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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마을 이야기(Europe)/오스트리아(Austria)

[비엔나] 화려함과 거대함의 조용한 대결(슈테반성당 vs 페터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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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벤 거리에서 살짝 몸을 옆으로 틀면 비엔나 최대의 성당이 나온다. 장장 65년에 걸쳐 만들어 800년의 역사를 가진 고딕양식의 성당, 비엔나의 상징이 된 성당, 하늘끝까지 솟아 오를 것만 같은 첨탑을 가진 성당, 바로 슈테판 성당이다.

 
<슈테판 성당>                                            <페터성당>

슈테판 성당의 거대함에 놀라 열린 입이 미처 닫히기도 전, 페터성당을 만나게 된다. 슈테판성당과는 다른 모습의 바로크 성당, 겉은 그저 아담한 성당처럼 느껴졌지만 입구를 들어서니 내 생각이 속단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페터성당의 제대>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중앙제대가 나온다. 중앙제대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오래된 성당을 제외하고는 하나의 제대만 있지만 유럽의 성당들은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중앙제대를 중심으로 양 벽쪽으로 작은 소제대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도 가장 화려하고,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성전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미사 시간이 아니면 텅 빈 성당을 보는게 대개의 경우이지만 유럽에선 늘 꽉찬 신자석을 보게 된다. 처음엔 '역시, 기독교 역사를 바탕으로하고 있으니 많이 다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몇 번을 보니 관광객들로도 성당이 가득찬 것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그래서 늘 성당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관광객인지, 기도를 하기 위해 성당을 찾은 사람들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가까이에서 본 성당제대>

바로크 양식인 카를교회와 비슷한 모습인듯 하면서도 다른 자기만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11세기에 이런 건물을 만들었다는게 믿겨지지 않을만큼 화려하고 멋스럽다. 물론 그때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겠지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자리할 수 있다는 건 모습이 어떻건간에 부러울 수 밖에 없다. 1708년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어 비엔나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교회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이 성당은 실내의 화려함에 도저히 말을 이을 수 없게 만들었다.

<슈테판성당의 제대모습>

슈테판 성당에 들어섰을 때에는 미사중이었다. 주일이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성당을 찾은 것 같다. 우리나라로 봤을 때 사람들이 많이 찾는 미사시간이 아니었고, 또 지척에 페터성당이 있었기에 조금 더 놀랍다. 유럽 성당들은 중앙에서는 미사를 하고 있고, 뒤와 옆에서는 관광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성당에서는 미사를 할 때 뒤와 옆을 막아놓고 미사를 드리고 있으니 관광객들에게 조금은 자제하게 되는 것 같다. 지난번 부다페스트에서는 미사 중에 이리저리 사람들이 다니고 사진도 찍고 그래 어색하면서도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바리케이트 사이로 슬쩍 사진을 찍어본다. 혹 방해가 됐다면 죄송~ 

<페터성당 제대의 조각상>

페터성당의 제대조각은 바로크 예술의 백미라고도 한다. 제대 중앙과 양쪽으로 되어있는 조각들은 이 곳이 성당이 아니라 어느 한 미술관의 조각으로 소개해도 될 만큼 그 자체만으로도 멋진 모습을 자랑한다.

<슈테판성당의 설교단>

슈테판성당에서는 설교단이 눈에 띈다. 설교단에서는 뭘하나? 독서는 다른 곳에서 하나? 그럼 앞쪽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어쩌지? 설교단이 조금 뒤쪽에 자리하고 있어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요즘은 안쓰겠지? 그럼 언제까지 여기를 사용했을까? 정말 이럴 땐 가이드가 있는 여행단이 쪼~금 부러워진다.


<페터성당의 천정화>

성모승천을 그린 페터성당의 천정화이다. 앞에서 봤던 조각상과 함께 페터성당의 상징이 될 수 있는 바로크 양식의 백미란다.

<페터성당의 파이프오르간>

뒤쪽 이층에 자리하고 있는 파이프오르간이다. 누가 한번 뒤돌아 바라봐주기나 할까 생각했는데 안보고 돌아왔다면 후회막급이었을 것 같다. 성당의 메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화려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니... 페터성당의 화려함의 극은 오르간에서 느낄 수 있다. 운이 너무나 좋게도 이 곳에서 저녁에 오르간 연주회를 볼 수 있었다. 사실 아는 곡은 하나도 없었다. 오르간의 음색은 부다페스트의 이슈트반 성당보다는 못했지만 그래도 여운이 있는 소리였다. 역시 높은 천정이 이 오르간의 기품을 더해주는 것 같았다. 모짜르트가 이 곳에서 자신의 미사곡을 연주하기도 했단다. 바로 저 오르간인가? 모짜르트의 손때가 묻은 오르간이... 괜히 한번 슬쩍 만져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슈테판성당의 파이프오르간>

이미 페터성당의 화려한 파이프 오르간을 본 터라 크게 놀랍진 않았지만 그래도 눈길이 간다. 슈테판 성당의 오르간은 화려한 맛은 없지만 성당의 외관을 닮아 아주 거대하다. 파이프의 갯수가... 헤아릴 수 없다.

<페테성당의 입구>

포인트가 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조각상이 있다. 아기 천사들의 모습은 언제까지나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위해 빌어줄 것만 같다.

슈테판성당 뒤쪽에는 사람들이 와서 기도를 하고 초를 킬 수 있도록 해 놓은 곳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염원을 담아 기도하고 초를 킨다. 우리와 함께 간 피터 아저씨가 초를 하나 켜면서 이야기한다. 그 초는 우리나라에서 아프가니스탄 피랍민으로 잡혀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켠 것이라고... 자신도 아랍사람이지만 그 사람들 참 나쁜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괜히 고마움에 눈물이 난다. 미사를 하는 동안 꼭 기억해야겠다 생각했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돌아와서도 피랍민들은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래도 결국은 돌아왔지 않는가. 아마 피터아저씨의 기도도 한 몫했으리라.

<슈테판 성당의 외곽>

슈테판성당이 가진 거대함의 극치... 아무리 요리조리 카메라를 돌려보아도 한 컷에 담을 수 없었다. 굉장히 오래전에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비엔나의 화려한 시가지에 전혀 굴하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오히려 훨씬 더 부각되어 강한 이미지를 각인시킨다고나 할까. 첨탑 또한 세계에서 3번째로 높단다. 
모짜르트의 결혼식과 35살로 세상을 뜬 그의 장례식이 이 곳에서 행해졌다. 아~~ 모짜르트...


중앙에 있는 조각상이 의미하는 것이 아마도 페스트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그저 흰 바탕의 붉은 십자가 표시가 그렇게 느끼게 한다.


슈테판성당의 모자이크 지붕은 비엔나의 상징이라고 할만큼 이곳 사람들은 자랑스러워 한단다. 빛 조절이 잘 안돼서 그 색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지만 그들이 자랑스러워한다니 다시 한번 눈길이 간다. 이 성당을 한번에 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돌아오고난 뒤 바로 광각렌즈를 구입했다. 그때 있었기만 하더라도 한번에 멋지게 담을 수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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