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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크루즈항>
상하이를 떠난지 대략 37시간 만에 일본땅에 당도했다. 내가 눈을 떴을 때에도 배는 바다 위를 떠다니고 있었으니 참으로 긴 항해를 한 것이다. 그렇게까지 먼 거리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 시간을 지키려 그랬나보다. 창밖으로 보이는 익숙한 모습을 보니 오랜 친구를 만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번엔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까 기대가 되기도 한다.
<일장기를 내걸은 레전드호>
기항지에 도착하면 늘 바뀌는 국기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잊지 않게 해준다. 오늘은 일본이다. 오늘부터 일본이다.
<나가사키항>
해가 떠오르니 이 작은 항구에도 활력이 생기기 시작한다. 크고 작은 배들이 바다 위에 떠 다니고, 공장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기적소리가 들리고 사람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나도 이제 기지개를 켜고 일어서야 겠다.
<크루즈 터미널 내>
크루즈 터미널에 내리니 상하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많은 서양 관광객들이 일본에 끌리는 이유를 조금 알듯도 하다. 첫번째, 어제 이미 배 안에서 입국심사를 마쳤기 때문에 줄지어 서서 기다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다(상하이에서의 기억이 더 두드러지게 하는 것 같다). 두번째, 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그들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환영해 준다. 비단 나가사키 뿐만 아니라 가고시마, 후쿠오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모노를 입은 사람, 사무라이 복장을 한 사람, 동물인형을 뒤집어 쓴 사람 등 여러가지 형태로 환영해 준다. 세번째, 어디를 가도 깨끗한 환경으로 불쾌감을 유발하지 않는다. 네번째, '더이상'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극진한 친절을 보여준다. 이러니 일본은 서양인들에게(굳이 서양인들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이면서도 극진한 대접과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는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의 여행지가 아니겠는가.
<원폭자료관 입구>
나가사키 원폭피해의 참상을 알리고, 앞으로는 절대로 되풀이되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리는 원폭 자료관의 입구이다. 2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와 다름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여전히 희망을 담은 학이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마지막 순간의 외로움이 이것으로나마 채워질 수 있다면 좋을텐데...
이상기온으로 '벚꽃이 피지 않았으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에고... 벚나무는 이미 꽃잎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만개한 벚꽃으로 뒤덮인 일본열도를 보고 싶었는데...
평화를 바라는 그들의 염원은 여전하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원폭자료관으로 내려가고 있는 사람들>
원폭자료관은 단순히 원자폭탄의 위력을 소개하고 있는 곳이 아니라 원자폭탄으로 인해 피해받은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기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괜히 안으로 들어갈 수록 마음이 더욱 조용히 내려앉는다.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 모형>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실제 크기의 모형이다. 7만명의 희생자를 만든 그 장본인이다. 이 폭탄은 땅에 떨어져 터지는 것이 아니라 땅에 닿기 이전 상공에서 터져버린다(나가사키에서도 50m상공에서 터졌다). 그리고는 버섯모양의 구름을 만들어 1차, 2차, 3차 피해가 거듭되게 한다. 그 안에서 많은 사람들은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이 그냥 그렇게 삶의 저편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전시관 풍경>
<원폭 당시 시간에서 멈춰진 시계>
자료관 입구에 당도하면 째깍째깍 시계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원폭을 알리는 카운트 다운이 생생하게 귓 속을 맴돈다. 남아있는 이런 흔적들이 너무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우라카미 성당의 참상>
원폭중심지에서 500m떨어진 곳에 위치한 우라카미 성당의 피해모습이다. 지난번 성지순례 때 방문한 우라카미 성당은 그 피해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새로운 희망으로 자리잡고 있었으며, 작년에는 주교좌 성당으로 시성식까지 무사히 마쳤다. 성모승천대축일을 앞두고 대축일 준비로 더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이다. 녹아내린 묵주와 성상들만이 그때의 모습을 증언하고 있다.
☞ 우라카미 성당의 모습
☞ 우라카미 성당의 모습
<원자폭탄으로 타버린 지폐들>
나가사키 미쯔비시 제강소 금고 속에 들어있던 지폐들인데 그을린 것인지, 타버린 것인지 모양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시커멓게 변해버렸다. 폭심지에서 900m떨어진 곳이었는데도, 금고 속에 있던 지폐들마저 이렇게 변해버렸으니 폭심지 주변의 모습은 더욱 참혹했을 것이다.
<피폭자 모습>
이 사진은 참으로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너무 충격적이라 올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참혹한 모습을 가지게 한다는 것을 다시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언제나 전쟁의 위협 속에서, 원자폭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상황에서는 남의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을 것 같다.
<나가이 다카시 박사>
무너져가고 있는 나가사키에 희망의 씨앗을 뿌린 사람이 나가이 다카시 박사이다. 원폭으로 부인과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도 못하고 헤어진 채 어린 두 남매와 함께 살아가게 되었는데 자신마저 원자병으로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우라카미 성당을 복구하고, 나가사키 시내에 1천그루의 벚나무를 희망의 상징으로 심고,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을 건립하고 돌보는 어마어마한 일들을 했다.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많은 책들을 쓰며 그 수익금으로 부모잃은 아이들을 위한 활동을 했고, 원폭의 피해를 알리고 세계평화를 부르짖었던 대단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다.
<나가이 다카시 박사의 저서들>
냉정한 듯 보이지만 너무나 따뜻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잃은 남매를 보살피고자 했던 나가이 다카시의 부모로서의 마음도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되새겨봐야 할 부분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자녀들도 부모인 나가이 다카시 박사를 너무나 존경하고 있다. 현재 나가이 다카시박사의 손자가 나가이 다카시 기념관을 운영하고 있다.
☞ 나가이 다카시 박사의 삶의 터전 여기당
☞ 나가이 다카시 박사의 삶의 터전 여기당
<원자폭탄 보유국>
이렇게 끔찍한 참상을 겪었는데도 아직까지 많은 곳에서 원자폭탄을 보유하고 있다. 어차피 만들어 놓은 것이야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뭐... 러시아와 미국, 참 대단하다. 그들이 이것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윤리관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기를 바라 뿐이다.
세계평화가 당연한 일로 더 이상 우리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그 날을 기다리며...
☞ 원폭자료관 방문기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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