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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이야기(Korea)/서울(Seoul)

[국립고궁박물관] 왕들의 삶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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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은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로 1년동안 모든 박물관을 무료관람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2009년이 다가기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오겠다고 동생과 함께 상경했는데 정확하다고 굳게 믿고 간 곳이 어처구니없게도 중앙박물관이 아니었다. 동생에게 큰소리 뻥뻥치며 갔었는데 완전히 망신이었다. 그래도 의외의 소득이 있어 돌아올 때에는 둘다 기분좋게 돌아올 수 있었다.


처음엔 정말 까맣게 몰랐다. 지하철역마저 박물관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어 '국립중앙박물관은 역시 다르구나'하고 생각했었다. 외국인들이 방문한다면 참 좋아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런데... 지하철역사를 빠져나오니 궁이 보이는게 아닌가.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다. 다시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가기에는 우리가 오늘 해야하는 일들을 생각해봤을 때 아무것도 못하고 돌아가야 할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이 명백했다. 그래서 아쉽지만 이곳을 둘러보는 수 밖에.


역을 나오니 국립고궁박물관이 왼쪽으로 보인다. 대문짝만하게 무료관람이라고도 써 있다. 흐뭇하게 주위를 돌아보는데 갑자기 종소리와 같은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는 알록달록 한복을 맞춰 입고 줄지어 나오는 사람들... 수문장 교대식이다. 경복궁은 몇 번 찾았지만 수문장 교대식은 처음보는 광경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의 왕궁이나 대통령궁 앞에서는 교대식을 몇 번 본적이 있는데 우리나라 궁에서는 처음인 것 같다. 짧은 시간이지만 재미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이 수문장 교대식을 살펴보고 있는 외국인들의 반응도 참 재미있다. 


지금까지 수고해준 수문장과 지금부터 수고해줄 수문장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교대를 한다.



중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나오던 대취타도 들을 수 있다. 처음엔 그냥 음악을 틀어놓고 흉내만 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그들의 연주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나와 쿵쾅쿵쾅 한다.


조선시대 궁은 서반 4품(무관 4품)이 지켜왔고, 지금의 궁은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지킨다. 그저 궁문을 지키는 한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래뵈도 왕이 직접 임명하여 세우는 요직이다. 지금은 직원을 직접 고용하는 곳도 있고, 아르바이트로 고용하는 곳도 있지만 고도의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이루어지는 아르바이트라 그저 재미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이 있다는 생각에 살짝 기뻐진다.



여운을 남기며 그들이 멀어져 간다. 수문장식을 진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수문장 교대식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외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수문장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은 중국 관광객들이 엄청 많았다. 시간이 좀 더 흘러 저 멀리 유럽과 아메리카에서도 이 수문장 교대식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기면 참 좋을 것 같다.


여운이 완전히 식어버리면 다시 데우기 힘드니 이 느낌을 그대로 가지고 박물관으로 향해야겠다. 지난번 왔을 때엔 국립고궁박물관이 이곳에 있는지도 몰랐었는데 지금보니 꽤 훌륭하게 만들어 놓았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왕실의 문화유산을 알리기 위해 2005년부터 부분개관해 오던 것을 세심한 준비를 통해 2007년 전면개관하였다. 왕실과 관련된 기록물부터 주요 의례, 생활물품, 왕손의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역사적 사료들 등 왕실에 관련된 모든 것이 전시되어 있다.

<왕손산실 모습>

요즘도 임산부들에게 태교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고 있지만 조선시대의 출산준비는 하나의 대례(大禮)였던 것 같다. 출산시 머리를 둘 방향과 출산자리를 준비하기 위해 겹겹으로 쌓아놓은 깔개들... 왕은 하늘에서 내린다는 당시 생각들 때문이었는지 임신을 위한 준비부터 출산 후의 처리에까지 엄청난 공을 들였다. 하기야 왕조를 유지하는데 왕실의 번창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일까. 이런 왕실의 마음을 하늘은 알았을까, 몰랐을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왕실에서 끊임없는 후사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던 것들을 보면 그들도 꽤나 맘 태웠을 것 같다.

<태내 항아리>

왕손을 낳고나면 태항아리에 태반을 담아 명당을 찾아 탑을 쌓고 그 아래 묻는다. 특히 왕자가 태어나면 백색의 항아리에 담아 보관하고, 그가 왕이 되면 태봉이라 부르면서 또 하나의 왕릉을 차리게 된다. 이 또한 명당자리에 자리하게 되는데 이런 태봉들은 일제시대 때 민족의 정기를 끊어야 한다는 명목하에 일제가 다른 곳으로 옮긴 것이 많다. 큰 항아리에 작은 항아리를 넣고 고이고이 보관하였다. 또한 항아리 옆에 있는 구멍들도 의미가 있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



왕들이 그들 자손들에게 전하고 싶어 하는 글들도 이렇게 전시되어 있다. 이것은 영조가 손자 정조에게 훈계하고자 하는 글이다. 이런 글들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지켜야 할 도(道)와 예(禮)는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결코 고리타분한게 아닌데...



왕들과 벼슬을 지낸 사람들의 인장이다. 인장들은 이름을 새긴 것도 있지만 그들이 좋아하는 문장을 새긴 것들도 많다. 책을 읽고 이런 인장들을 만들어가는 것도 그들에게는 의미있는 일들이지 않았을까. 하나같이 좋은 글귀들로 이루어져 있어 이것들을 차례로 읽어도 많은 좋은 책들을 읽은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조선시대에 이런 화려한 색과 문양을 새긴 접시가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다.


<순종황후어차>

대한제국 선포 후 급격한 근대화와 신기술, 문화가 유입되면서 우리나라에도 차가 생겼다. 순종과 순종황후의 어차가 보관되어 있는데 순종황후의 어차가 조금 더 세심하고 아름답게 생겼다. 1914년 영국 다임러(Daimler)사가 제작한 7인승 리무진으로 20마력, 3,309cc의 배기량을 가졌다. 차 내부에는 오얏꽃을 수놓은 황금색 비단으로 장식되어 있고, 특이하게도 차체가 목재로 이루어졌단다. 저 바퀴는 지금의 자전거 바퀴와 같다고. 그래도 잘 움직였다하니 놀라울 뿐이다. 전세계적으로 단 3대만이 남아있는 이 리무진은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오래된 자동차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현대자동차에서 몇 년동안 수리 및 복원하여 원래의 모습을 찾았다.

<자격루>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물시계 자격루이다. 2년의 노력 끝에 모든 백성의 염원이었던 자동시계를 만들어 표준시계로 사용할 수 있었다. 계절별로 달라지는 밤낮의 길이까지 계산해서 시간을 자동으로 알려줄 수 있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시간이 되면 첫 번째 사진에서 나오는 구슬이 떨어지면서 물의 힘을 이용하여 종을 울리는데 정각이 되면 인형이 나와 시간을 알려준다.


2시간에 한번씩 종이 울리고 밤에는 북과 징으로 시간을 알려준다.


운이 좋게도, 아니 이 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더니 자격루가 울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툭~하고 떨어져 굴러가는 구슬소리와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소리도 듣고, 인형이 나오는 것, 종을 치는 것까지 순서대로 움직일 때마다 따라다니면서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이곳을 관리하시는 분이 너무 상세하게 소개해주시면서 지금은 어디, 지금은 어디라고 가르쳐주셔서 따라다니며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살펴보니 박물관에서 보낸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한바퀴는 내 맘대로, 다음 한바퀴는 설명과 함께. 사람들이 별로 없어 설명해주시는 분과 동생, 나 이 세 사람이 재밌는 대화를 하며 둘러볼 수 있어 더 좋았던 것 같다. 관람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입구에 있으신 분들이 '정말 공부하고 오셨네요.'라고 인사해준다. 그 말이 뭔가 하나를 해낸 것 같아 뿌듯함까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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