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레타 성당>
프라하 성을 구경하고 나서 내려오는데 너무 아름다운 종소리가 나서 소리나는대로 따라가니 나온 성당이 이 곳이다. 종소리에 이끌려 비를 맞으면서도 찾아갔다. 너무 멋있는데 알고보니 엄청 유명한 곳이었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우리가 거기 갔을때에는 비가 너무 많이 오고 있어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비싼 카메라 물들어갈까봐 옷안에 넣고 막 뛰고 있었기 때문에... 내부역시 벌써 문이 닫혀 들어갈 수도 없었다. 멋진 소리를 내던 종이 로레타 종으로 무려 27개나 된단다. 유럽에서 많은 것이 좋았지만 미사시간 전 또는 정각에 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날마다 종소리나면 성당가고.... 그럼 얼마나 좋을까!
위 사진은 인터넷에서 퍼옴. 작은 카메라로 찍었는데 용량부족으로 지웠던 파일에 있었던 것 같다.
프라하 성을 둘러보고 낮에 끊어놓은 인형극 티켓때문에 더이상 시간을 지체하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비를 맞으면서 내려왔는데 정신없이 내려오다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니 올라올때와는 반대방향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지도에도 없고,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는지,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는데 어떻게해야하는지 영 판단이 안섰다. 그런데... 그렇게 아무 생각않고 내려오기에는 길이 너무나 이뻤다. 주변의 집들도 이쁘고, 벽이 하나의 갤러리처럼 장식되어 있는 곳도 있고, 오솔길처럼 만들어진 그 길은 정말 낭만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눈에만 담아 돌아온게 아쉽다. 아니다. 내가 지금 기억하고 있는걸 보면 내 맘에도 남아있는게 틀림없다.
<프라하 아기예수 성당>
프라하의 아기예수 성당은 기적의 성당으로 유명하다. 이 날은 헤매다가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것들을 많이 본 날이기도 하다. 프라하 아기예수 성당은 가기 전 한 학사님이 추천해주셔서 꼭 가보고 싶었는데 여행책자에선 찾을 수 없어 가는 것을 80% 포기했었다. 그런데 골목골목 헤매다 보니 사람들이 몰려있는 한 성당이 나왔는데 그 곳이 바로 아기예수 성당이었다. 비도 피하고 구경도 하고 싶어서 들어갔었는데 미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략 시간이 좀 있을거라 생각하고 뒤쪽에 있는 박물관 아닌 박물관 구경도 하고, 방명록에 한글 쓰기도 하고. 박물관에는 여러나라의 성모상과 성가족상 등이 전시되어있는데 그 중 가장 크게 한복을 입고있는 성모자상도 있다. 얼마나 반갑던지... 그리고 한글로 된 기도문도 준비되어 있고...
여기에서도 미사를 드렸는데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방식으로 미사를 드렸다. 신부님의 등을 보며 드리는 미사, 난생처음으로 드려보는 미사였다. 유럽에서의 마지막 미사로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미사를 드리는 덕분에 저녁식사와 약간의 휴식을 포기해야만 했지만 맘은 풍성해진 듯한 느낌이다. 바로 마리오네트 극장으로 직행!
성당 안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여 찍지는 못하고...(위의 사진은 인터넷에서..)
프라하의 ‘은총의 아기 예수상'은 원래는 스페인에 모셔져 있었는데 체코의 프라하까지 오게 되었다. 지금은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시의 '승리의 마리아 가르멜 수도원' 소속의 아기 예수 피난처 성당에 모셔져 있다. 스페인의 한 수도원에서 발현한 아기 예수님의 모습대로 재조된 이 성상이 프라하에 모셔지게 된 경위는 대략 이러하다.
스페인 남부 코르도바(Cordoba)와 세비야(Seville) 사이에 있는 과달키비르(Guadalqivir) 지역에는 원래 옛날 스페인 땅에서 유명했던 어느 수도원이 있었는데 회교인들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그 후 폐허 위에 몇 명의 수도자들만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 아기 예수님께 대한 신심이 깊은 한 수사가 있었다. 그가 어느 날 열심히 바닥을 쓸고 있을 때, 아주 맑고 깊은 눈을 지닌 한 아이가 갑자기 그의 앞에 나타나 그 순간 그에게 많은 기쁨을 선사하며 말했다.
"요셉 수사님, 정말 비질을 잘하시네요. 바닥이 눈부시게 번쩍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 성모송을 기도하실 수 있으세요?"
그는 약간 당황하였지만 사랑스런 눈으로 그 아이를 바라보면서 대답하였다.
"그럼, 할 수 있고말고."
"오, 그럼 바로 지금 당장 성모송을 기도해 주세요."
요셉 수사는 그 자리에서 두 손을 모으고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하며 성모송을 이어나갔는데 "…….태중의 아들 예수 또한 복되시도다" 에 이르렀을 때 그 아이가 갑자기 "그게 바로 나예요" 라고 외쳤다. 그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면서 자신 앞에 서 있는 아이는 바로 아기 예수님이셨던 것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을 깨닫는 순간 곧 그 아이는 사라져버렸고 그 후 요셉 수사는 아기 예수님께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찼고 다시 그 아기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그리움으로 마치 죽을 것 같은 나날을 보내야 했다.
수많은 고독의 날들이 지나갔지만 그 아기가 보인 작별의 미소는 그의 가슴 속에서 계속 불타고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모습대로 밀랍 인형을 만들어 주세요."
그는 그의 모습대로 밀랍인형을 만드는 것이 그의 거룩한 의무라고 느끼며 재료를 부탁하러 곧바로 수도원장에게 달려가 사랑에 넘치는 두 손으로 그 아기의 모습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의 그리움은 채워졌고, 그는 너무나 행복했다. 아기가 사라진 뒤 그는 기억을 더듬어가며 여러 가지 모습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의 방 안에 한 무리의 천사들에 둘러싸여 그 하늘 아기가 또다시 나타났다.
아기 예수님은 문지방에 서서 말했다.
"나입니다. 내가 왔어요. 이제 이 작품은 완벽하게 진행될 수 있어요. 나를 쳐다봐요. 이제 당신은 내가 지닌 천상의 얼굴 표정을 그대로 밀랍에 새길 수 있어요."
그는 그 아기의 모습대로 밀랍에 형을 떴고 가슴은 기쁨으로 차올랐다. 작품을 완성하고 감동에 젖은 그는 무릎을 꿇었고, 두 손에 머리를 파묻고는 이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서 평온하게 숨을 거두었다. 영원한 사랑이 그에게 입맞춤했고, 천사들은 그를 천국으로 데려갔다.
수도원장은 성대한 행렬을 갖추어 그 밀랍 상을 성당에 모셨는데 요셉 수사가 죽은 다음날 밤, 그가 수도원장 앞에 나타나 말했다.
"부족한 제가 만든 이 아기 예수상은 여러분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일 년 후에 도나 이사벨라 후작 부인이 와서 이 천상 아기를 모셔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를 곧 따님인 마리아 만리케쯔에게 결혼 선물로 주게 될 것이므로 여러분은 이후에도 언제나 사랑과 존경을 지니고서 이 아기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마리아는 이 아기를 고향에서 멀리 떨러진 머나먼 보헤미아 지역으로 모셔가게 될 것입니다. 그곳 프라하에서 아기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경배를 받을 것이며 암담한 날들에는 도움을 많이 줄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선택한 그 땅에 은총과 평화와 자비가 내릴 것이며 이 아기는 그 나라를 사랑과 지혜로 이끌어 나갈 것입니다. 보헤미아 민족은 그의 민족이 될 것이며 이 아기는 그 민족 한가운데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영원한 왕이라 불릴 것이며 이 왕은 은총으로 그들에게 충분한 보답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민족과 나라들로부터 '은총이 충만한 프라하의 아기 예수님' 이라고 불릴 것입니다. 이 아기 예수님께 청원하는 모든 이에게 지구 끝까지라도 축복과 도움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한편 도나 이사벨라의 딸인 마리아 만리케쯔(Maria Manriquez)는 보헤미아의 귀족, 브라티슬라 폰 페른스타인(Vratislar von Pernstein)과 결혼할 때 그녀의 가문에서 이미 '오랫동안 기적을 행하는 아기' 로서 공경되며 귀중한 가보로 전해지던 이 아기 예수상을, 오래 전에 요셉 수사가 예언한 대로,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아 시댁이 있는 보헤미아로 가져왔다. 그리고 마리아 만리케쯔는 그것을 다시 자신의 딸, 마리아 폴리세나(Maria Polixena)가 영주 아달베르트 폰 롭코비츠(Adalbert von Lobkowitz)와 결혼할 때 선물하였다. 그런데 1623년 남편이 죽음으로써 과부가 된 후에도 폴리세나는 돈독한 신앙생활과 이웃사랑으로 생애를 보냈는데 그녀는 특히 프라하 지역에 위치해 있는 승리의 마리아 가르멜 수도원 수사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 당시 수사들은 그 수도원의 창설자요 후원자며 가장 큰 은인이었던 황제 페르디낭드 2세가 왕궁을 비엔나로 옮긴 이후 커다란 곤경에 빠져 빵 한 조각도 먹기 힘든 극심한 빈곤상태에 처해 있었는데 이 슬픈 상황을 전해들은 롭코비츠가의 영주 부인 폴리세나는 자기 스페인 선조의 가보인 값비싼 보옥으로 된 아기 예수상을 그 수도원에 주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그 예수상을 주면서 말했다.
"제게 가장 소중한 것을 여러분들에게 드립니다. 아기 예수님을 공경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에게 아무런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스페인에서 옮겨져 프라하에 정착하게 된 이 아기 예수상은 약 60Cm 정도의 크기에 나무로 조각되어 그 위에 밀랍이 씌워져 있다. 세 살 정도의 아이 모습을 하고 있으며 값비싼 대관식용 외투를 걸치고 있는 머리에는 아주 큰 보석으로 장식된 왕관이 씌여 있다. 왼손에는 십자가가 달린 지구의를 들고 있으며 오른손은 축복을 내리는 듯 위로 들고 있고 '하느님의 미소'를 머금은 다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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