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교구청>
우라카미 성당의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우라카미 지구는 완전히 가톨릭지구라고 한다. 일본의 많지 않은 가톨릭 신자수에 가톨릭 지구라고 말한다는게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오랜 세월 박해에 더욱 탄탄해진 신앙아래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우라카미 성당입구 성모상>
단순한 성모상같지만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는 성모상이다. 이탈리아 의사회에서 교황님의 축복을 받아 나가이 다카시에게 보낸 성모상인데 슬프게도 나가이 다카시는 그 성모상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사망 후 한달쯤 지나서 도착했다. 성모상이 세워진 자리는 나가이 다카시가 성모상을 기다리며 지정해놓은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성당을 찾는 사람들을 가장 먼저 맞는 곳이 되었다.
바로 이 성모상이다.
<원래 성당 장식품>
원자폭탄을 맞고 부서진 석상과 그 조각들을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 원폭의 참상을 알리려는듯...
<초기 우라카미 성당의 석상들>
잊지말자는 뜻이겠지.
<원자폭탄 투하 후 우라카미성당>
<현재 재건된 우라카미 성당>
<우라카미 성당>
우라카미 성당은 원자폭탄이 터지기 이전엔 동양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다. 자그마치 30년이 걸려 지은 성당이니. 하지만 원폭이 터지면서 기둥만 남고 완전히 폭파되었고, 현재의 성당은 새롭게 재건한 성당이다. 그때 남은 성당의 기둥은 평화공원 폭심지 옆에 다시 세워두었다.
나가사키 원폭으로 우라카미 성당에서는 성당 건물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한 참상을 겪게 되었으니 그건 바로 많은 신자들의 사망이다. 성모님에 대한 신심이 깊은 일본교회에서는 부활과 성탄, 그리고 성모승천대축일을 중심으로 3번의 판공성사를 의무화하고 있다. 원자폭탄이 터진 날이 8월 9일이었으니 성모승천대축일을 기점으로 판공성사가 이루어지고 있던 때이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성당에서 사망할 수 밖에 없었다. 성사를 위해, 미사를 위해 그 날 그 시간 이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사망하고 말았다.
<나가사키 주교좌성당 - 우라카미 성당>
11월이면 곧 시복식이 이루어질 곳이기도 하다. 자연조명으로 밝혀진 십자가의 모습이 신비러움을 더한다. 일체의 인조조명이 없이 자연조명만으로 십자가를 비추고 있다. 돌아오고 난 뒤 건축을 전공하고 있는 동생에게 들었는데 이런 기법은 성당건축에 자주 사용되는 기법이라 한다. 괜스레 빛만으로도 경건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 스테인글라스, 뒤쪽 오르간의 파이프도 한 몫을 한다.
<원폭 후 무너진 종탑>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종탑의 종은 현재 어느 박물관에 있다고 한 것 같다(정확하진 않지만...). 나가이 다카시가 쓴 '나가사키의 종'의 모티브인가? 원폭의 피해 후 3주가 지나 개미를 발견하고나서야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나가사키에 다시 둥지를 틀었다. 지역의 재건을 위해 청년들이 마을을 뒤적이다가 종을 찾아냈고 그 날이 성탄 전야였다. 그래서 나가사키에서는 12월 24일 12시 나무 장대에 종을 매달고 전쟁이 없어지고 이 세상에 구원이, 평화가 가득하기를 바라며 나가사키의 종을 울렸다고 한다.
<성당 주변을 관람하고 받은 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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