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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마을 이야기(Ocean)/한중일 크루즈(cruise)

[상하이] 황제가 부럽지 않은 정원 - 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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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시장을 둘러보고 핵심 여정지, 예원(豫園)으로 향한다. 중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곳이라서인지 입구를 들어서기까지도 꽤나 시간이 걸린다. 줄지어서 천천히 예원을 향해 간다. 저기 아저씨 나를 보고 살짝 웃어줬는데 사진의 포인트가 잘못 잡혔다. 에고고~

<예원의 입구>

돌조각으로 섬세하게 만들어진 예원 입구이다. 저렇게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공이 들었을고. 입구에서부터 이곳을 만든 사람이 얼마나 정성을 들였을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특히 저 부조 조각들... 대단함을 느낀다.

<해상명원>

예원의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나오는 것이 해상명원(海上名園)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바위이다. 강택민 주석이 이곳을 방문한 기념으로 베이징에서 가지고 온 바위에 직접 글을 새겼다고 한다. 그도 방문 후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고. 근데 왜 상해라 하지 않고, 해상이라 했을까?

[예원]

예원은 명나라와 청나라 시절을 대표하는 정원으로 상하이에서는 가장 유명한 정원으로 꼽힌다. 1559년 명나라 관리였던 반윤단(판윤단)이 그의 아버지 반은(판은)이 편안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18년 동안 정성을 들여 만든 정원이다. 실제 크기는 지금의 모습보다 훨씬 더 컸다고 한다. 지금은 예원시장의 일부로 남아있다.
중국의 정원이 가진 모든 장점을 아우르고 있는 이 곳은 수 많은 건물들과 연못, 담 등으로 구역을 나누고 있다. 영원한 부귀영화는 없는 걸까. 반윤단이 죽고 난 뒤 명문 집안으로 꼽히던 이들은 급격하게 세를 잃게 되고, 예원은 군사기지로까지 사용되었다가 결국 지도에서 없는 곳이 되기도 했단다. 지금의 모습은 1956년 중국 정부가 예원을 복구하기로 결정한 이후부터 시작되는데 처음에는 예원의 부지가 어디였는지 조차도 알 수 없었으나 다행히 원래 모습의 40% 정도가 되는 지역을 찾아내어 1961년 완전히 복구되었다고 한다. 물론 최근까지도 복구는 계속되고 있다.



사자상도 입구를 지키고 있다. 원래 중국에는 사자가 없었다고 한다. 과거 원나라 시절 서양으로 원정을 다녀오면서 사자를 처음보고 데리고 왔는데 그때 사자를 처음 본 중국사람들은 엄청나게 놀랐다고 한다. 그 이후 사자는 강력한 힘을 지닌 수호의 상징이 되어 오래된 건물에 장식물로 남게 된다.

<입구 발판>

이 동물이 뭐랬더라? 기린이랬나? 동물이 뭐건 간에 이걸 밟고 들어가면 장수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쾅쾅~ 밟아줬다. 평소에 짧고 굵게 살겠다고 해놓고선 이렇게 또 비굴한 모습을... ^^;


동양의 문화가 새롭게 느껴졌나보다. 전통복장을 입고 서로 사진을 찍는다. 나는 그들의 모습이 더욱 새롭다.

<내원에 있는 연극무대>

원래 내원은 예원에 속한 곳이 아니라 성황당의 부속 정원이었다는데 보수를 하면서 담을 허물고 예원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고극대라는 연극무대인데 이곳에서 실제로 경극 공연을 하기도 한단다. 클린턴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도 이 곳에서 관람했다고 한다.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 겉면에 금으로 다시 장식해 무척이나 화려하다. 공연장의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특별한 음향시설도 고려했다고. 이곳을 중심으로 양쪽으로는 관람석이 마련되어 있는데 이 작아 보이는 공간에 300여명의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단다. 그냥 보기엔 절대로 그리 보이지 않는다. 앞에 놓여 있는 돌도 그냥 돌이 아니란다. 베이징에서 갖고 왔다는데 무게가 1톤이 넘는다. 이걸 사람들이 들고 왔단다. 헉!!!!!

<무대와 관람석>


 
경극이라 하니 패왕별희를 연기하던 장국영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붕을 장식하고 있는 조형물들>

 
장군상도 있고, 용도 있고...



말그대로 기암괴석이다. 특이한 모양의 돌들을 모아두었는데 이런 모양의 돌들이 복을 준다고(장수라 했나?) 여기다가 모아두었단다. 100년이 되었다는 나무도 있는데 이곳의 많은 나무들이 100년 이상을 내다보는 것들이다.

<회경루>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있다. 연못과 아름다운 정자들, 바위들이 모여 있어 인상이 깊이 박힌 모양이다.


<지붕 위 장군상>

어느 한 곳을 그냥 스쳐간 곳이 없다. 도대체 이 많은 건물들에 이렇게 세심하게 신경쓸 수 있다니 엄청난 효심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지 싶다.


<용머리 모양을 한 바위>

그저 눈에 띄어서...

 

<옥수랑>

긴 수랑의 모습이 멋지지만 뒤쪽으로 보이는 건물의 지붕 끝이 예사롭지 않다. 보통 지붕의 끝에는 힘이 쎈 동물들을 배치시키던데 의외로 학처럼 생긴 새가 자리하고 있다. 정말이지 이곳의 지붕들은 모두 하늘로, 하늘로 향하고 있다 못해 새를 통해 하늘 끝까지 가려하나 보다.



고개를 넘듯 많은 문을 넘어서게 되는데 같은 모양의 문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제각기 색다른 모양을 하고 있어 문턱을 넘어서는 것도 새롭고 신비로운 느낌을 가지게 한다.


<몬타나에서 온 관광객들>


몬타나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 모습이 재미난게 가이드 팔에 걸려있는 카메라를 한번 보시라. 모두들 기념으로 남기고 싶은지 각자의 카메라를 맡기고 찍어주기를 원한다. 나도 저기서 사진 찍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들 사진 찍는 시간이 꽤나 걸렸다. 그런데 그 모습이 싫지 않고 오히려 정감있어 보인다.

<옥영롱>

중국 강남 지역에서 가장 큰 수석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돌이다. 원래는 황제가 가지고 있었던 돌이라는데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이게 진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다. 어쨌든 반윤단은 이걸 푸둥에서 엄청난 값을 치르고 가져왔다고 하니 그는 이 돌이 황제의 중요한 수집품이었다는 것을 믿었겠지. 구멍이 송송 나있어 한 구멍에서 향을 피우면 다른 구멍에서도 그 연기가 나온단다. 다들 연결된 것이라는 것.



<용 담벼락>

예원의 하이라이트 용벽이다. 너무 많은 건물들이 있어 사실 뭔가를 듣긴 했지만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그리고 다 뒤죽박죽되어 명확하게 떠올리기도 힘들다. 그런데 이 용벽에 대한 이야기는 선명하게 남아있다.
지금도 용은 예사롭지 않은 동물로 여겨지지만 예원이 만들어졌던 그 시절에도 용은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상서로운 동물이었다 한다. 반윤단이 아무리 세도가였다 해도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용을 만든다는 것은 충분히 질책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일이었다. 황제가 반윤단에게 직접 용의 대해 묻자 반윤단은 자신의 정원에 있는 것은 용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원래 용은 5개의 발톱을 가졌지만 이 짐승은 단지 3개의 발톱 밖에 가지지 않았다. 그러니 절대로 용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황제에게 몰살당할 수 있는 위기를 가까스로 넘길 수 있었다. 정말 발톱이 3개 밖에 없다. 그래도 내가 보기엔 용처럼 생겼다. ^^


<독특한 기와>

 
얇고 평평한 기와가 촘촘하게 얹어져 있다. 이런 기와의 모습도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모양이란다.


몇 안되는 실내 장식품 중의 하나이다. 이 가구들은 모두 용수나무라는 것으로 만들어졌다. 용수나무, 나는 처음 듣는데...


오래된 벽조각이다 보니 유리관으로 포장하여 보관하고 있다. 담벼락에 이런 조각들이 종종 눈에 띤다.


처음 들어갈 때 봤었던 사자 조각상을 다시 만난 것을 보니 이제 끝인가 보다. 이 사자는 중일전쟁 때 일본까지 갔다가 왔단다. ㅎㅎ 말 끝에 '정신없어'라는 말이 연신 붙어 나온다. 여기선 사람이 많아서 정신없다기 보다는 단지 개인 정원에 불과한데도 너무 넓고 너무 많은 건물들이 있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니 그 답답함에서 나오는 일종의 한탄이라고 본다. 더 많이 기억 속에서 남기고 싶은데 특별하게 기억나는 것이 없으니 아쉬움이 큰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곳에 오면 고즈넉하게 산책하며 차도 한잔 음미하고, 더 나간다면 시도 한 수 읊고 해야 할텐데 말이다. 아쉬운 마음 크지만 접어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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