리아의 도시들이 이렇게 산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는 이유!
첫번째는 산위 동네에는 아랫동네에 비해 전염병 확산이 더디다는 것이다. 때론 확산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전염병이 유행했지만 의료기술이 지금같지 않아 골머리를 앓던 중세시대에는 아주 좋은 아이디어가 되었을 것이다. 두번째는 끊임없이 침범해오는 적을 방어하기에 유리하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유명한 유럽의 성들은 대개 산 위에 있는 곳들이 많구나. 세번째는... 이건 모르겠다. 하나가 더 있었다는데 나는 이 두가지 밖에 듣지 못했으니 영 덜 떨어진건 아니네. ^^ 여튼 높은 곳에 있는 도시들이 비싸고 좋은 동네란다. 하지만 이 여행에서 만나게 되는 아름다운 도시들에 경제적 가치를 매기고 싶진 않다.
<언덕 아래에서 보는 아씨시 전경>
드디어 아씨시에 도착했다. 아직 초입이라(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아씨시는 언덕을 올라 구시가지로 가야 볼 수 있다) 2010년 우리집 달력에 있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곳도 분명히 아씨시이다. 아씨시 기차역이 있는 아랫마을은 우리나라의 면소재지 정도의 시골 작은 마을에 온 것처럼 조용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 높아보이지 않는 언덕 위로 우뚝 솟은 성당과 수도원들이 보이는 걸 보니 예전에도, 지금도 프란치스코가 살던 그 곳이 맞나보다.
역 앞에 앉아 구시가지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이곳이 아씨시임을 인증하는 사람들이 한차례 지나간다. 중간중간 수사님과 수녀님들이 보이는 그들 일행은 똑같은 옷을 입고 아씨시를 순례하는 순례객인가 보다. 청소년 같기도 하고, 청년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젊은이들이 없기로 유명한 유럽인데 이런 모습에서 이탈리아가 가진 기독교의 본산지로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이 심심찮게 보이니 말이다. 너무 신기하고 흥미롭다는 생각을 하며 보는데 이런 일행들은 자주 만나게 된다. 무슨 행사가 있나보다. 버스를 타고 올라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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